장학량 그는 누구인가?
장학량
드라마 소수가 무려 48부작 제작되었고
조회수가 7억7천만건 !
<중국인이 사랑하는 인물, 장학량>
이번주 핵심 뽀인트
대련 : 대구를 이른다는 뜻이다.
차돌상을 위하여 나의 인생 체험을 썼다.
중국에서 길거리 지나가다 주운거다.
엄청난 보배다.
서북군정기념장
서북군정위원회 주석이 팽덕회이고 부주석이 시종쉰이었다. 팽덕회는 한미원조(미국에 저항하여 조선을 원조한 싸움)의 총사령관이었다.
주석 팽덕회를 대신해 부주석 시종쉰은 서북지구 전체를 관할했다.
서북지구는 중국 전체 면적의 1/3
서북지구 실제 주석은 시종쉰이었다.
당시 시종쉰의 지위는 대단했다.
아버님께서 만드신 이 귀한 메달을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다.
"중국에 공을 세울 일등공신" 이라는 뜻 때문에
국민학교 때 선생님이 이 이름을 가지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제자를 위해 이름을 바꿔준 담임선생님 엄목상.
둘째, 버금, 중개역할의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항상 겸손하게 평생을 사셨다.
1962년 시종쉰 필화사건으로 반당으로 몰렸다.
Song Of Arirang
중국의 붉은별(Red star of China 1937)
중국 공산당 혁명을 전 세계에 긍정적으로 알린 미국의 저널리스트는 어드거 스노우였다.
그의 부인 님 웨일즈(Nym Wales)
1937년 중국 공산혁명 취재차 연안 지역에 간 님 웨일즈는 중국 연안 루쉰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는데 자기가 빌릴려고 하는 책들을 족족 한 사람이 빌려간것이다. 편지를 써서 당신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도데체 누굴까?
이 혁명 와중에 있을 수 있겠냐?
<아리랑의 혁명가>
어느날 밤 도서관에 비가 좌악 처량하게 내리는데 달빛에 그 여자가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짝~~~들어오는데 얼마나 잘 생겼는지.. .
시니컬한 사람이 들어오는거다.
님 웨일즈의 표현에 의하면,
아...스페인 풍의 남자 같았다.
그가 말하기를. ..
"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영어 일본어 독일어 라틴어 유창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쓰는데 혼자 독학했단다.
이렇게 영어를 많이 해본적이 없습니다.
첫 째, 당신과 영어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둘 째, 한국 혁명가의 전기를 쓰고 싶어요.
난 비밀요원이라 다 말할 수 없는데
정말 원한다면 내가 죽고 난 후에나 공개하시오.
Song of Arirang
1941년 출판했다.
어마어마한 김산의 인생 이야기가 있다.
내가 그걸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미국에서 이 책을 구입해서 책이 종이로 싸여 있는 이유는 그 당시 이런책을 국내에 가지고 오면 걸렸기 때문이다.
김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르는데
김산의 인생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런데 1938년 김산은,
트로츠키파, 일본 스파이 죄목으로 처형당한다.
중국 공산당이 우리 조선 혁명가를 죽입니다.
그 죽인 사람이 강생이다.
정말 나쁜X이다.
중국의 근대사를 망친건 모택동이지만,
진짜 나쁜 사람은 강청이고,
강청을 조정한 사람은 강생이다.
이 인물들을 이야기 한 이유는,
시종쉰을 숙청한 인물이 강생이다.
시종쉰이 유지단과 같이 혁명을 했는데
유지단은 일찍 돌아가셨다. 건국 이전에.
유지단의 남동생 부인이 유지단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 소설 <유지단>을 시종쉰이 기획했다는 모함을 했다. 소설 유지단에 반혁명적인 요소가 있다고.
<1962-1978>
시종쉰은 16년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8년동안은 거의 자녀 얼굴도 제대로 못 본채 구금됐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던 시진핑은 하루 아침에 아버지의 숙청으로 뒤바뀐 삶을 살았다.
혁명을 빙자한 정치적 비애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는다.
하방!!!! 당한다.
농민의 삶으로 돌아가다.
문화대혁명시기 대대적인 하방이 강요되었다.
대약진운동으로 4천만명이 죽었다.
대약진운동은 경제발전을 위한 운동인데
어떠헤 4천만명이 죽겠어요...
대약진운동이 실패하면서 농촌을
농업 공업 상업 군사를 묶어 공사를 만들었다.
인민공사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가 됐는데 밥은 먹여줘야 될꺼아니냐...
그리고 밥 먹을 때 돈 낼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인민공사대식당이 있다.
장혜모 감독의 영화 인생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까지 한 가족의 처절한 삶을 그린 영화다.
대식당을 만든이 누구나 와서 무료 급식을 먹었다.
한 달에 세 차례는 고기반찬 나와야한다.
집에 있는 쇠랑 냄비는 다 없앴다.
집집마다 부엌이 없어졌다. 공짜로 먹을 식당이 있으니까 전 인구의 90%가 인민공사대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100만개 이상 되었다.
1960년 이후 기근으로,
자연재해 발생했다. 곡식이 없어서. 공짜 식당을 운영할 수가 없게 되었다.
4천만명이 굶어 죽었다.
음식도 없고 집에서 먹는 시스템도 없어졌다.
중국인들은 이 엄한 세월을 다 극복한 사람들이다.
지금 공산주의 체제가 쉽게 무너질수가 없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아무래도 좋은 시대다.
