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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11. 2022

'우아'하고 싶다.

: 내겐 '우아' 대신 '조급', '덤벙' 등이 따라다닌다.

 내 친구의 손동작은 유난히 우아하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서 예쁘기도 하지만, 그 고운 손가락들이 한 번도 바삐 움직이는 법이 없다. 책장을 넘길 때도, 젓가락을 쥘 때도, 지갑을 열 때도 곧게 펴진 다섯 손가락들이 언제나 천천히 움직였다. 무언가를 우악스럽게 움켜쥐는 법이 없었다. 그 움직임이 내 눈에는 우아하게 보였고, 우아함이 뚝뚝 떨어지는 친구의 손이 부러웠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3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여태껏 그 친구만큼 손동작이 우아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반면에 내 열 손가락은 늘 바둥거린다. 언제나 바쁘다. 조급한 성격의 주인을 만나 고생 중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모두 억척스럽게 해낸다. 천천히 해도 될 일을 서두르고, 서두른 만큼 일을 더 많이 하느라 손마디가 굵어진다. 일복도 복이라면, 복이 많은 내 손가락들은 40세가 되던 해에 잠시 관절염을 앓기도 했다. 아직 사용해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운 일이다.


 사실, 손가락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사에 그런 식이다.

 예를 들자면...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누군가 자동차를 멈춰 세워주면 내 다리는 걷는 법이 없다.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넌다. 멈춰 서 준 마음이 고마워서 나도 빨리 지나가 주려는 마음에 하는 행동이지만, 그래 봤자 몇 초 차이가 나지 않는다. 괜히 걸음만 조급하다. 조급하니 덤벙대기도 한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우보다 곰에 가까워서 궂은일도 잘한다. 고기를 굽거나, 무거운 짐을 들거나,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에 소매를 걷어붙인다. 언젠가 만난 한 여우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회식자리에서 고기를 굽는 곰을 칭찬해주면, 곰이 신나서 더 열심히 고기를 굽는단다. 그러면 여우는 옆에서 편안하게 고기를 주워 먹는단다. 내가 곰이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세상에 그런 여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가끔은 '나 그런 거 할 줄 몰라~'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 해주는 것을 받기만 하면 좋겠다. 무엇이든 내 손으로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 때문에 몸이 피곤하다. 몸이 피곤해지니, 마음도 피곤해진다.


 '우아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아하다'의 사전적 의미인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저 친구의 손가락이 우아해 보여서 시작된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우아해져야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다.


 우아함과 게으름이 반반 섞인 것에 가까운 손가락도 있다. 내 남편의 열 손가락이 그렇다. 무슨 일이든 서두르는 법 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들은 내 손가락들보다 느리다. 느린 속도만큼 일을 덜 할 테니 그만큼 편할 것이다. 부럽다.

 결혼 전 연애시절,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으려 책상 아래로 몸을 숙인 적이 있었다. 당시 애인이었던 지금의 남편이 서둘러 나를 저지했다.

 "놔둬, 이런 건 내가 할게!"

 7년이 지난 지금, 그 남자는 책상 아래로 몸을 숙인 내게 자신의 노트북 충전기도 내려준다.

 "이것도 꽂아줘." 


 얼마 전 이사를 앞두고서 내 손가락들에게 당부했다.

 나대지 마! 너희들 아니어도 일할 손가락들 많아! 명심해! 빨리 움직이지 마!


짐을 풀고, 정리하고, 바닥을 닦고, 걸레를 빨고, 또 닦고, 쓰레기를 버렸다.


 애당초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내 열 손가락과 두 팔과 두 다리는 이틀 동안 바지런히 움직였고, 어젯밤에는 두 손목과 팔꿈치, 두 발목에 파스를 아낌없이 붙였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열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손등에는 긁힌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그래, 너를 누가 말리니. 알아, 손가락들아. 너네 덕분에 짐 정리를 일찍 마쳤지. 고생했어. 그렇지만 절반 정도는 그냥 남겨두지 그랬어. 그랬다면 주말에 남편이 정리해주지 않았을까? 우리, 이제 조금은 편하게 살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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