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봇과 AI 시대, 노동의 종말은 왜 허구인가

경제학적 통찰과 미래 전망

by sonobol







서론: 기술 유토피아의 환상과 냉정한 경제학적 현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 사회에 전례 없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화된 생산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여 '노동의 종말'이 도래하고, 그 결과로 막대한 생산력에 기반한 '기업 주도형 기본소득'이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은 기술주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심심치 않게 회자됩니다. 이러한 예측은 표면적으로는 기술이 가져올 풍요로운 미래를 그리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학적 원리에 대한 오해와 인간 본성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 칼럼은 이러한 주장이 왜 경제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민간 독재' 또는 '기업 봉건주의'적 디스토피아에 가까운지를 논증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기술 발전의 진정한 의미와 인간 노동의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글은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으나, 맹목적인 기술 낙관론이나 체념적 비관론을 넘어, 변화의 본질을 직시하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준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등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1. 기술 만능주의가 빚어내는 '낙관적 디스토피아'의 허상


로봇이 로봇을 생산하고 AI가 모든 지적 노동까지 자동화하여 인간이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는 세상, 그리고 기업이 창출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세상. 이러한 비전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상상은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디스토피아'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생산 수단을 독점한 소수 기업이 부의 분배 방식까지 결정하는 사회는 본질적으로 '민간 주도 계획경제'이며, 이는 시장의 자율성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합니다. 기업의 시혜에 의존하는 삶은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훼손하며, 기업의 의도에 따라 개인의 삶이 좌우될 수 있는 극단적인 통제 사회로 귀결될 위험이 큽니다. 이는 공산주의적 평등을 사기업이 구현하는 형태로, 사실상 '민영 독재' 또는 '기업 봉건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 일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인간의 모습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 사회적 관계 형성,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존재론적 공허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안일한 기대와 경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케인스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의 특정 개념들을 왜곡하거나 피상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오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러한 경제학적 오류들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2. 케인스의 '기술적 실업' 예언은 왜 빗나갔는가: 경제 문제의 본질과 인간 욕망의 무한성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한 경제학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입니다. 그는 1930년 발표한 에세이 『우리 손자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에서 100년 후인 2030년경에는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인류가 주당 15시간 정도만 일해도 모든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당시 대공황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제시된 희망적인 메시지였지만, 그의 예측은 현실과 큰 괴리를 보입니다.


케인스의 오류는 경제 문제의 본질을 '기수적(cardinal)'으로, 즉 양적으로 파악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가 일정량의 재화와 서비스로 채워질 수 있으며, 그 지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의 수요가 발생하지 않아 '경제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보았습니다. 즉, 행복이나 만족에 필요한 재화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기술 발전이 이 총량을 쉽게 달성하게 해 줄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와 효용은 기수적으로 측정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서수적(ordinal)'입니다. 즉, 개인은 A재화가 B재화보다 더 낫다(선호한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A재화의 효용이 B재화보다 '몇 배' 더 크다고 객관적으로 수량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주관적 가치 판단은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의 핵심 원리이며, 역설적이게도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됩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제시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인간이 이익과 손실을 평가할 때 절대적인 값보다는 기준점(reference point)으로부터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손실을 이익보다 더 크게 느끼는 등 합리적이고 기수적인 판단을 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선호를 만들어내고, 이는 결코 고정된 양으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3. 경제 문제는 선택의 문제: 주관적 가치와 끝없이 생성되는 욕구


경제학의 근본 문제는 '희소성'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반면, 그 욕망을 충족시킬 자원은 유한합니다. 여기서 '자원'이란 물질적 재화뿐만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자원인 '시간'을 포함합니다. 모든 개인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각자의 주관적 가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물질적 풍요가 넘쳐흐른다 해도, 개인의 시간은 여전히 하루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한정된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떤 경험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호와 선택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식량이 넘쳐나더라도 더 맛있는 음식, 더 건강한 음식, 더 특별한 식사 경험에 대한 욕구는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주거 공간이 충분하더라도 더 넓고, 더 편리하며, 더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갈망은 지속됩니다. 즉, 경제 문제는 '채워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생산성이 아무리 극대화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주관적 가치 판단과 그에 따른 새로운 욕구가 존재하는 한 '경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 발전은 기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욕구를 창출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양적으로 채워지는 그릇이 아니라, 질적으로 변화하고 확장되는 지평선과 같습니다.


