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5. 기록은 결국 마음이다.

『AI 시대, 결국 인간다움! 2』 마흔다섯 번째 글

by 멘토K

아침 공기가 조금 서늘했던 날이었다.

책상 위에 어제 쓰다 만 노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나도 모르게 적어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기록은 결국 마음이다.”
그 순간 묘하게 울컥했다.

내가 이 말을 적을 때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 다시 마주하니 오래된 친구 같은 감정이 어깨를 다독여 주는 듯했다.


나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기록을 권한다.

기록은 생각을 정리해주고, 경험을 되돌려주고, 미래를 준비하게 해주는 도구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조차 어떤 날은 기록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지나친다.

아무리 습관을 만들려고 다짐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깨닫는다. 기록은 의지가 아니라 결국 ‘마음의 온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기록은 더욱 소중해진다.

요즘은 예전처럼 기억이 오래 남아 있지 않다. 머릿속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록은 나의 두 번째 기억이고, 때론 첫 번째 기억보다 더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거울이 된다.

예전에 서툴렀던 나를 돌아보고, 그때는 왜 그렇게 고민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참 이상하다.

내가 써 두었지만, 다시 읽으면 마치 누군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다.

그 손은 미래의 나일 때도 있고, 과거의 나일 때도 있다.

120201.png



생성형 AI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기록의 인간적인 힘이 더 도드라진다.

AI가 대신 정리해준 문장은 정확하고 효율적일지 몰라도, 마음의 떨림은 담아주지 못한다. 하루의 흔들림, 작게 남은 후회,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 같은 것. 그런 건 결국 내가 직접 적을 때만 종이에 스민다. 그래서 기록은 기술이 아니라 온도이고, 방식이 아니라 촉감이다.


나는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어떤 날은 한 줄로 끝나고, 어떤 날은 마음만 앞서고 글씨는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보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록을 멋지게 남기려 하면 오히려 글이 멀어진다.

기록은 잘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남기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날의 나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일 뿐이다.


나는 기록할 때 항상 질문을 하나 던진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을 적는 순간 마음이 천천히 열린다.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차분히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쓰지 못했던 이유가 대부분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어서’였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기록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화가 난 날은 짜증이 글씨 사이사이에 묻어나고, 슬펐던 날엔 문장이 유난히 짧아진다.

행복했던 날은 글씨가 조금 더 둥글어지고, 감사한 날은 문장이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지도다. 지나고 보면, 한동안 나도 몰랐던 마음의 흐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기록은 어떻게 꾸준히 하세요?”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꾸준히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 날 기록하면 됩니다.”
꾸준함을 만들어내는 건 강한 의지가 아니라 마음의 흔들림이다.

다만, 그 흔들림이 지나가기 전에 잡아두면 그것이 기록이 된다. 마음이 기록을 부르고, 기록이 다시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이런 순환이 쌓이면서 삶이 조금 더 단정해지고, 내면이 조금 더 고요해진다.


나는 기록이 삶을 바꾼다고 믿는다.

기록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가게 만든다.

기록 덕분에 나는 나라는 존재와 매일 다시 연결된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오늘도 노트 한 켠에 조용히 이렇게 적어둔다.
“기록은 결국 마음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이 남는다.”

그리고 그 문장을 덮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작은 나를 품에 안는다.


- 멘토 K -

keyword
화, 목, 토, 일 연재
이전 24화#54. 다시 읽어보니 내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