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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Oct 23. 2017

01. 앉고 싶다

07 - minifiction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링가링가 즐거웁게 춤추자. 링가링가링가 링가링가링 링가링가링가 링가링가링 손에 손을 잡고 모두 다 함께 즐거웁게 뛰어놉시다.

삑--------------------------------------------------------------------------------------------------------------------

노래가 끝나자 진행자가 호각을 울렸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선생들이 불던 호루라기에 불과했지만 호각소리는 광장을 넘어 반도 전체로 울려 퍼질 만큼 우렁찼다. 사람들이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기에, 소리는 굉장해졌다.


광장 중앙에 그려진 원을 따라 빙글빙글 돌던 참여자들이 원 안에 마련된 의자에 앉기 위해 서로를 밀쳤다.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단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상처는 일상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의자에 앉기 위한 별다른 규칙은 없었다.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 최고의 규칙이었다. 신호가 울리기 전까지 다 같이 둥근 노래를 부르며 원을 따라 돌기만 하면 됐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몸뚱이를 밀쳤다. 힘이 센 사람은 먼저 앉은 사람을 들어 올려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원 안은 자유로웠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누구나 앉을 수는 없는 게임을 시작하며 링가링가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원 안의 자유를 사랑했다. 그들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 불렀다.  


참여자들의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태양은 광장을 수놓은 가로수, 가로등, 사람들, 건물들, 아스팔트, 분수 따위를 평등하게 비추었다. 광장의 반대편에 사는 외국인들은 지구의 그림자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동시대의 태양을 나눠 쓰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그림자는 짧아졌다. 빛 속의 사물들은 저마다의 온도로 뜨거워졌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뭇잎들은 조금씩 푸르러졌다. 분수에서 튄 물방울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빠르게 증발했다. 정수리 열기 때문에 현기증이 난 구경꾼 하나가 빌딩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정오의 비둘기들은 주워 먹을 것이 없나 원 밖을 서성였다. 운이 좋은 녀석은 구경꾼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해 대가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뚱뚱한 비둘기도, 비쩍 마른 비둘기도, 먹이를 발견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대가리를 조아렸다. 조나단 노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비둘기의 후예도 담배꽁초를 먹이로 착각해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법을 잊은 광장의 비둘기들은 조아림이 습관이 됐다. 습관은 체형이 됐다. 비둘기들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었다.

호각소리가 멈추자 의자에 앉지 못한 참여자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두리번거렸다. 어떤 참여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희망차게 두리번거렸다. 기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광장에 모인 대다수는 무신론자였다. 무신론자들은 기적보다 횡재를 더 좋아했다. 비둘기들은 불로장생보다 불로소득을 더 선호했다. 오래전 버려진 신은 광장 북쪽 끄트머리에서 50m의 동상이 되어 게임을 굽어보고 있었다. 신은 게임에 관여하지 않았다. 구경은 신들의 오랜 전통이었다.

호각소리가 짧게 울렸다.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자 배지를 달고 다시 원 밖으로 나왔다. 한 참여자가 더 매달 곳이 없어 신발 밑창에 배지를 달았다. 구경꾼 하나가 그 사람을 밑바닥이라고 불렀다. 밑바닥은 걸을 때마다 몸에서 쇳소리가 났다. 밑바닥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게임에 참여했다. 광장 사람들은 그의 성실함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걸음을 시끄러워했다. 배지로 피어싱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으로 피어싱을 시도한 사람이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라고 말한 뒤부터 피어 싱하는 참여자들이 늘어났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신 왼편에 마련된 천막으로 이동해 일용할 양식을 받았다. 연기자 한 명이 받은 것을 자랑했다.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떤 이는 군침을 흘렸고, 어떤 이는 비둘기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이를 본 염세주의자의 눈이 희망으로 번뜩였다. 염세주의자는 염세주의자인 척을 잘해서 염세주의자가 됐다. 낙관론자는 낙관론자인 척을 잘해서 낙관론자가 됐다. 광장이 습관이 된 사람들은 연기에 능통했다. 연기에 능통해야 의자에 잘 앉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소문은 가난처럼 무성했다.


호각소리가 길게 울리자 전보다 많은 사람이 원을 둘러쌌다. 광장의 게임은 모두에게 열려있었다. 의자는 늘지 않았다. 대부분이 낡고 삐걱거렸다. 염세주의자가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기 위해 대열에 섰다. 받은 것을 자랑하던 연기자도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기 위해 대열에 섰다. 밑바닥도 다시 대열에 섰다. 실패자, 허무주의자, 음유시인 모두 똑같이 초심자의 마음으로 대열에 섰다. 그들의 눈에 희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대열의 마법이라고 불렀다. 휠체어에 앉은 노파도 대열에 섰다. 노파는 이미 앉아 있으므로 이긴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참여자가 늘자 보다 큰 긴장감이 광장에 맴돌았다. 시퍼렇게 물든 나뭇잎들이 가지에 매달려 바들바들 바람에 떨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던 새들도 잠시 전깃줄에 앉아 긴장이 고조된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오전과 오후가 다르다고 믿는 노인들이 겨드랑이에 조간신문을 끼고 구경꾼들 사이에 서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태양은 잠든 외국인들을 깨울 준비를 했다. 비둘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스러기를 찾아 헤맸다. 그들은 아무리 배고파도 원 안으로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먹을 것을 찾지 못한 비둘기 한 마리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 전깃줄에 앉아 있는 철새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긴 호각소리가 울리자 밑바닥이 아이를 원 밖으로 내던졌다. 의자는 사람들만큼 삐걱거렸다. 삐걱삐걱 삐걱삐걱 의자에 앉지 못한 연기자가 노파를 일으켜 휠체어를 차지했다. 다리를 빼앗긴 노파는 바닥에 파전처럼 퍼졌다. 삐걱삐걱 삐걱삐걱 허무주의자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갔다. 노파의 코가 삐걱거렸다. 한 구경꾼은 오랜만에 의자가 하나 늘었다며 경쾌해했다. 참여자들은 늘 시간이 촉박했다. 그들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밖으로 던져진 아이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비둘기들이 아이 주변으로 구구구구구 몰려들기 시작했다. 빗방울 하나가 비둘기 발톱 위로 떨어졌다. 비를 맞은 비둘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사람들의 신이 젖기 시작했다. 양말이 젖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었다. 웅덩이마다 비가 고이기 시작했다. 마실을 나왔던 개미떼가 수장됐지만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파전 생각이 간절한 주정뱅이에게 비는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참여자, 구경꾼, 진행자 모두 비에 지져지고 있었다. 진행자가 짧게 호각을 울리자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천막으로 이동했다. 먹다 남은 빵부스러기가 의자에 떨어졌다. 비둘기들이 입맛을 다셨다. 전깃줄에 앉아있던 철새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글쓴이.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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