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름이 정말 당신 이름이라고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는데, 사실 저는 잘 몰라요.

by 김멜리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전화기. 업무상 걸려온 전화들을 받거나, 택배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김성민 씨 본인 맞으세요?"


네! 본인 맞습니다. 제가 바로 김성민입니다. 김성민. 흔한 성씨에 흔한 이름인데, '성민'이라는 이름이 아무래도 남자에게 더 많은 이름이라 그런지 내가 여자라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한두 사람씩은 꼭 마주한다. 퀵서비스 배달원 분이나, 우체부 분들은 얼굴을 마주하고 이름을 묻게 되는데, 꼭 내 얼굴을 한 번씩 더 들여다보신다. 마치 '이 이름이 정말 당신 이름이라고요?'라고 묻는 듯이 말이다.


내 소지품마다 적어 놓는 이름 표시. 웃는 얼굴이 꼭 들어가줘야 완성이다.


내 이름은 김성민. 한자로는 이룰 성(成) 자에 백성 민(民) 자를 쓴다. 한자 변환에서 '김'+'1', '성'+'1', '민'+'1'만 누르면 검색도 할 것 없이 한자 변환이 모두 끝나는 아주 편리한 이름이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소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했다. 작을소(小) 자에 아름다울 미(美) 자를 써서 '김소미'. 으으, 지금 생각해보면 어쩐지 닭살 돋는 이름. 하지만 엄마는 두고두고 이를 아쉬워했다. 아마도 엄마 역시 아들 같은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엄마는 특이한 이름을 호적에 갖고 친구들 사이에선 가명을 만들어 평생을 살다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예쁜 이름을 새로 찾아내 개명을 했다. '내 동생, 곱슬머리~ 별명은 서너 개'하는 노래처럼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엄마는 두 개의 이름을 지나 마침내 만난 세 번째의 이름을 만족해하며 산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도 가끔 개명을 하고 싶진 않냐 묻곤 한다. 해보니 별 것 아니라며, 이제라도 예쁜 이름을 하나 지어주고 싶다고 말이다.


이름이 예쁘지 않아 아쉬웠던 순간은 없었다. 이름이 가진 의미나, 뜻 같은 것과 상관없이 그저 나를 가리키는 문자나 소리라고만 여겼다. 나를 다른 존재들과 구분 짓기 위한 표시 정도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는 내 이름보다는 이름 뒤에 붙는 것들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반장, 1등, 대상 수상자, 책임, 팀장 같은 것들. 이름은 어차피 내게 주어진 것이고, 나는 그 이름에 덧붙일 것들만 찾아 헤맸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것들로 채워 넣고 싶었고, 남들이 모두 다 옳다고 말하는 것들만 가져다 대고 싶었다.


그렇게만 살았더니 나는 남들이 말하는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밖에서 요구하는 기준들을 착실히 맞춰나가는 삶. 친구들은 나에게 날 미워하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말한다. 선생님들에게도, 집에서도, 친구들의 부모님 사이에서도 나는 어지간하면 착한 아이였다. 달에 두어 번은 상장을 타서 집에 갔고, 학교 교문 앞엔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자주 내다 붙었다. 부모님의 잔소리 없이도 별로 속 썩이지 않고 인 서울 대학에 진학했다. 내 '이름'보다는 '이름에 따라오는 것들'에 충실한 삶을 산 결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평생 가져보지 않았던 의문을 갑작스레 품게 됐다. '내 이름은 왜 김성민이지?'하는 의문 말이다. 전공강의 중에 들었던 기호학 수업 때문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기호학 수업을 들은 학기에 함께 수강하던 토론 수업의 과제 때문이었다. 토론 수업의 사전 과제로 주어진 글쓰기 글감을 어떻게 살려볼까 하다가 그날 낮에 들었던 기호학 강의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에 대해 한 참을 타이핑하다가 문득 나라는 사람의 기표와 기의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그날 과제가 굉장히 하기 싫었음이 분명하다.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소쉬르는 '기호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 그리고 기호 그 자체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기표(記表)는 쉽게 말해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표상이고, 기의(記意)는 그 안에 가진 의미를 뜻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회사 생활에 지쳐있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커피 기프티콘을 보냈다. 이때, 내가 친구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기의'이고, 카톡으로 보내진 커피 기프티콘이 '기표'다. 나의 마음과 표현이 결합되어 '기호'를 이룬다.


