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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28. 2019

희망이 내려오면 건지려고요

[3_미니픽션]

남조류 사체가 가득한 강기슭에 물고기 한 마리가 둥둥 떠 있었다. 들고 있던 막대기로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지구름이 가파르게 뻗어 있는 굴뚝들 사이에서 가물거렸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갑자기 앞이 어두워졌다. 눈을 뜨자 머리가 세고 추레한 바지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 물고기를 잡았구나.


어깨가 굽은 사내가 저물어가는 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사내의 얼굴이 석양에 비춰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 잡은 게 아니라 건진 거예요.

- 잡은 거나 건진 거나 그게 그거 아니냐.

- 죽느냐 사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죠.


물고기가 그의 손에서 힘겹게 아가미를 움직였다.

 

- 아직 살아있구나. 그럼 잡은 게 되는게냐.


사내가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앞니 하나가 빠져 시커먼 입속이 보였다.


- 아마도 곧 죽을 거예요. 물고기는 이곳에서 살 수 없으니까.


아이가 남조류 사체가 없는 쪽으로 물고기를 멀리 던지며 말했다. 가물막이에 막힌 물고기는 물길을 따라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았다.


- 이곳 물고기는 물길을 거스를 힘도 없는 걸요.

- 그러는 너는 뭘 하고 있니?


사내의 손에는 칼과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잠시 킬킬거리더니 칼에 묻은 흙을 바지에 비벼 닦았다.


- 지켜보고 있어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접어 비닐봉지 속에 넣었다. 손톱 끝에 흙이 잔뜩 끼어 있었다. 어제보다 늙은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는 항상 조간신문이 끼워져 있었다.


- 도대체 황량한 이곳에서 무엇을 지켜본단 말이니?


아이는 둥둥 떠 있는 물고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 그런 게 있어요.

- 여기 어디 보물이 있는 거구나.

- 그런 게 아녜요.


아이는 경멸하듯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아 돌멩이를 강에 던졌다. 돌멩이가 떨어진 자리에 물여울이 일었다. 강은 유속이 느려 호수처럼 보였다.


- 그럼 무얼 지켜보는 거지?

- 그런 게 있어요.

- 돈 될 것을 찾아보고 있는 거겠지. 뻔하지 뭐.

- 아니라니까요


아이가 소리지르자 등이 약간 구부정한 사내가 눈동자를 치키며 배시시 웃었다.  


- 왜 너 혼자 뭔가를 지켜보고 있니?

- 제가 남아 있으니까요. 아저씨는 어제도 이곳에 와서 저에게 이것저것 묻고는, 강에 돌멩이를 던졌어요. 그 비닐봉지와 칼을 들고. 손톱 밑에는 흙이 잔뜩 끼어 있었고요.

- 그랬니? 기억나지 않는구나!

- 저는 기억의 천재인걸요. 그 비닐봉지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알아요.

- 그 막대기는 뭐니?


아이가 머뭇거렸다.


- 희망이 내려오면 건지려고요.

- 그것이 저 상류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양이구나. 너는 여기서 잠을 자니?

- 저는 잠을 자지 않아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걸요.

- 피곤하겠구나. 그건 쓸데없는 짓이지.


사내가 등을 굽히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입에 문 채 뭔가를 깎기 시작했다.


- 봄부터 이곳에서 계속 이러고 있는 걸요. 제가 지켜보지 않으면 잊혀질 거예요. 그게 뭐죠?


눈이 촉촉해진 아이가 사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하품을 했다.


- 뿌리란다. 어떤 풀의 뿌리지. 너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구나. 피곤한 건 쓸데 없는 짓이지. 그런 건 학교에서 배우지 않니?

- 학교에서는 구걸하는 법을 배웠죠.


아이가 고인 침을 삼켰다. 사내는 남은 뿌리를 입에 다 쑤셔 넣었다.


- 미안하구나. 줄 게 없어서. 너는 담배를 피우니?

- 전 아직 미성년자예요.

- 그럼 술은 마시니?

- 전 아직 미성년자예요.


사내는 비닐봉지에서 술을 꺼내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땅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 나는 이제 가봐야겠구나.


사내는 왔던 곳으로 어제처럼 걸어갔다.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사위가 완전이 어두워졌다. 어둠은 사물들의 경계를 지우고 침묵했다. 어두워지자 강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귀를 쫑긋 세웠다.



글쓴이 -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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