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프린터와 전동 칫솔을 수리했다고 생각했지만, 프린터가 다시 반응이 없음.
나 원 참. 7월 말에 잡다한 물건들이 고장나서 수리한 얘기를 9월까지 쓰게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튼 프린터가 아예 켜지지 않게 된 것은 그동안 경험해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고장이었다. 인쇄가 잘 되지 않는 증상은 그동안 수도 없이 겪었고,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떻게든 극복해왔다. 만화방에서 도입한 서비스를 이용해서 잉크를 리필하기도 했고, 리필 세트를 사서 드릴로 카트리지를 뚫고 주사기로 잉크를 주입하기도 했다. 프린트와는 상관이 없지만 스캐너를 뜯어서 정렬을 다시 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프린터가 아예 켜지지 않게 된 적은 없었다.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특별한 자격 없이 경험만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치료하던 노인이 어느날 자기가 치료했던 사람이 혼수상태가 된 모습을 목도한 셈이다. 결국 올 게 오고 만 것인가. 어쩌면 내가 미뤄온 죗값의 고지서가 한번에 날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물건이 고장났으면 원인은 알아보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아니, 원칙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인 것 같으니 정정하자. 그게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 방식이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은 자가 슬픔의 원인을 찾고 요리에 관심이 많은 자가 맛있는 음식의 비결을 찾듯이, 고장난 물건을 보면 이유 정도는 알고 싶어지는 게 나의 성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프린터 플러그를 빼고 몇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끼우기를 반복했다. 내부의 전류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을 해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다이얼을 돌리는 브라운관 TV를 다루듯이 두어 번 패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하등 쓸모없는 짓이라 그만두었다.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건 우연히 접촉면이 움직이는 등의 임시방편이지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해결은 될 수 없었으리라.
결국 프린터를 뜯지 않을 수가 없는 단계가 왔는데, 생각만 해도 우울해졌다. 대단히 높은 확률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물리적 충격으로 망가진 게 아니니 전자적 회로의 일부가 망가진 것일 텐데 그런 건 내가 다룰 수 없음을 나는 잘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분해 조립과 청소, 그리고 단순히 부러진 물건을 다시 붙여놓는 것 정도다. 따라서 괜히 시간을 버리며 프린터를 분해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던 더라 내가 죽인 사람을 해부하는 심정으로 프린터를 부분부분 해체했다.
프린터 분해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프린터를 그렇게 닦고 또 닦았는데도 한참 부족했다는 점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보이지 않던 내부의 벽면에도 잉크가 묻어 있었다. 젠장. 프린터를 기울인다는 게 이렇게나 위험한 짓일줄 누가 알았겠는가. 슬슬 고장의 원인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원 스위치 뒷면의 내부 공간을 확인한 나는 예감이 적중한것을 확인했다. 그 부분에도 잉크가 묻어 있음은 물론이고, 스위치가 달린 기판을 뽑아보니 메인보드와 스위치 기판을 연결하는 전선 커넥터가 살짝 녹아 있었다. 즉, 탱크의 잉크 잔량을 확인하지 않고 카트리지와 씨름을 벌이다 떨어뜨린 부품을 찾겠다고 프린터를 이리저리 기울인 결과 잉크가 흘러넘쳐 전선의 연결부에 스며들었고, 이후에 합선이 일어나 커넥터가 타버린 것이다. 죽음의 운명이 따라다니는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같은 흐름이다. 그 영화였다면 프린터가 폭발해서 유리가 목에 박혔겠지만.......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살면서 크든 작든 절망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개선과 발전을 바라고 한 일이 자신을 더 깊고 어둡고 더러운 진창에 빠뜨렸을 때는 특히 고통스럽다.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분통이 터진다. 물론 비운과 실수로 유발된 손해가 더 클수록 부정적인 감정도 심해진다. 인간인 이상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약간 더 빨리 벗어날 방법은 있다. 물건이 고장난 이유를 알아보듯이, 일을 망친 이유를 짚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가진 특질, 사고방식, 행동양식, 습관 따위가 문제의 근간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문제가 일어난 시점에 결코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분노와 슬픔과 절망의 감정은 차츰 이성적 분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최소한 그때 몰랐던 걸 지금은 아니까, 이후에 문제를 해결하고 원인을 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고통에 길게 사로잡혀서 좋을 건 딱히 없다. 빌어먹을.......
아무튼 녹아버린 부품을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으니, 고장의 원인을 알았고 죽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프린터를 다시 재조립하고 앉아서 프린터를 AS받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린터 자체를 택배로 보내는 것도, 들고 센터까지 가는 것도 고역이다. 부품만을 보내달라고 하는 게 가능할 것인가?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예는 들어본 적도 없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것은 오랜 중고거래로 쌓인 포장 기술을 극한까지 발휘해서 택배 접수를 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또다시 어차피 망한 거 내멋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전원이 안 들어오는데 이보다 더 망할 게 있나. 나는 프린터를 다시 뜯고 전원 스위치쪽 기판의 커넥터에서 납작한 연결선을 분리했다. 기판은 자세히 살펴보니 커넥터 안쪽에 전선의 피복이 녹아서 눌어붙은 정도로만 망가진 듯했다. 가장 중요한 금속 부품은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복구하지 못할 것도 없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부분이 아니라 단순히 전원 인가 신호를 주고받는 부품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커넥터 안쪽의 이물질을 칼로 긁어내고 청소했고, 납작한 케이블을 즉석복권처럼 살살 긁어내어 금속 전선을 다시 뽑아냈다. 그뒤에 조립하고 전원을 켰다. 켜졌고, 시험해보니 인쇄도 할 수 있었다. 장대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어쨌든 살려내긴 한 것이다. 엉망이 된 물건이 나의 의도대로 다시 작동하는 순간의 기쁨이란 얼마나 각별한가. 아마도 포기해서 얻는 안정보다는 한층 더 자극적이리라 생각한다. 빠르게 포기해서 얻는 평화가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물건의 생명을 되돌리는 과정은 매운맛이고, 음식도 그렇듯이 여기 길들면 벗어나기 힘들다는 말이다. 이것도 중독이라면 중독일 텐데, 이번 일처럼 매운맛은 이제 사양하고 싶다. 매운맛이 아무리 맛있어도 삼시세끼 불닭만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평화와 즐거움의 균형을 잘 잡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쓰면서도 어제는 부러진 에어컨 날개를 고치느라 한참을 애먹었다. 모터가 연결되는 부분이 부러져 떨어졌을 텐데 청소하면서 대충 치워버린 것인지 찾을 수 없어 눈대중으로 복원해야 했다. 종이, 퍼티, 순간접착제와 베이킹소다 등을 거치며 만들고 끼우고 깎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성공한 재료는 순간접착제와 휴지였다. 그리하여 에어컨도 정상화되었으나 어느덧 계절이 흘러 한동안 작동시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과연 미래의 내가 수리해두길 잘했다고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분해할 때 망가질 걸 괜히 애써 고쳤다고 후회할 것인가. 결과는 훗날 확인하기로 한다. 할 만큼 했으니, 그때는 노여움 없이 납득하길 바랄 뿐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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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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