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제는 "이혼"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이혼가정 수는 늘어나고 있고 이혼사실을 숨기기보다 드러내어 솔직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미덕이 되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잦은 이혼 소식은 이혼을 한 나에게도 참 씁쓸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혼"이 자랑스럽진 않다. 더 행복하기 위해, 아니 덜 불행 해지기 위해 한 결정이긴 하지만 아이를 두고서는 이기적인 결정이었음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 엄마도 참 많이 다투셨다. 어쩌면 나보다 엄마가 아빠와의 이혼을 더 심각하게 생각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 상황이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붙잡고 견디셨던 것 같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이혼가정은 부끄러운 가정이었고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는 최소한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이혼도 그 시대의 트렌드나 유행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의 사회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고 누군가의 공격을 견디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나의 권리를 되찾는 것을 주체적인 삶이라고 하고 있다. 이혼을 하자고 통보하고 실제로 법적인 절차가 끝나기까지 약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읽었던 책의 제목을 보니 나는 참으로 이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미 마음속의 결정은 해두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들을 마련했던 것 같다.
이혼을 목전에 두고도 계속 생각하고 갈등하였다. 상대가 마음에서 떠났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꼭 결혼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마음이 떠났다고 해서 이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관점에서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하고 싶을까? 이혼을 하지 않고도 내가 하고 싶은 최소한의 것들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 그러던 와중 손에 집어 들었던 책은 1.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발췌)
“인간이란 누구나 그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뿐인 아주 특별하고 주목할 만한 존재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직 단 한 번, 그곳에서 서로 교차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점을 지나는 유일하고도 경이로운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삶은 저마다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 가는 과정이다. 삶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에 대한 암시다. 일찍이 어느 누구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그 소원이 정말로 나 자신의 내부에 충분히 깃들고, 나를 이루는 모든 존재가 그것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고 강하게 바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네가 너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시도하기 무섭게 이루어질 것이고 너의 의지를 훈련이 잘된 망아지처럼 다룰 수 있을 거야.
자기 존재의 실체와 이유, '절대 선'에 대한 도전의식과 반감, 도대체 이런 감정은 무엇인지 방황하면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좌절감 속에서 이 책은 여러 세대에 걸친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본연의 자신에게 해답이 있다는 것 또한 밝혀주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내 "이혼"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순 없었지만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내 자신에게서 답을 끝끝내 구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더 본질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2. 철학의 힘(김형철)
(발췌)
후회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 어떤 행동을 한다. 둘째, 그 행동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셋째, 자책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 멈춘다면 아직은 후회가 아니다. '그만 잊어버리자'하고 극복한다면 괜찮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되뇌며 자책한다면 후회에 빠져든 것이다.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집착에서 비롯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지으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돌아보되 후회하지 않는' 성숙한 사정이 느껴진다. 가지 않은 길을 돌아보는 감정은 호기심이나 미련에 가깝다. '돌아봄'이 지금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추억을 떠올리다가 종내 현재 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 돌아보는 마음이란 그저 미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면, 삶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 마음이 후회인지, 미련과 호기심인지 가만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결혼 전 결혼을 파투 내지 못했을까. 왜 부당한 요구에 맞서 싸우지 못했을까. 왜 그는 우리 부모님께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을까. 이런 내 마음은 미련이 아닌 분명한 후회였다.
니체가 말했다. 후회는 과거에 얽매인 채 연연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정이라고. 후회가 된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후회가 주는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삶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난 다르게 해석하였다. 앞으로 내가 선택할 “이혼”에 후회가 있더라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한 삶을 선택하겠다고..
독서를 통해 이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발견하길 간구하면서도 고르면 고를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이혼 쪽으로 기울기가 기울여졌다. 역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건 불가한 것 같았다. 인간의 뇌란 각자, 그간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다른 해석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고민하고 고뇌하는 이들에게 감히 조언을 하자면.. 책을 통해서 던 명상을 통해서 던 혹은 상담을 통해서던지 어떤 선택의 결과가 나의 자유의지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낸 가치와 의미가 담겼다면 후회를 좀 면하게 될 것이기에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다방면의 노력을 하였으면 좋겠다.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그 생각들을 맞닥들인 게 된다.
이렇듯 이혼을 고민해 본 적이 있거나 이혼을 한 사람들은 이혼과 혼인유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극심한 가정폭력으로 도망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49대 51일의 작은 차이 때문에 망설여지게 된다.
또, 이혼은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결심으로 시작되고 그 시작의 끝은 내가 바라던 게 아닐 수도 있으며 부작용을 함께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부부들이 이 과정의 험난함을 미리 짐작하여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도 법정 앞에 서기 전까진 주변 사람들에게 "이혼할 거야.."라는 말만 계속 늘어놓았던 때가 있었으니..
나는 결국 이혼을 하였지만 자신의 가치나 권리를 되찾는 방법이 "이혼"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감을 느끼면서 내 가치를 찾아 나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예전엔 그런 쇼윈도 부부를 보면 혀를 내둘렀지만 어떠한 삶의 형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안다.
남편의 경제적 능력 때문에 참고 사는 건 고귀하지 못한 삶이 아니라 참고 살 만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니, 어떠한 삶이던 각자가 평가하는 것 외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혼은 곧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계약, 취득세, 중개수수료, 가전구입, 가구 구입, 자질구레하지만 꼭 필요한 생활용품 구매 등. 부동산 계약을 덜컥하고 중도금까지 치르고 난 뒤 잔금까지... 내가 최대한 빌릴 수 있는 금액을 모두 끌어보았던 2년 전의 나를 기억해 본다.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면 되는데 하루하루 사는 건 굉장한 디테일이 필요했다.
나는 이혼이 자랑스럽진 않다. 결혼에 실패했음을 너무나 인정한다. 아직도 이혼이 부끄러워 회사에 이야기하지 않았고 누군가 이혼을 생각한다고 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면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의외로 이혼이 답이 아닐 수 있음을.. 조심스레 이야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