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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상자 Apr 03. 2023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그게 딱 너네.”


얼마 전 또 몸살기가 도져 시름시름하고 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야,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그게 딱 너네.”



그래 맞다. 뭐가 불안해서 시간표를 이렇게 빡빡하게 짜 놨는지, 안 피곤하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1월 휴직 이후 한 달 정도는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도 가 보고,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카페에 앉아 소원대로 실컷 멍도 때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힘들게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디어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며, 무엇보다 그 보기 싫은 상사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햇살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이 한낮의 여유로움은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언젠가부터 또  마음 한 구석에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계속해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관성의 법칙처럼, 이 시간쯤이면 상사에게 아이템 보고를 하고 있어야 하고 이 시간쯤이면 회의 중이어야 하며 또 그 시간쯤이면 머리가 아파 친한 선배에게 ’커피 한 잔‘ 요청을 하고 있어야 하는 나인데,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라는 사람과의 간극이 주는 허전함이겠지. 그리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1년 후에도 이 상사 있으면 나 절.대.로. 안 돌아가!!!’라고 호기롭게 외치고 회사를 나온 상황이 주는 불안함도 큰 듯하다. 꾸준히 일 해 온 나이지만 아이 둘에 어느덧 40대 중반으로 향해가고 있는 내가 ’정말 이직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서 오는 불안함 말이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내 휴직의 첫 번째 목표는 ’무조건 건강 되찾기!‘였는데 지금 그 목표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중간중간 여전히 골골대고는 있지만 이제는 상사 스트레스도 없겠다 좀 살만하다 싶으니까 ‘뭐 할 거 없나?’, ‘뭔가 해야 하는데!’라고 스스로를 들볶아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참 피곤한 인생이다.




그리하여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드럼 배워보기,

두 번째 프로젝트는 심신의 안정 도모를 위한 요가 다니기,

세 번째 프로젝트는 평생 소원인 요리 잘하기 - 그러기 위해 요리 학원까지 등록,

마지막 네 번째 프로젝트는, 이직 생각 때문에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하도 사람들이 유튜브 유튜브 하니 나도 내 영역 확장을 위해선 좀 공부를 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등록한 컴퓨터 학원이다. 이미지 편집, 영상 편집 과정을 등록했는데, 학원이 무려 홍대입구에 있다. 오호, 홍대입구~! 여기는 젊은이들의 성지 아닌가! 이거 도대체 대학 졸업 이후 얼마 만에 이쪽 동네를 오는 거야. 그것도 월화수목금 매일 말이다.



다른 수업이야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내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수업이지만 컴퓨터 수업은 3달 과정으로 빡빡하게 짜여져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빡시게‘ 매일 홍대입구에 와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마흔이 훌쩍 넘어 이곳에 책가방 매고 다시 오려니 왠지 멋쩍은 느낌이다. 첫 수업 들으러 오는 날 ‘여기 애들 노는 덴데 내가 와도 되나?‘ 생각이 저절로 들었는데 그런 나를 보면서 스스로 놀랐다. (아니 너도 15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 포차에서 술 자주 마셨잖아!!) 매일매일 정말 서울 구경 처음 온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요즘 애들은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구나, 20년 전 나 학교 다닐 때 마시던 술집들은 죄다 없어졌네, 하면서 두리번, 또 두리번 두리번이다. 하하.



오늘, 한여름 같은 봄볕도 참 좋더라.



이렇게 매일 홍대에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제일 놀라고 있는 점은 거리의 사람들 중 외국인 비중이 거짓말 좀 보태서 3분의 1은 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처음에 공항에서 죄다 여기로 오는 건지, 진짜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외국인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전부 형형색색의 캐리어를 끌고 다녀서 ‘여기 단체관광 할 만한 곳이 있나?’ 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부근에 게스트하우스가 많아서라고 한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출출해 학원 앞 떡볶이 포장마차에 갔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국인 두 명이 핫도그를 주문하면서 그 광경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아줌마는 이마저도 익숙한 일상인지 아주 터프하게 ‘핫도그, 완? 투? 오케이, 완!!’ 하신다. ‘어이, 케첩, 머스타드, 투게더?! 아니면 따로따로?!‘ 라 외치실 땐 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뿜어져 나올 뻔했다. (간신히 참았다.) 신기하게도 모든 말이 통한다. 그 광경마저도 신기한 외국인들은 이 모든 것들을 연신 영상에 담아낸다.






어느새부턴가 애들 키우느라 티비도 뒷전, 요즘 유행하는 것들이 뭔지도 관심 밖, 그저 회사 다니고 애들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나면 하루가 다 가버리는 일상을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지금 거울 앞에 서 있는 내가 내가 아닌 지 오래다. 술 센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 시절엔 자랑 맞았지... 흠흠) 친구들 후배들 불러 모아 호탕하게 원샷 시키고, 늦게 온 사람은 글라스컵에 후례자 3배 주, 그리고 ‘배스킨라빈스 써리 원’이나 ‘눈치 게임’ 같은 것을 하며 깔깔 웃음 속에서 보냈던 20년 전의 홍대 앞에, 지금 나는 머리 질끈 묶고 책가방 매고 매일 등교 중이다. 내가 듣는 수업에도 20대가 대부분인데 진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수강생 같아 신경을 안 쓰려해도 안 쓸 수가 없다. 행여나 나만 실습을 못 따라갈까 봐 매일이 전전긍긍이다. 나 어릴 적 늦깎이 선배님이 교실에 계시면 무어라도 도와드려야 하나 생각 들었던 것처럼 이 친구들도 날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기를 쓰고 따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러나저러나 매일매일이 공부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20년  전과 다른 이곳의 풍경들도 말이다. 매일매일 홍대 중, 아직도 젊은 나이지만 요즘의 나는 어쩌면 조금씩 더 젊어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여정,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외쳐본다. 아참, 과로사하지 않게 조심하는 것, 잊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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