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샤를빌의 기억, 그리고 AI 시대의 '총체 예술가'
어느 여름, 프랑스 북동쪽 아르덴 숲 끝자락의 작은 도시에서 나는 예술의 미래를 보았다. 36년이 지나 그것이 AI의 언어로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어떤 도시는 제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파리에서 기차로 두 시간 반. 벨기에 국경 바로 아래, 아르덴 숲이 끝나는 자리에 샤를빌메지에르라는 도시가 있다. 인구 4만 5천. 19세기 반항의 시인 랭보가 태어난 곳이라는 것 말고는, 딱히 찾아갈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도시가 스스로를 '인형극의 세계 수도'라 부른다.
허풍이 아니다. 1981년에 세계 유일의 국제인형극연구소가 이곳에 들어섰고, 1987년에는 그 안에 ESNAM이라는 학교가 문을 열었다. 국립인형극예술학교.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아니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형극 배우-창작자만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3년마다 한 번, 전 세계에서 열대여섯 명만 뽑는다. 한 기수에 하나의 학급. 3년을 함께 배우고, 졸업할 때 각자 자신만의 솔로 작품을 만들어 올린다.
1990년 여름, 나는 그 첫 번째 졸업 무대를 보러 갔다.
정해진 극장이 없었다.
졸업생들은 각자 자기 작품에 맞는 공간을 스스로 찾아 골랐다. 연구소 건물 안의 작은 방, 복도, 어딘가의 지하. 누군가에게는 관객 열 명이 둘러앉는 밀실이 필요했고, 누군가에게는 천장이 높은 텅 빈 공간이 필요했다. 이틀 동안 관객은 샤를빌 시내를 떠돌며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작품을 만났다.
그리스, 세르비아, 스페인, 아일랜드, 프랑스, 한국—10개국에서 온 16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3년간 갈고닦은 것을 세상에 내놓는 자리였다.
내가 본 것은 '인형극'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인형극을 완전히 해체하는 무엇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작품 전체를 만들어내는 방식 그 자체였다.
졸업생 한 명이 무대에 선다. 인형의 개념을 잡고, 직접 만들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조명과 소리를 설계하고, 그 작품이 펼쳐질 공간까지 고른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그 안에서 연기한다.
조형, 서사, 공간, 시간, 신체—한 작품을 이루는 모든 층위를 한 사람의 예술적 비전이 관통하고 있었다. 공간의 선택까지 포함해서.
바그너가 꿈꾸었던 총체예술이 떠올랐다. 음악, 연극, 무용, 미술이 하나로 통합되는 이상. 바그너는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와 100명의 오케스트라로 그것을 상상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는 몸 하나, 인형 하나, 그리고 이 사람이 고른 공간 하나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웅장한 스케일이 아니라 촘촘한 밀도로 숨을 멈추게 하는 총체예술.
그 모든 장면 가운데 배우와 인형이 나란히 선 모습이 가장 오래 남았다.
전통 인형극에서 조종자는 무대 뒤에 숨는다. 관객은 인형만 본다. 인형을 매달고 있는 줄은 보이지 않아야 하고, 조종하는 손은 감춰져야 한다. 줄이 보이지 않아야 인형이 스스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마법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 졸업 무대에서 배우들은 숨지 않았다.
인형 옆에 나란히 섰다. 인형을 조종하는 행위 자체가 퍼포먼스가 되었다. 줄을 잡아당기는 손가락, 미세하게 꺾이는 손목, 그 의도와 집중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 그 손길 속에서, 나무와 천으로 만든 인형이—기어이—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줄이 다 보이는데도 인형이 살아 보인다는 게 아니었다.
나무 조각과 천 조각에 불과하던 것이 감정을 가진 존재처럼 바뀌어가는, 그 바뀌어가는 과정 자체가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줄을 숨겼다면 관객은 완성된 환상만 보았을 것이다. 줄이 보이니까, 물질이 생명으로 바뀌어가는 그 길목을 관객이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 속아 넘어가는 대신, 변화가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36년이 지나도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학교를 세운 마르가레타 니쿨레스쿠. 루마니아 출신의 연출가다. 부쿠레슈티의 인형극장을 37년간 이끌며 인형극을 어린이 오락에서 현대 무대예술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1978년 에라스무스상을 받았고, 인형극도 깊은 은유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평생에 걸쳐 몸으로 보여주었다.