그렇다면 내 이름은 어떨까? 나는 '김성민'으로 표시되는 사람이다. 나의 이름은 나의 할아버지에게서 왔고, 나의 아버지의 손으로 호적에 등록됐다. 할아버지는 내게 왜 '성민'이라는 이름을 주셨을까? 그건 내가 우리 집의 '하나뿐일'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91년 생으로 남아선호 사상이 지금보다도 더 강하던 시절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딸로 태어난 나를 보고, 아들을 더 낳지 않을 거라면 나에게 '성민'이라는 이름을 주라고 하셨다. 내 항렬의 돌림자가 '성'자였고 그 뒤에 '민'자를 붙여서 나는 아들 이름을 가진 딸, 성민이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주려고 하셨던 건 무엇이었을까. 아들 없는 집에서 아들 노릇을 하라는 뜻이셨을까,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같이 살라는 의미였을까, 것도 아님 딸만 달랑 하나 낳아놓고 더 아이를 낳지 않겠다 하는 아빠와 엄마에 대한 불만의 표시셨을까. 뭐, 그중 어떤 것이든 내 마음엔 들지 않는 '기의'들이었다. 그 전까진 내 이름에 대해 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이 이름이 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리고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친할아버지를 만나 뵌 순간이 존재하지 않아, 이 이름에 대해 되묻지도 어떤 이유나 변명을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다만, '성민'이라는 이름이 내게 오기까지 그 어디엔가는 아들이 갖게 된 첫 딸에 대한 사랑이 한톨쯤 담겨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다음부터는 또 다른 내 이름이 갖고 싶었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표시한 내 이름 말이다. 호적에 기록되어있고, 또 지금껏 평생 불려 온 이름을 버리고 싶단 생각은 아니었다. '성민'이라는 이름에 애정과 관심을 담아 수없이 불러온 나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기에.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이름 말고, 내가 '획득한' 이름이 갖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세례를 받게 됐다. 당시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피폐해져 있던 내게, 학교의 신부님께서 세례를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뜻밖에 두 번째 이름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 교리 수업을 마친 뒤 세례를 받았다. 두 번째 이름이자 내가 선택한 첫 이름은 '멜라니아'. 신부님과 함께 고민하며 고른 이름이긴 하지만, 내가 의미를 주고 선택한 첫 이름이다.


성녀 멜라니아는 열세 살의 나이에 집안의 강요로 사촌과 결혼했다. 원래 타인을 도우며 수도자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딸을 꼭 결혼시키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바람에 순종한 것이다. 멜라니아는 두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두 자녀 모두 일찍 죽는다. 멜라니아는 크게 상심했고, 자신이 원래 원했던 삶을 살기로 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남편과 함께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수천 명의 노예를 해방시켰다. 말년에는 그녀를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져 여자수도원을 세웠고, 남편이 먼저 떠나자 남편을 기리기 위해 남자수도원을 세우기도 했다.


부모에게 순종했지만 결국 자신이 원했던 삶을 택해 성녀가 된 멜라니아의 이야기가 좋았다. 마지막에 그녀를 따르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도 좋았다. 부와 명예와 권력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역시 '명예'다. 친구들이 '멜라닌 색소'같다며 로즈메리나 릴리안 같은 예쁜 이름이 어떻냐고 했지만 끝까지 '멜라니아'를 고집했다.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첫 번째 이름의 의미가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온라인에 글을 쓰고,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내 필명과 닉네임은 '멜리'가 되었다. 멜라니아를 줄여 '멜리'라고 쓰고 있다. 나의 두 이름, 성민과 멜리. 내게 주어진 것과 내가 만들어 가진 것. 사실 둘 다 나를 표현하는 소중한 이름들이다. 다만 내가 두 번째 이름을 가진 순간부터, 나는 나를 수식하는 것들보다 나라는 인간 본체가 가진 것들에 집중하고자 하는 맘을 갖게 됐다. 물론 남의 눈치나 평가를 무시한다는 게, 늘 말처럼 쉽진 않지만.


내 이름은 김성민. 그리고 가끔 김멜리라고도 불린다. 누군가 어떤 의도로 나를 부르느냐를 의식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삶을 살고 싶다. 내 이름에 따라오는 것들 보다는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삶, 매일 내 안의 진짜 나를 발견하는 삶이기를.



전주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감성민 작화실'. 손가락으로 가려서 '김성민'처럼 보이게 찍었다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