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테이블 코인 ‘삼국지’. 중국 위. 촉. 오 비교분석

테더, USDC, 그리고 신흥 경쟁자들

by sonobol





스테이블 코인 ‘삼국지’: 테더, USDC, 그리고 신흥 경쟁자들


디지털 자산 시장의 변동성은 기회인 동시에 진입장벽이다. 이러한 변동성의 바다에서 ‘안전한 항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이다.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1:1로 고정(pegging)하여 가격 안정성을 확보한 스테이블 코인은, 이제 단순한 가치 저장 수단을 넘어 글로벌 송금, 크립토 결제, 그리고 탈중앙화 금융(DeFi)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마치 과거 중국의 ‘삼국지’처럼, 강력한 두 세력과 끊임없이 등장하는 신흥 경쟁자들이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는 형국이다. 시장을 선점한 절대 강자 테더(Tether, USDT)와 투명성을 앞세워 맹렬히 추격하는 서클(Circle)의 USDC, 그리고 이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주체들이 각자의 전략으로 미래 금융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1. 위(魏) 나라: 절대 강자, 테더(USDT)의 굳건한 아성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문을 연 테더(USDT)는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압도적인 지배력을 구축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기축 통화로 사용되며, 막대한 유동성과 시장 점유율은 그 어떤 경쟁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해자(垓子)가 되었다. 특히, 전통 금융 시스템 접근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는 USDT가 사실상의 ‘디지털 달러’로 기능하며 국경 간 송금과 결제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USDT의 아킬레스건은 고질적인 ‘투명성’ 문제다. 발행량만큼의 달러를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과거 뉴욕 검찰과의 소송 등 규제 당국과의 마찰은 신뢰도에 흠집을 냈다. 최근에는 준비금 내역을 일부 공개하며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경쟁자들에 비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는 평가는 여전하다. USDT는 거래와 투기적 수요에 최적화된 ‘전장의 화폐’로서 그 입지를 다졌지만, 규제 강화 시대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2. 촉(蜀) 나라: 명분과 신뢰의 도전자, USDC


테더의 불투명성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등장한 것이 바로 서클(Circle)이 발행하는 USDC(USD Coin)다. USDC는 ‘신뢰’와 ‘투명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세계적인 회계법인을 통해 매달 준비금 증명 보고서를 발행하며, 모든 발행량이 현금 및 단기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100% 보증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은 규제를 중시하는 기관 투자자들과 제도권 금융기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디파이(DeFi) 생태계에서 USDC는 신뢰할 수 있는 담보 자산이자 예치 자산으로 각광받으며 빠르게 점유율을 넓혔다. 비자(Visa)와 같은 글로벌 결제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실물 경제 결제 시장으로의 확장을 꾀하는 등, 규제 친화적인 ‘제도권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강력한 규제 준수는 역설적으로 미국 정부의 통제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USDT의 거대한 유동성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3. 오(吳) 나라: 기회를 노리는 신흥 강자들


USDT와 USDC의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내기 위한 새로운 도전자들의 움직임도 거세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탈중앙화 스테이블 코인이다. 메이커다오(MakerDAO)의 다이(DAI)가 대표적으로, 특정 기업이 아닌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이더리움 등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발행된다. 이는 중앙화된 주체의 검열이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담보 자산의 변동성 리스크와 확장성의 한계라는 태생적 약점을 지닌다.


둘째, 빅테크 및 전통 금융기관의 참전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글로벌 결제 공룡 페이팔(PayPal)이 출시한 PYUSD다. 페이팔은 수억 명에 달하는 기존 사용자 기반과 방대한 결제 인프라를 활용해 단숨에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할 잠재력을 가졌다. 이들의 등장은 스테이블 코인이 더 이상 크립토 시장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류 금융 편입의 신호탄임을 보여준다.


셋째,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다. CBDC는 민간 스테이블 코인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디지털 결제 시장의 근본적인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CBDC가 상용화될 경우, 민간 스테이블 코인은 정부와의 공존 혹은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격전지: 규제, 그리고 실사용처


스테이블 코인 삼국지의 향방을 가를 가장 중요한 변수는 단연 ‘규제’다. 미국 의회의 스테이블 코인 규제 법안, 유럽 연합의 암호자산시장법(MiCA) 등 주요국들의 규제 프레임워크가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각 스테이블 코인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규제의 명확성은 투명성과 안정성을 강조하는 USDC나 PYUSD 같은 규제 친화적 플레이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실사용처(Use Case)’를 가장 많이 확보하는 자가 될 것이다. 단순한 거래 매개를 넘어, 국경을 초월한 송금, 온·오프라인 결제, 혁신적인 디파이 서비스 등 실물 경제와 얼마나 긴밀하게 결합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테더의 막대한 유동성, USDC의 제도권 신뢰, 그리고 신흥 주자들의 혁신이 맞부딪히는 지금,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패권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들의 경쟁은 디지털 자산과 전통 금융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금융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