대약진운동시 부분적으로 실행을 했어야 했다.
등소평 팩덕희 유소기는 너무 무리 아니야?
모택동은 그래도 해!!!
하루 아침에 4천만명이 굶어 죽었다.
1959년 4월 대약진운동 문제 발생으로 모택동 물러사고 유소기가. 제2대 국가주석이 되었다.
등소평과 유소기가 대약진운동 수습을 잘했다.
그런데 모택동 입장에서는 더 잘 하면 어떻하냐?
내 목이 잘릴것을 우려해서
권력 유지를 위해 등소평, 유소기를 축출했다.
대대적 숙청의 명분으로 홍위병을 앞세워 주지파를 비판했다. 사회주의 원칙을 다 버리고 있다면서
출판, 문화, 학계, 정계
각 방면의 지도자를 숙청한 모택동!
[홍위병 주도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졌다]
문화대혁명
지식 청년 1,600만명이 하방을 당해 시골로 갔다.
<도올의 뽀인트>
시진핑은 15살 때, 하방 당한다.
아버지 고향 섬서성 농촌에서 하방 생활을 한 시진핑은 섬서성 연천현 문화역공사 양가현 대대 생산대에서 사는데 죽을 맛이다.
1959년 기근 이후,
인민공사 대식당 자동 폐쇄!!!
피폐해진 농민 인민들의 삶!
10대의 시진핑이 마주한 중국의 현실이었다.
먹을거라곤 수수깡 초근목피 일뿐이다.
참기 어려운 참혹한 농촌 현실이었다.
도망갔다. 줄행랑쳤다.
하방생활 4개월만에 북경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 넌 웬일이냐! 여기 있는게 발각되면 너 죽어
시진핑 : 죽으면 죽었지. 거기서 못 살겠어요ㅠㅜ
어머니 : 시정부에 자수하러 가자.
어머니의 설득으로 자수한 시진핑.
다시 북경 학습반에 편입해서 중노동을 했다.
자수한 시진핑에게 주어진 새로운 노동.
현재 북경대학 주변 북경시 해정구 하수단 매설 인부로 노동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지금도 해정구를 지나가면 수도관 위치를 다 안다고 농담한다.
24시간 노동을 한거다. 도망갈 가능성은 제로%
비겁한 삶을 사느니 내가 다시 도전해보겠다!!!며
시진핑 자신의 결단으로 섬서성 연천행을 가겠다고 함!!!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
나도 최말단 농민들과 같이 살겠다!!!
민중의 바다에서 헤엄치지 못하면 난 죽는다.
아버지 고향 섬서성에서 이를 악물고
7년간 농민에게 동화되는 삶을 살았다.
하방생활 7년이 오늘날의 시진핑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시진핑] 하방 7년이 나를 키웠다!
시진핑의 길은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인민의 삶에 들어가겠다!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말할 때
두가지 개념이 있다.
크로노스 : 일정하게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
카이로스 : 찬스, 타이밍
[동학] 목검을 휘둘렀다. 검결로 유명한 노래다.
시호 시호 시호로다!
시호 시호 이내 시호
때로다 때로다
이 내 시호로다
부재래지 시호로다
다시 오지 않을 이 때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 시호로다
만년에 한 번 태어난 장부에게 주어진
만년만에 다가온 때다.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처럼 날랜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어느달밤 관원지목으로 경주 고향을 떠나
남원 은적암에서 포효한 검결
만고 명장 어데 있나
장부당전 무장사라
(숨은 뜻)
장부=평화의 상징
장부=폭력의 상징
폭력에 꺾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정의감을 대변한다. 일어날 "때"를 알았던 우리민족이다!
2016년 우리는 지금 계속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카이로스(따)를 놓치고 있다.
우리는 왜 때를 놓치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 무지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이끌고 가야할 이 시점에 왜 일본 미국 중국에 이끌려 왜 입김에 놀아나고 이 모양이냐 말이야!
그 얘기를 내가 절절하게 외쳤다고!!!
(월간중앙 4월호를 통해 우리 민족의 '때'에 대해 기고)
시진핑의 인생철학
인간 시진핑 분석!
시진핑의 아버지가 혁명원로 시종쉰이었다.
가장 두드러졌다.
아버지에게 받은 깊은 교육과 숨은 은덕은
선배 정치가 아버지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교과서다.
어린 시진핑에게 잊지말라며 아버지가 간곡히 가르쳤던 글귀이다.
<<논어>> <위령공편>
"제가 평생 지켜야 할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제자 자공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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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서'다. 용서의 서.
스승님, 용서라는 말이 어렵습니다.
무슨 뜻이온지요?
기소불욕 물시어인
자신이 원하지 않는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
(서양의 황금률 :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본원리)
성경 복음에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한다.
성경구절과 공자의 논어는 내용이 다르다.
성경은 자기가 원하는바를 남에게 하라!
(알베르토) 제가 받고 싶은것을 남들이 싫어할수도 있어요. 만약에 서양 사람인데 서양 사고방식을 가지고 동양인에게 제가 원하는 대로 하면 문화 차이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동양사람들은 선의에 의한 오류를 경계했다.
#남녀관계 #부부관계 #자녀교육
모든 관계에서
최소한의 부정적인 원칙만 지키자.
서양철학보다 깊은 동향철학의 지혜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자기 가슴속에 품었던 아버지의 교훈이다.
하방생활을 견디게 한, 한 마디.
시진핑은 어릴적부터 논어를 들으며 성장했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평생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