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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Oct 23. 2017

나, 어쩌다 아직

03 - 가난과 기억, 그 사이

나는 음반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용돈 받는 신세인 나는 최소 생계를 유지하고 나면 세계 일주나 음반, 반지, 몰스킨 노트 수집은 사치다.
 
최근 갖고 싶은 영화 OST를 사기 위해 소일거리를 찾던 중 친구에게 회미장일을 소개받았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회반죽이 살에 묻어 화상을 입었다. OST는커녕 병원비가 일당의 곱절은 나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병원을 자주 갔다. 밭일을 했을 때도, 문서작성 일을 했을 때도 몸이 먼저 탈이 났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참 불량한 체력이다.


병원비를 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다 다쳤는데 치료비는 본인 부담? 일하지 않았다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손등 화상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일의 요령을 몰라 다친 것이니 내 책임이 큰 것도 같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지 않은 고용 주체의 책임인 것도 같다. 이를 감시할 법과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인 것도 같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였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반도체 노농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백혈병의 산업 재해 인정을 신청했지만 거부했다. 결국, 행정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으로부터 산업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공단은 계속해서 항소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이 여러 방법으로 개입한 사실을 드러났다.

 
나는 곧 친권자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할 나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아니므로 나의 생을 스스로 건사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 현실은 위험하다. 위험하다 못해 노동이 부품처럼 취급되는 사회다. 황유미 씨 죽음에 대해 삼성 측은 10년 넘도록 침묵하고 있으며, 정부도 지금껏 이를 묵인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법의 저울은 가난한 노동자보다 권력에 기울어 있는 모양이다.
 
중학교를 자퇴한 나는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직은 면죄부를 받는 나이지만 앞으로는 “그래도 결혼하고, 애도 낳아야지”라는 말을 많이 들을 것이다. 나는 체력이 불량한 사회적 하자에 불과하고, 이 사회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안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OST를 사기 위해서는 '그래도' 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래도'에는 개인의 책임이 강조된다. 빈부, 학력, 직업 모두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한다. 산재 또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정말 나만 조심하면 삼성 반도체 공장을 다녀도 백혈병에 걸리지 않을까?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의 허기는 극복될까?

 
나는 내가 딛고 선 사회를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이 사회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명제들 앞에서 나는 여전히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혼나고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음소거되는 사회지만 이제 나는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 체력은 저질이고 미래는 가난하여도 나는 살아있으므로, 살고 싶다. 생계유지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OST를 들으며 '잘' 살고 싶다. 그리하여 어쩌다 아직 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글쓴이. 제주도
도움.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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