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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ul 22. 2018

나의 바람과 바람

[4_리뷰]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바람이 곁에 있다 느끼고

두려워하는 우리를 보며

그럼에도 사랑이 존재한다 느껴져

위로가 된다


사랑과 두려움


이 이분법 위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춤을 추겠지


노슬미, <나무처럼>



집을 바쁘게 나서야 하는 시간에 지하철에서 읽기 위해 책 제목도 확인하지 않고 집어 들어 나갔다. 지하철에서 꺼내 보니 삼 년 전에 읽었던 작가 한혜경 씨의 <오체투지>였다. 책과 친하지 않아 하루에 끝까지 읽는 법이 없던 나였는데 오체투지는 달랐다. 하루 만에 다 읽혔다. 짧기도 했지만 읽기 시작하고 끊을 수 없었던 책이었다. 


'절을 통해 아주 많이 좋아졌다고, 이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별 차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 아직도 말할 때 조금씩 돌아가는 얼굴, 정확하지 않은 발음.....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왜 하필 이 좋은 여행에서 느낀 저 모습이 바로 나란 말인가. 그래, 저게 나구나! 바로 저 모습이 나구나. 난 그동안 마술에라도 걸려있었던 건가.'

- <오체투지> 중


이 구절을 읽으며 되뇌었던 질문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나?' 였다.


나는 스스로 어떤 상태인가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임으로 있을 줄 알고,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고,  감정으로부터 지배받지 않고 자연스럽고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마술에라도 걸렸던 걸까. 진정으로 원인과 책임으로 존재할 때에는 괴로움, 불안, 답답함이 있을 수 없다. 자연스러움과 편안함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원인과 책임으로 존재한다 하면서도 늘 괴롭고, 불안하고,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밥도 안 먹히고, 먹질 않으니 당연히 몸무게는 계속해서 줄어갔다. 더는 이대로 지속할 수 없어 상담을 요청했다. 


나의 이야기를 마음껏 하며 스스로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순간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동생과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외국으로 간 아빠는 일 년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사는 거라고. 너 때문에. 왜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게 다시 아빠는 해외로 떠나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상처를 안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이혼한 것도, 엄마가 아픈 것도, 연인과 헤어진 것도 모두 나 때문이라 스스로를 탓하며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오체투지> 중 작가의 엄마가 작가에게 해준 말.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구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를 탓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보다 나를 더 잘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상담을 요청할 수 있었으며 잊었던 과거의 상처를 발견하고 돌보며 위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뇌성마비로 죽음을 선고받았지만 절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간 작가의 삶에서 나를 본다. 이제는 나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나를 가꾸어 이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려 한다. 


글쓴이 - 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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