니쿨레스쿠가 ESNAM을 세울 때 내건 원칙은 단순했다.
인형을 잘 다루는 기술자를 키우지 않는다. 자기만의 예술적 언어를 가진 창작자를 양성한다.
그래서 이 학교의 졸업 작품은 '솔로'다. 남의 연출을 받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만든다.
니쿨레스쿠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학교란, 들어오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모험이다."
2018년, 샤를빌메지에르에서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교는 지금 그녀의 이름을 달고 있다.
이 글을 쓰다가, 1990년 샤를빌의 기억이 겹쳐 보인다.
그때 졸업생들이 하던 작품과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닮았다. 개념을 세우고, 시각 언어를 구축하고, 서사를 짜고, 시공간을 연출하고, 모든 형식을 한 사람이 마감한다. 그들에게 매체가 마리오네트였다면, 나에게 매체는 AI다.
다만 하나, 결정적으로 다르다.
마리오네트에는 조종자의 손과 인형을 잇는 줄이 있었다. 손가락의 의도가 이 줄을 타고 나무 관절에 닿아야 비로소 움직임이 되었다. AI에는 이 줄이 없다.
마리오네트의 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야 한다.
조종자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그 의도가 줄을 타고 내려간다. 줄 끝의 나무 관절에 닿으면 그제야 인형이 움직인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물질이 버틴다. 나무의 무게. 줄의 탄성. 중력. 물리 법칙이 조종자의 의도를 끊임없이 거스른다. 손가락이 "이렇게 움직여"라고 명령해도, 나무와 줄과 중력이 "그렇게는 안 돼"라고 되받아친다. 그런데 바로 이 거스름 속에서 인형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도대로 매끄럽게 움직이면 오히려 기계적이다. 물질이 버티고 조종자가 그 버팀을 넘어서려 할 때, 그 어긋남과 긴장 사이에서 생명의 느낌이 태어난다.
ESNAM의 졸업생이 3년 동안 배운 것은 이 거스름과의 대화였다. 나무를 깎으면 나무가 말을 건다. "이 방향으로는 구부러지지 않아." 천을 꿰매면 천이 대답한다. "이 무게로는 저 동작이 안 돼." 이런 지루한 대화를 수천 번 반복하는 동안 손끝의 감각이 자랐고, 그렇게 자란 감각이 무대 위에서 찰나의 판단을 가능하게 했다.
AI에는 이 거스름이 없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이미지가 나온다. 지시하면 영상이 생성된다. 조종자의 손과 결과물 사이에 물리적 매개가 없다. 물질의 무게도, 중력도 없이 의도가 곧바로 결과물이 된다. 손가락과 나무 사이에서 팽팽하게 이어져 있던 그 줄이 사라진 것이다.
줄 없는 마리오네트. 내 손에서 인형까지 이어지는 물리적 연결이 끊어진 채로 작품을 만드는 것, AI 시대의 창작이란 그런 것이다.
저항이 사라지면 자유롭다. 그러나 위태롭기도 하다.
물질이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예술가는 자기 안에서만 맴돈다. 프롬프트 몇 줄로 그럴듯한 이미지가 뚝딱 나오는 세계에서, 무엇이 작품이고 무엇이 상품인가. 누구나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게 된 지금, 만든 결과가 작품이 되느냐 소비재가 되느냐, 그 갈림은 어디서 생기는가.
니쿨레스쿠의 답은 이미 1987년에 나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술자를 키우지 말고 창작자를 키워라. AI라는 줄 없는 마리오네트로 무엇을 말할 것인지 사유하는 힘, 물질이 주던 저항이 사라진 빈자리를 개념의 엄밀함으로 메우는 힘.
나는 이것을 '콘텐츠 씽킹(Content Thinking)'이라 부른다.
다시 줄 이야기로 돌아간다.
1990년 그 무대에서 배우들이 줄을 감추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AI로 영상을 만들 때 AI라는 매개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AI를 거쳐 어떤 감각과 이야기가 어떤 시각 언어로 바뀌어가는지—그 과정 자체를 보여주려 한다.
마리오네트의 줄을 감추면 눈속임이 되고, 드러내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AI도 마찬가지다.
ESNAM은 올해로 개교 39년째다. 지금은 제14기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여전히 3년마다 열대여섯 명. 여전히 졸업 때 솔로 작품. 여전히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만든다.
줄이 있을 때도, 없어진 지금도, 물어야 할 것은 결국 같다. 당신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