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 속에서. 그래도 희망은 있다.
2025년 한국은 세대별로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 경제 허리인 40대가 가장 크게 흔들리고, 20·30대는 이미 구조적 침체에 갇힌 반면, 50·60대 부머 세대는 자산 상승의 마지막 열차를 타고 비교적 안정된 노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라, ‘노후를 떠받칠 중간 세대가 붕괴하는 구조적 위기’라는 점에서 더 근본적이다.
40대, ‘잘 벌고 잘 써야 할 나이’의 붕괴
요즘 통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0대 고용·소비 지표의 동시 약화다. 전체 취업자 중 40대 비중은 1995년 이후 30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고, 40대 취업자는 2022년 여름 이후 3년 넘게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40대 자체의 ‘역사적 축소’가 진행 중인 셈이다.
소비 쪽에서도 같은 징후가 관찰된다. 가구주가 40대인 가구의 2025년 소비지출 증가율은 1%대 초반에 그치며 최근 2년 내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평소라면 ‘소득과 지출의 정점’이어야 할 세대가, 통계상 가장 활력을 잃은 계층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과 부채에 갇힌 중년의 삶
자산 통계를 보면 40대는 여전히 ‘자산 규모’만 놓고 보면 상위 그룹에 속한다. 연령대별 평균 자산을 보면 5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40대, 그 뒤를 60세 이상이 잇는다. 숫자만 보면 40대는 분명 “망한 세대”가 아니라 꽤 많은 자산을 가진 계층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몰려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한국 가계 평균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70%를 훌쩍 넘고, 40대·50대·60대 모두 주택 등 실물자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40대는 특히 집값과 대출에 자산과 현금흐름을 동시에 묶어둔 채, 금리와 고용 충격에 가장 취약한 구조에 서 있다.
AI 칼바람이 가장 먼저 때린 세대
여기에 AI·자동화의 노동시장 충격이 40대에게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GPT·생성형 AI 노출도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GPT에 영향을 받는 직업 비중이 높고, 특히 30~44세 연령대, 사무직, 고임금 계층에서 AI 노출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10~20년간 ‘좋은 직장’으로 여겨졌던 대기업·사무·전문직이, 생성형 AI 도입의 1차 실험장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미 30~44세, 근속 5~9년 차 고임금·사무직이 AI 자동화·업무 재편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고, 이는 40대의 고용 불안과 경력 단절 위험을 키운다. 전통적인 제조·블루칼라보다, 문서·기획·관리·고객응대 등 ‘화이트칼라 코어’에서 일자리 구조조정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는 점이 한국 특유의 리스크다.
청년층, 이미 ‘부서진’ 출발선 위에 서다
20·30대는 이미 한참 전부터 구조적 충격을 맞고 있었다. 청년층의 정규직 진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플랫폼 노동·단기 계약·인턴·프리랜서가 기본 진로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되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AI 노출도는 30~44세보다 다소 낮지만, 청년층은 애초에 고용 안정과 자산 형성의 기회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미래 기술 경쟁’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결혼·출산·내 집 마련이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아예 인생 계획에서 삭제되는 선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30대 미혼율이 50%를 넘고, 대도시 30대 남성 미혼율이 60% 후반대에 이르렀다는 통계는,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아니라 ‘경제·고용 불안이 만든 구조적 비혼’의 측면이 강하다.
부머세대의 상대적 평온과 착시
반면 50·60대 부머세대는 ‘자산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위치에 있다. 평균 자산을 보면 50대가 최상위, 60세 이상도 40대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의 부동산 상승, 저금리·유동성 시대, 정규직 중심 고용 구조를 누리며 자산을 축적한 마지막 세대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 부가 사실상 ‘부동산 레버리지’와 ‘미래 세대 구매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60세 이상 가구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80% 안팎에 달해 현금 흐름이 약하고, 부동산 가치는 결국 30·40대의 소득·고용 안정, 그리고 20·30대의 가구 형성 수요가 떠받치고 있다. 40대와 청년층이 일자리와 소득을 잃으면, 부머세대가 믿는 ‘집값’도 더 이상 지금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
소비·고용의 축이 50대로 이동한다는 불길한 신호
이미 일부 분석에서는 “소비와 고용의 중심축이 40대에서 50대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온다. 40대 취업자와 소비 여력이 동시에 줄어드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고용·소득이 유지되는 50대가 단기적인 소비 중심층으로 부상하는 흐름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50대는 이미 은퇴 전환기에 들어선 세대이고, 이들이 향후 10년간 소비를 유지한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소비를 급격히 줄이는 생애주기 구간에 접어든다.
