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대륙을 지우는 용기

AI 시대, 인간의 새로운 항해

by 김형수


18세기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아직 실재하지 않는 거대한 대륙이 의심 없이 그려져 있다. 바로 ‘테라 오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Terra Australis Incognita)’, 즉 ‘미지의 남방 대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륙이다.


이 허상의 대륙이 지도에 등장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북반구의 거대한 육지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우아한 이론, 둘째, 미지의 황금 대륙에 대한 탐욕스러운 욕망, 셋째, 지도 위 빈 공간을 채우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학자들은 남반구에 반드시 거대한 땅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은 수세기 동안 당연한 지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768년,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의 첫 번째 항해가 이 거대한 허상을 산산조각 냈다. 그의 여정은 새로운 땅을 '더하는' 탐험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지식을 '빼는' 항해였다. 쿡은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 해안을 정밀하게 측량한 후, 항해 보고서에 확신을 담아 기록했다. "기존 학자들이 주장했던 남쪽 대륙에 관한 모든 증거와 주장은 남위 40도 이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추측과 소문이 아닌 직접 확인한 사실을 바탕으로, 지도 위에 그려진 허상의 대륙을 지워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그럴듯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마주할 때, 우리는 종종 18세기 지도 제작자들과 같은 마음을 품게 된다. AI가 만들어내는 세계에 매혹되지만, 그 속에는 사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2023년, 뉴욕의 한 변호사가 ChatGPT가 제공한 가짜 판례를 법정에 제출했다가 큰 망신을 당한 사건을 기억하는가?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덧칠해 낸다. 마치 18세기 지도 제작자들이 미지의 남반구에 상상 속 대륙을 그려 넣었던 것처럼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AI가 생성하는 허구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할루시네이션(환각)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한 오류를 넘어,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마치 확실한 사실인 양 포장하여 제시한다. 이는 마치 테라 오스트랄리스가 수 세기 동안 ‘당연한 지식’으로 통용되었던 것과 같다.


쿡이 맞선 것이 미지의 바다와 낯선 해류였다면, 우리가 맞서는 것은 정교하게 조직된 허구의 정보다. 그리고 이 정보는 끊임없이 생성되어 우리를 둘러싼다. 여기서 AI 시대 인간의 새로운 역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AI가 그려낸 무한한 지도를 무작정 받아쓰는 필경사가 아니라, 그 지도를 들고 직접 항해하며 암초와 신기루를 가려내는 비판적 탐험가의 역할이다.


AI의 역할이 무한한 '생성'과 '추가'에 있다면, 인간의 역할은 신중한 '검증'과 '삭제'에 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더 많이 아는 것'이 지혜였다면,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무엇을 걸러낼 것인가'가 더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제임스 쿡의 위대함은 새로운 땅을 발견한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기존의 잘못된 지도에서 허상의 대륙을 지워낸 용기에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창의성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단순히 순식간에 수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걸러낼지 판단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능력, 검색 결과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선별하는 기술, 그리고 이제는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진위를 판별하는 역량까지. 이 모든 것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지혜다. 특히 창작 분야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AI가 몇 초 만에 그럴듯한 이미지나 텍스트를 생성하는 시대에, 창작자로서 인간의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수많은 결과물 중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하고, 맥락에 맞게 편집하며,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삭제하는 능력에 있다.


AI는 마치 무한한 정보와 콘텐츠를 생성하는 기계적 지도 제작자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지도를 들고 직접 항해하며 허상을 지워내는 항해사의 역할을 맡게 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존 지도를 수정하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사고의 항로가 열린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구별해내는 능력이다. 18세기 제임스 쿡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허상의 ‘테라 오스트랄리스’를 지워낼 때다. 다만 이번에는 디지털 지도의 세계에서 말이다.


지도에서 대륙 지우기_이미지 by 김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