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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균형

'적당히 무시하는 기술'로 어른이 되는 법

by sonobol





인생은 춤과 같다. 젊을 때는 파트너의 리듬에 맞춰 발을 맞추는 법을 배우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멜로디를 더해가는 법을 익힌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자주 던져지는 조언,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네 방식대로 살아"라는 말은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 때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여정에서 '타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필수적인 무대 장치이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 그 청춘의 시기에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는 건 마치 무대 위에서 홀로 춤을 추는 것처럼, 외롭고 위험한 도전일 수 있다.


생애 주기적으로 보자면, 어린 시절은 가족이라는 안락한 무대에서 자유롭게 놀아도 된다. 하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로 나아간다. 여기서 타인들의 눈치는 '입장권'이 된다. 학교, 직장, 사회적 네트워크—이 모든 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세계 속에 우리 자리를 파고들어야 한다. 면접에서 합격하려면 면접관의 기대를 읽어야 하고, 서비스 업계에서 돈을 벌려면 고객의 기분을 살핀다. 창작자라면 시장의 취향을 눈치채고,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 이 시기는 세상의 눈과 귀를 활짝 열고, 타인들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는 결국 '타인들이 쌓아 올린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 안으로 녹아들지 못하면, 우리는 고립된 섬이 되고 만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우리는, 타인들의 세계 속에서 우리만의 자리를 확보한다. 어울리면서도 소외되지 않는 삶.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30대쯤 되면 무대가 바뀐다. 이제는 '자기 고유성'이 빛을 발한다. 세상은 모두가 비슷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인다—SNS에서 완벽한 삶을 과시하고, 트렌드를 쫓아 달려가다 보니 개성은 희미해진다. 그때, 오히려 고집스럽게 '나만의 것'을 지켜온 이들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왜냐하면 진짜 가치는 '모두와 같지 않은'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시선에 애써 맞췄던 청춘이, 이제는 그 시선 속에서 빛나는 독창성을 인정받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 균형을 어떻게 맞히느냐다. '남들'을 얼마나 신경 쓸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이 딜레마는 더 날카롭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기준에 얽매여 '남들이 인정하는' 배우자, 직장, 집, 차를 쟁취하지 못하면 자기혐오에 빠지는 문화가 있다. 반대로, 최근에는 은둔과 고립의 물결이 일고 있다. "남들 자체를 거부하자"는 반발 심리. 둘 다 극단이다. 너무 눈치를 보면 '나'를 잃고, 너무 무시하면 '우리'를 잃는다.


여기서 내가 제안하는 '어른 기술'은 간단하다. '남을 적당히 무시하는 기술'. 타인들의 기준을 속으로 가볍게 비웃을 줄 아는 태도. SNS에서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 "그 사람 머릿속 기준, 재미있네" 하고 웃어넘긴다. 하지만 겉으로는 매너 있게 응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협업하고, 윈-윈을 추구하며, 때로는 비위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적당함'이 핵심이다. 너무 무시하면 사회에서 밀려나고, 너무 따르다 보면 영혼이 메말라간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 바로 이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다. 타인들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법—모두가 먹고 사느라 애쓰는, 존중과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들. 서로에게 작은 미소를 주고받으며 사는 게 삶의 본질이다. 춤을 추듯, 타인의 리듬에 맞춰 발을 디디되, 내 멜로디를 잃지 말자. 그럼 세상은 더 이상 적대적인 무대가 아니라, 함께 노래하는 콘서트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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