생산·소비의 중심인 40대가 무너지면 전체 경제의 ‘소득과 지출의 피크’ 구간이 사라지고, 이는 장기 침체·디플레이션 압력을 키운다. 국민이전계정 자료를 보면 한국인은 20대 후반부터 소득이 소비를 초과하며 흑자로 전환하고, 40대 중반에 소득과 흑자가 모두 정점을 찍는다. 바로 이 구간의 주인공이 40대다. 이 구간의 고용·소득 축소는 곧 국가 전체의 투자·세수·소비 여력 축소를 의미한다.
각자도생의 대한민국, 구조 개편 없이는 ‘공동 침몰’
지금 한국 사회의 기본 정서는 “국가는 못 믿겠고, 결국 각자도생”에 가깝다. 경기 부양은 일회성 소비쿠폰·재난지원금에 의존하고, 실질임금은 정체된 채, 교육·주거·돌봄 비용만 치솟으니 체감적으로는 ‘모두 패자’인 게임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이 방향은 결국 부머세대까지 포함한 ‘공동 침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부머세대의 자산 가치는 40대·청년층의 소득·가구 형성 수요에 의존하고,
- 연금·복지 재정은 생산연령층의 세금과 보험료에 달려 있으며,
- 내수시장은 중산층의 안정적 소비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각 세대가 ‘내 노후·내 생존’만 바라보고 움직이면, 결국 서로의 기반을 허무는 제로섬이 된다. 세대 간의 불신과 단절은 정치적 갈등을 넘어 경제 생태계의 붕괴로 직결된다.
40대를 10~15년 더 일하게 만드는 설계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40대를 앞으로 10~15년 더 제대로 일하게 할 수 있느냐”이다. 이 세대는 이미 고숙련·고경력 인적 자본을 보유하고 있고, 생애 주기상으로도 소득·흑자·세수 기여가 최대인 집단이다. 따라서 ‘새 일자리 창출’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재배치 전략이 핵심이 된다.
- AI 전환형 재교육
30~44세 사무·전문직을 대상으로, 업무를 대체당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스킬을 재정의해야 한다. 오피스·코딩·마케팅·디자인·영업 등 백오피스·화이트칼라 업무 전반에서 “AI 툴을 다루는 사람”과 “AI에게 일을 빼앗기는 사람”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질 것이다.
- 산업 간 이동 지원
제조·건설·돌봄·의료보조·공공서비스 등 만성 인력 부족 분야로의 이동을, ‘하향 이동’이 아니라 경력 전환으로 설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직무 전환 교육, 임금 보전 장치, 지역·주거 연계 지원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중년층은 경력 전환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 중년 창업·프리랜스 안전망
40대 이후 자영업·1인 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전제로, 사회보험·세제·플랫폼 규제를 재설계해 “실패해도 재도전 가능한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한 번 폐업하면 회복이 불가능한 구조에서는, 누구도 모험적 창업 대신 소극적 생존에 머물 수밖에 없다.
AI가 가져오는 것은 “일자리 삭제”와 동시에 “업무 구조 재편”이다. 직업 구조가 AI에 의해 상당 부분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면, 한국은 이 전환을 누가, 어떤 속도로, 어떤 안전망 속에서 겪느냐를 두고 승패가 갈릴 것이다.
각자도생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방향
분명 지금의 2025년 한국은 세대별로 우울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20·30대는 출발선이 무너진 채 미래를 잃어가고, 40대는 경제 허리에서 경제 난민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여 있으며, 50·60대는 아직은 평온하지만 그 평온이 다음 세대의 불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지렛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 기술 전환을 ‘인력 절감 프로그램’이 아니라 ‘경력 재설계 인프라’로 활용하는 것
- 부동산 중심에서 인적 자본·기술·교육 중심의 자산 구조로 서서히 옮겨가는 것
- 세대 간 자산·기회 이전을 “증세·복지 갈등”이 아니라, 공동 생존을 위한 포트폴리오 재조정으로 보는 관점 전환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진단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각자도생은 ‘서로 등을 돌린 채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 전략을 세우되,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공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앞으로 10~15년, 40대가 다시 ‘경제 허리’로 설 수 있느냐에 한국의 다음 세대, 그리고 지금 노년을 준비하는 부머세대의 미래까지 달려 있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이 그리는 우울한 자화상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의 여백을 남겨두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