4.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그 한계: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종종 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Labor Theory of Value)'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투입된 평균적인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여 인간의 노동 투입량이 '0'에 가까워지면 모든 생산물의 가치도 '0'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기계화가 심화되면 자본가는 노동자 없이도 생산할 수 있게 되어 부를 독점하고, 가치 창출의 원천인 노동이 사라지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가치의 원천을 잘못짚은 것입니다.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이나 생산비용이 아니라, 소비자가 그 상품에 부여하는 주관적 효용과 희소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를 '주관적 가치론(Subjective Theory of Value)'이라고 하며, 이는 한계효용학파(오스트리아 학파의 칼 멩거, 영국 학파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로잔 학파의 레옹 발라스)에 의해 확립된 현대 경제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아무리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상품이라도 소비자가 원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적은 노동력으로 만들어졌더라도 소비자의 큰 욕구를 충족시키는 희소한 상품은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예: 물-다이아몬드 역설)


또한, 공급이 무한대가 될 수 있다는 가정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모든 생산 활동에는 근본적으로 에너지와 시간이 투입됩니다. 자원의 희소성을 논외로 하더라도(사실 자원의 희소성도 근본적으로는 유한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단위 시간당 투입 가능한 에너지, 즉 '일률(power)'은 유한합니다. 인간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희소하며, 노동은 이 희소한 시간과 에너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로봇이 로봇을 생산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는 설계, 제작, 유지보수를 위한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며, 이는 결코 무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공급의 절대적인 한계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5. 노동의 본질: 소비재가 아닌 생산요소(자본재)로서의 노동


기술 발전이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의 성격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을 단순히 소비되는 대상, 즉 '소비재'로만 간주한다면, 더 효율적인 대안(로봇)이 등장했을 때 그 가치를 잃고 대체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은 소비재이기 이전에,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한 핵심적인 '생산요소(factor of production)' 또는 '자본재(capital good)'입니다. 물론 노동 자체가 즐거움을 주는 여가 활동처럼 소비재적 성격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경제 시스템 내에서 노동의 주된 역할은 가치 창출 과정에 투입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 기술,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등은 그 자체로 중요한 생산 자원입니다.


노동이 생산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술(로봇, AI)은 노동을 일방적으로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을 '보조'하고 '증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삽이 인간의 땅 파는 노동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 효율을 높였듯이, AI는 인간의 지적 노동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노동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6. 역사가 증명하는 기술과 노동의 공진화: 생산성 향상과 전문화의 촉진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종말을 가져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은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며, 새로운 산업과 직업을 창출해 왔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이 문명사회에서 전문화와 분업을 더욱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바퀴의 발명을 예로 들어봅시다. 바퀴가 없던 시절, 운송은 전적으로 인간의 육체노동에 의존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산성은 대부분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 생산에 집중되어야 했고,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고된 일은 주로 사회적 약자나 노예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바퀴가 발명되고, 이후 가축을 이용한 운송 수단(마차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운송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는 제2차 농업혁명과 맞물려 잉여 생산물을 증대시키고 교역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직접 나르던 노예의 단순 노동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했지만, 사회 전체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대신, 마부와 같이 새로운 기술(가축 사육 및 운용)을 활용하는 더 생산적인 직업이 등장했습니다. 한 명의 마부는 이전의 수많은 노예보다 더 많은 짐을 더 멀리, 더 빠르게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기차, 선박, 항공기의 발명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소수의 인원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자와 승객을 전 세계로 운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송 노동의 생산성은 상상 초월할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그렇다고 운송 관련 일자리가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마부의 일자리는 줄었지만, 자동차 정비공, 기관사, 파일럿, 물류 관리 전문가 등 더 전문화되고 다양한 직종이 생겨났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의 등장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자율주행 트럭이나 택시는 기존 운전기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물류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서비스 산업(예: 이동 중 엔터테인먼트, 원격 차량 관제 시스템)을 창출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핵심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특정 직무의 필요성은 줄어들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창출되는 부와 새로운 수요는 더 전문화되고 고도화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생산성이 수요를 초과할 때 비로소 더 정교한 분업과 전문화의 여지가 생기며, 이는 더 다양하고 질 높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으로 이어집니다. 미제스가 『인간 행동』에서 설파했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현재 상태의 개선을 갈망하기에 완전한 만족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이는 새로운 수요와 혁신의 원동력이 됩니다.


