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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Oct 23. 2017

우리, 어떻게 할까

05 - 리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본 진짜 다이아몬드의 가치

 ‘헬조선’ ‘수저론’ ‘갑질’ ‘열정 페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부르게 된 것들이라고 한다. ‘헬조선’에서 떠나고 싶어 하고, ‘금수저’를 부러워하고, ‘갑질’을 견디고, ‘열정 페이’를 요구받는 사람들. 꿈이 뭐고, 돈은 뭘까.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깨닫는 순간, 우리의 권리와 희망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벌어진, 권리와 희망이 짓밟힌 끔찍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1999년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한다. 반란군의 습격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간 솔로몬 반디, 아프리카에서 무기 밀거래를 하던 용병 대니 아처, 다이아몬드 산업의 부패와 밀수 과정을 밝히려는 기자 매디 보웬이 주인공이다. 솔로몬은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아처는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 매디는 진실을 위해 내전 한복판에서 모험을 이어간다.      


시에라리온은 아프리카의 최빈국,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은 보크사이트와 철광석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며,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곳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토록 가난하며,  왜 불행하게 되었는가. 


그들에게 내려진 자원의 축복은 ‘저주’로 불린다.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정부군과 반군의 핏빛 전쟁 그리고 독점, 밀거래를 통한 내전 자금과 무기 마련, 무자비한 무력행사. 이로 인해 시에라리온은 빈부 격차와 인권 침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국가에서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그저 살기 위해 애쓸 뿐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해 분노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이 내전이라는 내부적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석상들은 가격과 공급량을 통제하기 위해 내전이 계속되도록 부추겼고, 무기 밀거래 업자들은 내전에 쓰이는 무기를 제공했으며, 선진국은 내전 자금과 무기 마련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 영화에서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밀수꾼 아처가 영웅처럼 다뤄졌다는 점에서 상업영화라는 소재의 한계를 느낀다. 장식용‧과시용으로 다이아몬드를 소비한 사람들의 또 어떤가. 영화는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가 정말 ‘피의’ 유통 과정을 거쳐 여자들의 몸을 꾸미게 된다는 진실을 알리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영화는 사람들이 평소에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진짜 다이아몬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다이아몬드에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고 그 희생에 아파하라고 전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실제로 다이아몬드를 만져본 적도 없지만, 보석을 원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보석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자극하곤 한다. 아무리 숨기고 없애려 해도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 비단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만이 아니라 비싼 물건으로 대표되는 ‘부유함의 상징’은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갖지 못한다. 아니, 무엇보다 돈과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이들은 양심을 저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사람을 헤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한다. 그리고 소수의 이기적인 사람들은 대다수 사람에게 ‘당연하지 않은 희생’을 요구한다. 


시에라리온에서는 한창 꿈을 키울 나이의 어린 소년들에게 차가운 총을 쥐여주고는 살인을 하게 하고, 힘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 다이아몬드 채굴을 시키고, 무고한 사람들의 팔을 자르거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전쟁‧학살의 흔적이나 사회의 부조리한 면이 참 많이도 닮아있다. 광주 민주화운동 때가 그랬고,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갑질 논란이 그렇고,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이 그렇다. 물론 그전부터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끝났다고 진짜 끝이 아니고,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2002년 시에라리온의 내전은 마무리되었지만 2만 명의 국민이 불구가 됐고, 7만 5000명이 죽었으며 200만 명의 난민이 생겼다고 한다. 2003년에는 분쟁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킴벌리 협약’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법으로 거래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있고, 소년 병사들이 있으며, 다이아몬드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적‧경제적 약자는 왜 항상 고통과 함께여야 하는 걸까. 이들은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여전히 약하고, 가난하다.      


피의 희생을 대가로 한 다이아몬드가 이제 더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을 대가로 삼은 가진 자들의 돈이, 권력이 더는 부럽지 않다.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고 많은 이들이 희생해 가지게 된 돈과 권력을 누릴 바엔 그냥 가난하고 약한 것이 행복할 것이다.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국가와 정부의 무능력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세월호 유족의 눈물을 바라보며 누군가 이야기했다. “저 사람이 부자였으면, 달라졌을까?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순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라는 존재와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것들이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전쟁과 전염병, 재난 속에서 ‘죽지 않기 위해 사는’ 아프리카 한복판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아직 살아갈 만하다는 점이다. 아니, 다행스럽게도 아직 살아있다. ‘헬조선’인 이곳에서 가난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고, ‘흙수저’인 우리는 그래도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가난함’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동안의 또는 앞으로의 희생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자. 고통을 마주하고, 지켜지지 못한 권리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요구하자. 그렇게... 소수를 위한 헛된 희생이 아닌, 남은 사람들을 위한 소중한 아픔이 되게 하자.



글쓴이 :  마지막 십대의 겨울/ 지니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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