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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ul 22. 2018

바람, 4

[1_여는 글]

1. 

바람을 세지 못하겠다. 물도 펜도 책도 사람도 셀 수 있는데 바람은 어떻게 세야 하는 것일까. 내가 가진 바람을 나열해 세야 하는 것인지, 지나가는 바람을 세는 것인지, 바람의 속도를 세는 것인지, 네가 가진, 그리고 우리가 가진 바람도 세야 하는지.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을 바람은 어떻게 셈해야 수없이 모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 무수한 바람들을 나는 어떻게 간직해, 새로운 바람을 만들 수 있을지 잘 알지 못하겠다. 


2. 

바람에 빨래가 마르기 때문에 옥상에 빨래를 너는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바람은 마르게 하는 것이구나, 라며.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면 언젠가 바다도 말라, 난파선이나 보물을 볼 수 있겠고, 내가 바닷가에서 잃어버린 시계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바다가 있던 자리를 쉽게 건너는 사람들을 그렸다. 지금 나는 파도를 마주한다. 


3. 

바람 많이 부는 날, 끝이 바다인 절벽에 바람 들지 않은 후줄근한 풍선을 들고 갔다 절벽의 끝에서 나는 풍선에 바람을 불었다 부는 바람만큼 풍선이 커져갔다. 올바르다 나의 바람은 커서 큰바람을 계속 크게 불었다 눈앞에 보이던 바다는 사라지고 내 시야엔 바람으로 채워진 풍선만이 가득하다 역시 바람은 크나커도 무방하구나 간절함에 바람을 더 불어넣었다 터졌다 바람에 조각난 허울들이 바람에 날려 바다로 가지도 못한 채, 다시 돌아온다 바람을 따르며 조각난 허울들은 힘없이 흩어졌고, 다시는 그 조각들을 찾지 못했다


4.  

바람은 인간의 맘대로 할 수 없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런 걸까요. 언젠가부터 바람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그 죽음은 대게 무자비한 죽음일 때 바람이라고 일컬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감수성을 우린 가집니다. 얼마 전, 우린 큰바람을 다시 맞았습니다. 우린 매번 셀 수 없이 많은 바람을 맞았는데, 우리의 바람은 왜 잘못된 자동차 바퀴처럼 헛돌아 흩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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