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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Jan 28. 2019

남은, 4

[1_여는 글]

 1.

 근육을 실제로 본 일 없다. 근육이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고, 어떻게 늘어나고, 뼈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행진이 끝나고 나의 허벅지를 어루만지면서 이 말랑한 돌덩이 같은 게 근육이겠거니, 근육통이라는 게 왔을 때나, ‘아 여기에 근육이 있구나, 이렇게 고생하면 이 정도로 아프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케일 따는 일과 검질은 하기 힘든 일이고, 삽질과 귤 따는 일은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한다.


 양쪽으로 팔짱을 끼고 두 손을 다시 맞잡으면, 장갑들이 와서 옆 사람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양손으로 들어 올린다. 옆 사람의 손가락들이 떨어져야만 맨 끝에 있는 한 사람을 떼어낼 수 있게 된다. 손가락들이 펴져도 애써 팔짱은 끼고 있는데,


 자고 일어나면, 겨드랑이에도 근육이 붙어 있구나, 느낀다. 계속 팔짱을 끼게 된다면 내 겨드랑이가 아주 두꺼워 질수도 있을까. 그럼 좀 더 각지고 힘차게 하늘 위로 움켜쥔 손을 뻗을 수도 있을까.


 등으로 마주한 제주도청 길바닥은 차갑게 딱딱했고, 하늘은 허무하게 다정했다. 그 하늘 아래, 그 땅 위에 우리는 다시 남아 하잘것없는 도모를 하겠지.


 비행기의 겨드랑이 근육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나의 겨드랑이는 그것보다 단단할 수 있을까.



 2.

 비닐 뜯지 않은, 남은 컵라면을 마주하면, 뒤이어 하얀 국화꽃이 제단에 남는다. 하나의 법칙처럼.

이런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우리는 아직 그 상황의 목격자이다.


 남들은 무얼 먹으며 죽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위대한 경제발전을 위해, 우리네 삶의 영위를 위해, 컵라면을 주로 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건 괜찮은 걸까. 그런 사람들이 전기를 만들고, 생수를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그러다 국화꽃이 제단에 올라가는 사태에서, 단순한 목격자는,


 누군가는 1년이 지났고, 누군가는 한 달이 지났다. 그전에도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그때도 이랬을 것이다.

“남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쩐지 그들의 다음 순서가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많은 국화꽃이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얀 국화꽃의 의미는 성실과 진실이다. 이것을 성실하게 일하다 죽은 사람들의 진실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하자.

 나는 그들의 국화꽃을 어떻게 남길지에 대해 골몰할 것이다. 진부하게, 그저 운으로 치부하며 남길지, 단순한 목격자는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며, 살아남았다는 것을 되새기며, 국화꽃 앞을 서성이며,



 3.

 2014년, 얇은 코트로는 추울 때쯤, 광화문 광장의 횡단보도 지나는 것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한 순간이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물고 늘어졌던 순간이었으리라고 돌이켜본다.

 광화문 사거리를 지날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거나, 대한문 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었다. 광화문에서 내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싱겁게 ‘아, 네. 근데 저 일이 있어서요.;’라며 나의 안부를 전했다. 이때, 난 광화문을 지나고 눈물 괴지 않았던 순간이 손에 꼽는다.

 (옛날 일을 쓰는 것에 서툴다. 아직 그 옛날을 소화할 만큼 내가 강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어쩌다 다시 광화문에 나가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때보다 지금이 더 고단하고, 지치지만, 덜 괴롭다는 것이다.

 그저 새해 첫 달부터, 그리고 5주기를 앞두고 남는 기억을 떠올려본다. 또다시 내가 외면하는 순간이 생길 때 이것을 기억해보자고.


 저는 남아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4.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광화문에서 눈물을 쓸고 닦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쓴이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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