7. 러다이트 운동의 교훈: 기술 발전과 노동 환경의 역설적 개선


산업 혁명 시기,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는 극에 달했습니다. 방직기가 도입되면서 수많은 수공업 직조공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 하락의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벌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계가 모든 노동을 대체하여 자본가만이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산업 혁명의 결과는 정반대에 가까웠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특정 직종의 고용 불안과 열악한 노동 조건이 문제시되었지만, 장기적으로 산업 혁명은 전반적인 노동 환경 개선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흔히 산업 혁명기 근로 환경이 극도로 열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그 이전 시대 농촌의 비참한 생활수준과 비교해야 합니다. 농촌의 평균 수명은 훨씬 짧았고, 아동 노동 착취는 더욱 심각했으며, 가뭄이나 흉년으로 인한 기근의 공포는 일상이었습니다. 반면, 산업 혁명은 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촉진하고, 공장 시스템을 통해 (비록 초기에는 열악했지만) 지속적인 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 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가 결국 실질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대량생산은 상품 가격을 낮추었고(건전한 디플레이션), 이는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향상했습니다. 노동자의 생산성이 증대되자, 고용주 입장에서도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 조건 개선과 임금 상승 협상의 여지를 넓혔습니다. 고용은 본질적으로 고용주와 피고용자 간의 협력 관계이며, 피고용자의 생산성 향상은 그 협상력을 강화하는 요인이 됩니다. 기술 발전의 수혜는 결국 자본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8. 기술의 본원적 속성: 비경쟁성과 비배제성, 그리고 확산의 필연성


기술은 일단 개발되고 나면 그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본질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이 '비경쟁적(non-rivalrous)'이고 '비배제적(non-excludable)' 특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 비경쟁성: 한 사람이 특정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기술을 사용하는 데 제약을 받거나 그 기술의 양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바퀴의 원리나 소프트웨어 코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해도 소모되지 않습니다.


* 비배제성: 특정 기술의 혜택으로부터 사람들을 배제하기가 어렵거나, 배제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물론 특허권이나 지적재산권 같은 법적 장치를 통해 일시적으로 배타적 사용권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기술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나 원리 자체의 전파를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획기적인 기술이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의해 영원히 독점되기는 불가능합니다. 초기에는 선도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통해 초과 이윤을 얻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쟁 기업의 모방,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라이선싱, 인력 이동 등을 통해 기술은 확산되고 보편화됩니다. 오늘날 특허권이나 지식재산권은 이러한 확산 속도를 늦추고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만, 영구적인 독점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모방하고 응용하여 경제 성장을 이룬 사례는 기술 확산의 위력을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특정 기업이 로봇이나 AI 기술을 독점하여 영원히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과 거리가 십니다.


9. 기술 격변기 생존 전략 1: 노동의 진화와 생산성 극대화


그렇다면 로봇과 AI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의 시대에,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핵심은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노동의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첫째,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여 자신의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특정 단순 반복 업무나 낮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은 새로운 전문 분야와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를 창출합니다. 마부의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자동차 엔지니어나 물류 전문가의 일자리가 생겨났듯이 말입니다.


