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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28. 2018

까짓 뭐라도 하자

[01_여는글] 세월호 웹진 71077 겨울호 주제 '안다, 않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주저되는 상황 앞에서 그 말은 ‘한 번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까짓 한 번 해보지 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발생했다. 5월 18일 진실규명 집회 참가자란 이유로 나는 성동경찰서에 연행됐다. 법을 어긴 적도 없이 차가운 철창에 갇혔다. 그때 알았다. 뭔가 잘못됐구나.  


그해 봄, 나는 바다로 침몰하는 세월호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국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무기력했다. 무력감 속으로 국가 공동체가 침몰하고 있었다.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세월호’는 피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겼는데, 이건 즐길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뭔가 잘못됐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똑똑히 보았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붕괴해 있었는지. 생존의 문제였다. 각성한 시민들이 곳곳에서 노란리본을 달았다. 우리는 이제 안다. 알게 됐다. 법치라는 허울로 가려놓은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과, 우리가 눈과 귀를 경제 성장이란 미명으로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가만히 있으면 죽는 시스템인 거잖아. 나는 분노했다. 2015년 4월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에 기억공간을 열었고, 그곳에서 만 3년간 노란리본을 맨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몸부림 쳤다.


세월호참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의 불씨를 댕겼다. 최순실 타블렛 PC 보도는 그 불길을 키웠다. 정권이 바꼈다. 시민들이 해냈다.


대선 당시 신공항 조기 개항을 공약한 문 대통령 측에 제주도 시민사회가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문재인 선거캠프는 주민 동의 없이 추진하지 않겠다며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상식이 통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문재인 대통령 당선 확정에 환호성을 외쳤다고 한다.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불가능해 보이던 세월호 인양이 이뤄졌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속도를 내는 듯 보였다. 강정마을에 대한 구상권 청구 철회 소식에 기소된 강정 주민들의 특별사면까지 기대했다. 국책사업과 마을 간의 갈등들이 원만한 방식으로 해결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믿고 기다리면 될까? 우리는 안다. 세월호 인양은 이뤄졌지만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 남았다는 사실을. 사드 배치로 인한 성주 주민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은 현 정부에서 더욱 격렬했음을, 관광 미항이라고 눈속임한 강정에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미 핵잠수함이 입항했던 사실을. 해군기지 반대를 표명하다 기소된 111명 강정 주민들의 특별 사면은 재판이 종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예된 사실을. 주민동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는 제주신공항 건설이 왜 인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 시절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대한 이면 계약 의혹이 일었다. MB는 부정하고 있지만 불리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당시 성노예 용어 미사용 등의 이면 합의가 있었음도 최근 밝혀졌다.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는 지금 곳곳이 공사 중이다. 바다를 메우고 땅을 가르는 것도 모자라 이제 하늘길 하나 더 만든다 한다.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발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하 수상한 이명박근혜 시절을 보내서일까? 미항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진행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선례를 경험했기 때문일까. 석연치 않은 것들에 자꾸 묻게 된다. 다른 속뜻은 없는 걸까? 정말 이 방법밖에 없을까? 정치적·경제적 이득을취하는 숨은 주체는 누굴까? 저 말에 담긴 이데올로기는 뭘까?


신공항 건설은 제주도 전체의 문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성산읍만의 지엽적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 반대 농성에 참여한 나는 '대화'라 쓰고 '강요'라 읽는다. 국토교통부는 도민 사회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투명한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 제2공항이 제주에 왜 필요한지, 왜 성산읍이어야만 하는지, 더 많은 관광객 유치가 제주에 득인지 독인지, 정말 군사기지로의 목적성은 없는지, 군사기지의 목적이 있다면 왜 제주에 군사기지가 필요한지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주도 쓰레기 요일별 배출 홍보 대대적으로 하더라. 행정 편의와 실적을 위한 홍보는 귀에 물리도록 하면서, 대대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들은 왜 은밀하게 추진하는가. 정책적 목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세월호 계간 웹진 71077 겨울호 주제는 '안다, 않다'다. 故 신영복 교수는 실천 없는 생각은 곧 인식의 좌절이자 사고의 정지를 의미한다고 했다. 비판 없는 사회는 결국 침몰한다는 것을 우리는 세월호라는 거대한 희생을 통해 알았다. 사물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식이 필요하다. 인식은 지식과 달리 실천적 의미가 포함된다. 실천 없는 앎은 공허한 지식일 뿐이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까짓 뭐라도 해보지 뭐. 일단 제2공항부터.



글쓴이. 황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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