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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Nov 19. 2023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북리뷰

나이 드는 나를 모두 받아들이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주 떠들고 있듯이, 요즘은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엇비슷한 느낌을 받을 법도 하나, 나의 경우는 더욱 각별해서 뭐 하나 이루지도 못한 한 해가 끝난다는 느낌만 받는 수준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깜깜한 구렁텅이로 향하는 급격한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고 있다. 잘 된 일이 뭐 하나 없는 것도 모자라서 몇 주 전에는 무릎까지 다치는 통에 귀중한 여가 시간까지 상실했다. 쇠락과 슬픔과 질병이 지배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무기력에 항복하기 직전이었다.


그 와중에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그 모리 교수가 남긴 원고로 만들어진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인생수업 도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은퇴한 뒤로 자신의 삶이 저물어가는 모습에 많든 적든 필연적인 낙담을 겪는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삼았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나와 잘 맞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확실히 위로가 되는 부분들이 제법 있었다. 인생에 나아질 구석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쇠락과 고통과 죽음뿐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고려하는 고령자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출판사 제공 도서 리뷰입니다)


이 책에서 노년의 삶을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을 뽑자면 첫째가 명확한 지각이다. 나이를 먹어 자연스럽게 떨어진 지각력을 되살리자는 소리가 아니라, 현재, 현상을 정확히 관찰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밀려오는 절망에 짓눌려 불안을 느끼고, 오지도 않은 불안에 또다른 불안을 느끼기 쉽다. 공황장애를 겪어보거나 이에 대해 알아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할 만한 대목인데, 저자는 자신의 천식 경험으로 이 교훈을 현실감있게 전달한다. 고령의 나이에 천식에 걸린 모리 교수는 발작이 찾아올 때마다 고통과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혔다가, 안정되고 나면 이까짓 병따위 자기가 때려눕히고 말겠다고 자신만만해졌다가, 그러다 상태가 또 악화되면 불안에 사로잡히길 반복했다. 가장 기본적인 생명 활동인 호흡이 어려워지는 마당에 누군들 천식 악화로 삶이 끝나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저자는 이 반복에서 한 걸음 떨어져 절망과 희망이 반복되는 양상을 지켜보고 파악했다. 그럼으로써 짤막한 상승과 하강에 휘둘리지 않고 전체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좀처럼 쉽지 않은 기예로 느껴지기도 하나, 질병으로 인해서든 다른 삶의 부침에 의해서든 일희일비에 시달린 나머지 끝없는 절망이 반복될 거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새겨들을 만하다. 절망이 반복되면 그 사이에 희망도 돌아온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더 큰 흐름을 받아들이고 희망에 집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자면 나처럼 비관적이고 온건하지 않은 사람은 종종 그런 의문을 느끼기도 한다. 대체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희망을 찾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저자는 여기에도 답을 해두었다. 

“희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의 묘미는, 그것이 인생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넓게 보면 이것은 꾸준한 노력에 깃든 희망이 자기 치유를 향해, 더 따뜻한 공동체와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는 믿음을 뜻한다.” 

요컨대 희망을 찾아가는 일이란 나 혼자만의 인생을 넘어서서 나와 연결된 타인과 공동체를 믿는 일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나만의 희망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들지 몰라도, 내 주변 사람들을 믿는 일은 분명 가치 있게 느껴진다. 희망을 시니컬하게 생각한다면 곱씹어볼 지점이다.


명확한 지각을 갖추면 타협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적정선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죽음이다. 노령에 대해 이야기하니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죽음은 두렵다. 가까운 이를 상실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죽음과 죽음으로 향하는 길의 고통에 매달리면 일상도 나도 잃고 만다. 결국에는 타협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화에 따른 신체 퇴행과 자아 상실도 죽음 못지 않게 두렵다. 그러나 저자는 “신체는 나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통합’해서 연결고리를 잃지 말라 한다. 죽음까지 포함해서 모든 변화를 거치는 모든 나 자신이 여전히 ‘나’임을 인지해야만 두려움과 타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의 건강하고 훌륭했던 나만을 인정하고 그리워하며 매달려선 지금의 나는 비참하고 괴롭고 공포에 시달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대목은 노화와 죽음을 앞두지 않은 나에게도 울림이 큰 부분이었다. 사소한 병증과 우울감의 하강곡선에 놓인 기간 동안 나는 제법 훌륭했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으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과거의 나를 비교대상으로 삼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고, 잡다한 변화를 겪고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기분이 나아진다. 적어도 나를 경멸하진 않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노년의 타협과는 좀 다른 맥락이지만 어떻게든 이어질 나를 잘 꾸려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지각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들과 타협을 이루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늘 슬픔과 분노에 차있고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어 늙는 게 아름답고 바람직하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고립되지도 않는다. 저자는 여든 여섯이라는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모두 절단할 위기에 처했던 친구 조시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그는 분노와 절망과 비탄을 거치면서도 운전자를 용서했고, 사고가 일어난 자리에 자기가 있었을 뿐이라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과 애인이 큰 도움이 되었으며 긴 치료와 변해버린 생활을 버티고 다시 여행을 떠날 기대를 품게 해주었다. 이런 일화를 들으면 감탄하고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한편으로 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될 수 없겠다는 실망감도 드는데, 그래서인지 저자가 써둔 자신의 작은 일화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굴러오는 깡통을 피하려고 뛰었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길을 잘 찾을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기도 했다는 얘기, 기관지염에 걸렸는데도 중국 여행을 강행해서 천식으로 악화된 얘기 같은 것들이다. 어느 것이고 모두 실망스럽고 두려우며 후회스러워 암담한 감정에 사로잡힐 것 같은데, 저자는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신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거나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면 두렵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충분한 비탄을 거쳐 결국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한 장을 차지한 제목처럼 ‘렛 잇 비’인 셈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현재를 사는 이상 지나간 것들에 매달리거나 다가오는 것들에 떨면서 살 수는 없다. 저자는 이렇게 이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나의 본모습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늙을지에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에 나왔던 ‘내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나를 결정한다’라는 명대사를 떠올려보면 과연 나를 만드는 것은 지금 나의 행동이고 행동을 끌어내는 것은 삶을 보는 관점이구나 싶기도 하다.


이밖에도 책은 좋은 관점을 갖고 자신의 내외로 일어나는 것들을 받아들이며 좋게 나이들어가는 방법들을 구체적인 항목과 일화들을 덧붙여 소개하고 있다. 잠언집처럼 좋은 말이 많아 하나하나 소개하긴 어렵지만, 실제로 나이가 많이 들지 않았더라도 나이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거나 나처럼 삶의 하강곡선에 빠져들었다는 생각이 들고 후회와 비탄과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모두 읽어볼 만하다. 이 아름다운 가르침들을 다시 훑어보는 동안 자신이 별로 훌륭하게 살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짓누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 또한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 Daum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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