이는 '비자발적 실업'의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진정한 의미의 비자발적 실업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오스트리아 학파). 고용은 본질적으로 상호 합의에 의한 협력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성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임금을 요구하지 않는 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최저임금제와 같은 시장 개입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차가 사라진 시대에 과거의 짐꾼 노예가 여전히 낮은 임금을 받고서라도 단순 운반 노동을 하겠다고 한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이는 논쟁적인 시각이며,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을 간과한 주장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기술 변화를 외면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웹 디자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여전히 메모장에 HTML 코드를 한 줄씩 입력하고, 마우스로 그래픽 요소를 일일이 그려서 웹사이트를 제작합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최신 편집기와 AI 기반 코딩 어시스턴트를 활용하고, AI 이미지 생성 도구와 디자인 템플릿을 사용하여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두 사람의 생산성 차이는 엄청날 것이며, 전자는 낮은 임금을 받거나 일감을 얻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AI와 같은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기술 발전은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의 진화'를 의미하며, 이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전문화와 분업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 혹은 가장 열정을 느끼는 분야를 선택하여 깊이 파고들고, 기술을 통해 그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입니다.


10. 기술 격변기 생존 전략 2: 자본 축적과 현명한 투자 (특히, 경화 자산의 중요성)


기술 발전의 수혜를 누리는 두 번째 방법은 '자본'을 보유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플레이션으로부터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경화(hard money)' 형태의 자본 축적이 중요합니다.


기술 발전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늘리고, 이는 장기적으로 물가 안정 또는 하락(건전한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화폐의 구매력이 상승하므로, 현금이나 그에 준하는 유동성 높은 자산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화폐 자체가 안정적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품 증가 속도보다 화폐 발행량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면,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 경우, 늘어난 생산 가치는 화폐를 먼저 공급받는 주체(정부, 금융기관 등)에게 우선적으로 이전되며(캉티용 효과), 일반 대중이 보유한 화폐의 실질 가치는 하락합니다. 이는 기술 발전의 과실을 대다수 국민이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원 배분을 왜곡하여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자본이 흘러가게 만듭니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자본 축적을 방해하여 장기적인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실질 임금 하락을 초래하여 근로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변동성이 큰 시대일수록 가치가 안정적인 경화(예: 금, 비트코인 등 공급량이 제한된 자산)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유망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술 선도 기업이라 할지라도 기술의 비경쟁성·비배제성으로 인해 영원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과거 바퀴를 처음 발명한 부족이나 기업이 일시적으로 큰 부를 얻었겠지만, 바퀴 제조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그 독점적 이윤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산 투자와 지속적인 시장분석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1. 기업 주도 기본소득의 허구성과 시장 퇴출의 필연성


마지막으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이라는 주장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환상에 가깝습니다.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생산 활동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이전소득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야기합니다.

기업이 아무런 대가 없이 개인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행위는 기업 입장에서 완전한 순손실입니다.


주식회사의 본질적 목표는 주주 가치 극대화이며, 이는 고객에게 가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달성됩니다.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원을 무상으로 분배하는 기업은 경쟁 기업에 비해 비용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이는 자선 활동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자선은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지만, 기본소득을 기업이 주도한다는 것은 사업 모델 자체에 비효율적 비용을 내재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본소득은 생산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비생산에 대한 보상이며, 이는 생산 동기를 약화시키고 소비를 과도하게 유도하여 자본 축적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자본 축적이 없으면 기술 발전도 더뎌지고, 생산성 향상과 전문화·분업 심화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가치를 교환하는 시스템이며,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은 결국 가격 시스템을 왜곡하고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립니다.


국가가 강제적인 과세권과 화폐 발행권을 통해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것은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계산으로 소수의 생산자가 창출한 부를 다수의 비생산자 또는 저생산자에게 이전하는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조세 저항, 인플레이션, 근로 의욕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지속가능성 또한 불투명합니다. 하물며 강제력이 없는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그것도 경쟁 시장 환경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매우 낮은 시나리오입니다.



결론: 노동의 진화, 인간의 적응, 그리고 미래를 향한 능동적 자세


로봇과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허황된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노동의 종말'이나 '기업 주도 기본소득'과 같은 주장은 경제학적 기초가 부실한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며, 가치는 주관적 선택에서 비롯되고, 노동은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생산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기술 발전이 언제나 새로운 수요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창출해 왔음을 증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려는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고도화되고 전문화된 형태로 진화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 고유의 창의성, 비판적 사고, 공감 능력, 복합적 문제 해결 능력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기술 발전을 인류의 번영을 위한 강력한 도구로 활용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냉철한 분석과 합리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합니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예언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며 함께 발전하는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더리움 펙트라(Pectra) 업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