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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Oct 21. 2018

왔다 갔다, 4

[1_여는 글]

 1.

 나는 퀴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고, 자기들끼리 축제한다는데, 내가 뭔 상관이야, 라는 입장이었다. 반대도 아니고, 지지도 아닐뿐더러, 그저 무시하는 것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한다 얘기했고, 경찰인 나는 축제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내가 가고 싶은 마음이 있든 없든.

 퀴어문화축제는 사실 눈에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다. 뻔했기 때문이다. 행사를 진행하려는 사람과 그걸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을 지키는 것은 피곤한 일일 뿐이었다. 퇴근이나 하고 싶다. 

 행사가 끝나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허리 숙여 진심인 듯 감사하다고 매번 인사하던 이가 있었다. 축제 진행을 –그래도- 순조롭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에 대한 인사이겠거니, 하며 괜히 마음이 따듯해지고 그랬다. 어쩐지 뿌듯함이 남았다.


  버스에 올라타면 강정해군기지에서 할 국제 관함식 행사 영상이 번득이며 나왔다. 눈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평화의 섬이라고 하는 제주에서, 4.3의 아픔이 남아있는 제주에서 왜 저런 행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평화의 길목에 있는 시기가 아닌가.

 나는 강정 시위를 저지하러 가야 했다. 위에서 시켰으니까. 버스를 타고 강정으로 가는 길, 동료들과 함께 관함식은 무리가 아니냐는 얘기를 나눴다. 단순히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상사는 길을 트려는 그들을 필사적으로 막으라 했다. 밀어 넣으라 했고,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꼭 커뮤니티 센터로 가서 문재인 대통령과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난 막아야 했다. 손목도 아프고 밀리고 밀며 귀걸이가 사람들 사이로 걸려들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 내가 관함식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들이 내 사진을 찍는 것이 불쾌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그러자 사진을 찍은 이는 내게 쌍욕을 해댔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 

 말리는 사람 중에선 퀴어문화축제에서 본, 우리에게 굽신거리며 인사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쩐지 화가 더 치민다. 그때는 그랬으면서 지금은 이런 식으로 날 대하는 걸까. 그는 사진 찍던 이를 말리다가, 내게 와 조용히 미안하다 사과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낼 순 없었으니까. 그녀가 가는 길 다시 한번 내게 말했다. 죄송하다고. 

 “저번에 봤어요, 퀴어문화축제에서. 그땐 고맙다고 했어요.”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어쨌든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2.
 머무는 것은 지워지고, 올 것과 떠난 것이 집착한다. 걱정하는 것은 인간이 나약해서이며, 동시에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잘못된 것 하나 없다는 걸 반증한다. 우리는 남은 올해를 보낼 것이고, 보낸다는 건 배웅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 해에 노을이 떨어진다. 세상은 붉고 노래진다. 다채롭게 물들 때, 이른 이별을 이번 해에 고하며 머물러봐야겠다. 머물고 있을 때 잘 배웅해야 집착이 덜 했으니, 다가올 새로운 겨울을 마중 나가지 않아야겠다.



3.
 명절이라는 핑계로 고향에선 올라오라 난리였다. 그동안 별의별 이야기를 만들어대며 가지 않았기에 나의 상상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아 알았어 갈게, 라는 말로 고향을 달랬다. 올라오라는 말을 하면서도 올라올 것이라 예상치는 못했던 고향이 놀라 단어를 고를 때 전화를 뚝, 끊었다. 발 앞이 캄캄했다. 명절엔 지방까지 가는 택시도 없을 터였다. 컴퓨터 전원의 파란불이 들어오며 나는 기차표를 먼저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나 매진이었다. 버스를 확인해 보았고 명절 연휴 첫날 다행히 두 자리가 남았다. 창가, 창가 측 자리를 클릭했다. 잠에 들더라도 덜컹거림에 눈 떴을 때 보이는 풍경이 좋았으니까.

 예상 시간의 2시간 일찍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20분의 시간이 남아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려는데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없는지. 촉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안 되는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규정상 그렇게는 힘들 것 같아서요.”

 “아니, 제가 제 돈 내고 제 고향 가겠다는데 왜 못 가는 거죠?”

 “죄송합니다. 환불해 드릴게요.”

 이번에도 가지 못하겠다고 고향에 전화해야겠다. 오가기 어려운 나의 다리는 아직도 방황을 벗어나지 못한다.



 4.

 달의 공전에 따라 바다는 우우우, 밀물과 스스스, 썰물을 만들어냈다. 우우우, 와 스스스, 의 반복으로 바람을 만들어 낸다. 바람은 순식간에 지나가며,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한다. 그렇게 우우우,와 스스스는 우리와 공존한다. 

 이것은 바다의 법칙이다.


글쓴이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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