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피자에 대한 소수 의견
나는 좋아하는 음식도 별로 없는데다 간편하다는 이유로 식사의 절반 가량을 빵으로 해결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빵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런 선택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빵은 효율적이고 멋진 식사계의 구원자다. 그런 이유로 빵의 파생형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피자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닌자 거북이처럼 피자를 주식으로 삼을 수야 없겠지만, 재정적 문제와 건강 문제가 해결된다면 못 먹을 것도 없지 않나 싶다.
피자의 멋진점은 그것이 따끈따끈한 빵인 동시에 다른 음식을 곁들여 같이 먹는, 한 상 차림이라는 것이다. 김밥이 밥과 동시에 다른 음식을 같이 먹는 압축적 한 상 차림이라고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밥처럼 무엇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피자도 항상 다른 것이 될 수 있으며, 치즈만 올라가거나 살라미만 올라가는 등의 극단적 형태를 제외하면 대체로 다양한 맛과 식감을 한꺼번에 선사해서 질리지 않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나라마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이 있으니 희귀 음식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만들 필요가 없는 완제품이란 점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서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자처럼 멋진 음식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하고 많은 피자 중에서 무엇이 가장 훌륭한 피자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제각각 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의 거시적 의견은 ‘가까운 피자가 제일’이다. 내가 진짜 못하는 집을 안 가봐서 하는 소리일수도 있겠지만, 맛없는 피자의 맛없는 수준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빨리 먹을 수 있으면 그게 제일이다. 피자는 스파이더맨이 배달하기로 작정했을 정도로 속도가 중요한 음식인 만큼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머나먼 번화가에 자리한 미슐랭 화덕 피자보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보급형 피자가 나은 것이다. 사진사들이 가장 좋은 카메라는 ‘당장 꺼낼 수 있는 카메라’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피자는 ‘언젠가 꼭 이걸 먹으러 어딜 가야지’ 하고 꿈꾸는 음식이 아니라 30분 후에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음식이다. 가까운 피자가 소중한 피자다.
좋은 피자에 대한 미시적 의견은 ‘불고기 피자’다. 다만 여기엔 나의 미각적 나태함이 반영되어 있다. 불고기 피자를 선호하는 이유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고 적당히 매콤한 맛과 고기 씹는 맛이 첨가된 불고기 피자라면 후회할 일 없이 안전하다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콤비네이션 피자도 안정적인 선택이다. 그밖에는 ‘이 메뉴’가 좋다고 기억하고 시킬 만큼 자주 먹지 못해서 의견이 없다. 뭘 시킨들 대체로 만족할 게 틀림없다.
약간 옆으로 새는 얘기로, 피자 토핑에서 파인애플 피자가 용납 가능한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들어보셨는지? 이에 대한 내 의견은 ‘빨리 내놔’이다. 토마토처럼 파인애플도 가열해서 먹는 게 그 나름대로 맛이 좋고 다른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상해봤자 결국 피자가 아닌가. 달콤한 딸기 피자도 만족스럽게 먹어본 입장으로서 시중에 유통되는 피자 중에 용납 불가능한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뭔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깐깐하게’ 좋아한다는데 그런 관점으로 보면 나는 피자를 진심으로 좋아하진 않는 모양이다. 엄밀한 피자 애호가들께는 좀 면목없다.
이런 맥락 없는 피자 취향이 어디에서 왔을까 더듬어보자면 짚이는 구석이 하나 있다. 중학교때 친구 하나가 피자헛 쿠폰이 생겼으니 먹으러 가자고 꼬셔서 세 명이 같이 갔을 때였다. ‘피자헛’이라곤 함께 즐기자는 CM송밖에 몰랐으므로 나도 드디어 그 유명한 피자헛 피자를 먹어보는구나 기대에 부푼 채 자리에 앉았는데, 메뉴판을 보고 계산을 해보니 쿠폰을 적용해도 만만치 않게 비쌌다. 쿠폰으로 한턱 낼 심산이었던 친구는 결국 돈을 보태라고 요구했고, 우리는 지갑을 탈탈 털어 간신히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피자를 함께 즐기고 나올 수 있었다. 셋 중 누구 하나 피자헛의 피자 값도 모르고 그렇게 비쌀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먹은 피자 맛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피자에 대한 원한이 위장 깊은 곳에 새겨진 건 기억한다. 그 뒤로 피자를 먹을 기회만 생기면 뭐가 되었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식성이 된 게 아닐까 추측한다. 마치 슈퍼히어로 만화에서 악당이 탄생한 계기 같은 이야기다.
그 뒤로 세월이 흘러 대학교 시절에는 한이 맺힌 사람처럼 피자로 점철된 나날을 보냈다. 학교 근처의 마트에서 큼직한 피자를 퍽 합리적인 값에 팔고 있어서, 걸핏하면 몇 명이 모여 피자와 맥주를 사다 먹었다. 어찌나 자주 갔는지 맥주 앞에서 고민하는 손님에게 싸고 좋은 맥주를 나서서 추천하게 되었을 지경이다. 당연히 피자집 아주머니도 우리를 기억하게 되었는데, 이 아주머니가 자른 피자는 항상 크기가 제각각이라 공평하게 먹기 위해 제법 머리를 굴려야 했다. 불완전한 것에는 그 나름대로 즐길 만한 매력이 있는 법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치킨과 함께 특식의 양대산맥으로 여겨졌던, 혹은 최소한 나는 그렇게 여겼던 피자의 위세가 근래에 들어 시원치 않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너나 할것 없이 체중 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밀가루 음식을 꺼리게 된 탓이다. 게다가 ‘썩 괜찮은’ 피자의 값도 만만치는 않으니 당연히 피자 같은 음식에 돈을 쓸 턱이 없다. 돈을 좀 더 쓰더라도 먹어본 적 없는 이국의 산해진미를 찾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기야 사람이 가까운 사람들과 모임을 열고 그럴 듯한 식사를 할 기회란 많아야 1년에 50회 정도에 불과할 테니 기왕이면 더 특별한 걸 먹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피자는 나에게 하루하루 더더욱 기회가 있을 때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어가고 있는데…… 근래에 결혼한 친구의 홈파티에 가서 근사한 피자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다소 안도했다. 집에서 멋지게 몇 장을 펼쳐놓고 기호에 따라 이것도 저것도 먹어볼 수 있는 파티 음식으로서 피자는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은 것이다. 피자의 부흥기가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함께 즐기는 파티메뉴로서 내 곁을 떠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