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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ul 22. 2018

아, 종강했다!

[3_수필]

 드디어 종강했다. 한 학기를 쉬고, 작년 2학기에 복학해서 올해 1학기까지 다녔다. 이제 3학년 2학기를 마쳤지만 다시 휴학할 참이다. 나에겐 너무나도 긴 1년이었기 때문이다. 저번 학기엔 실제 불법촬영 사진을 구글에서 다운 받아 수업 자료로 사용한 교수와 싸우고, 온 학교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지만 겨울 계절학기를 들어야만 했기에 방학에도 학교에 갔다. 

 이번 학기엔 학내 미투 폭로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대자보 붙이는 걸 돕기도 하고, 직접 쓰기도 하고, 포스트잇으로 학교 방방곳곳에 me too, with you를 만들어 붙였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심히 지나갔고, 몇몇 사람들은 대자보를 찢고 싶다거나 대자보를 붙이는 사람들 몽키 스패너로 때리고 싶다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는 사진을 몰래 찍어 학교 커뮤니티에 이게 무슨 짓이냐며 올리기도 했다. 총학생회나 대부분의 교수들은 나서지 않았고, 피해자의 편이여야할 인권센터는 오히려 2차 가해를 저질렀다.

 정말 학교에 털 끝만 한 애정조차 남지 않았고, 그저 버티면서 다녔다. 이번 학기 마지막 시험을 겨우 치고, 기쁜 마음에 단체카톡방에 종강했다고 자랑했다. 그리곤 누워서 쉬다가 종강을 이렇게 기뻐해도 될 일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종강이 더 힘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투 피해자들이다. 최초의 문제제기 이후 문제해결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힘을 모을 수 있었지만 종강하고는 전혀 힘을 모을 수 없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종강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컸다. 이런 상황을 떠올리니 종강한 것을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기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리스본은 폐허가 되었는데, 여기 파리에서 우리는 춤을 추네.’라는 볼테르의 문장이 있다. 1755년 11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6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리스본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즐겁고 안락한 생활을 계속해서 누리는 모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다. 

 종강했다고 자랑하고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파리에서 춤을 추던 볼테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 위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면 적어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써야한다.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헤아려보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그 시도가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대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곳곳에서 미투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이 폭로들을 보고, 듣고도 방관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해자다. 부디 바라건대, 나의 기쁨보다 타인의 고통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글쓴이 - 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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