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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Aug 02. 2022

엄마의 발걸음

: 타닥타닥 제주에서 4주 차

25/26/27/28일, 엄마의 발걸음


 2010년 초가을의 이른 아침, 서귀포 바닷가를 산책하던 엄마가 말했다.

 "아~~ 너무 좋다!"

 좋지, 당연히 좋지.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말이 12년 만에 다시 생각난 건,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져 그 길로 아침 산책을 나섰다. 신창리 해안도로를 걷고 있자니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 좋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감탄. 그 흔한 감탄의 표현에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이 바다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엄마에게 제주도의 아침 바다를 다시 보여주고 싶어졌다. 막연히 '언젠가'라고 생각했다.


 3 ,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며칠간 육지에 다녀와야 했던 남편의 제안으로 엄마가 제주도에 오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다 보니 미처 휴가를 내지 못한 형부는 오지 못하고 엄마와 언니, 두 명의 조카가 3박 4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가게 되었다. 이미 3일 동안 혼자 지내던 터라, 곧 제주도에 도착할 가족들이 더 반가웠다.

 뭘 하고 보낼까? 날씨가 많이 더워서 엄마가 걱정스럽긴 했다. 하루 전 둘째 조카와 통화를 했다.


 이모: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네.

 조카: 이번 여행은 할머니 컨디션에 맞춰주자.


 분명히 그랬었다. 분명히 그러려고 했다.


 다음날 오후,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다음날 아침에는 엄마와 함께 신창리 해안가에서 일출을 보았다. 너무 좋다. 정말 예쁘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던 제주도의 아침 바다가 가장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와... 다행이다.

 엄마를 위해 시작된 여행의 출발이 좋았다.

신창리 해안가에서 본 일출

 그런데...... 딱, 여기까지!

 엄마를 위한 여행은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나버렸다.

 이후로 엄마는 줄곧 두 딸과 두 조카들을 따라다니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엄마는 더 늙고, 조카들은 훌쩍 커버렸다. 간극이 커진 두 세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폭염에 지쳤을 노인네의 몸이, 앞서 가는 젊은 애들을 따라가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꾸 뒤처지는 엄마가 걱정돼서 내 발걸음을 늦추다가도... 입장료를 계산하거나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나 역시도 앞장서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쩌다 보니 일정의 대부분이 조카들 위주가 되고, 엄마는 그저 우리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할머니 껌딱지처럼 할머니 손만 붙잡고 다니던 둘째 조카도, 사춘기가 되더니 할머니보다 오빠나 엄마나 이모 팔짱을 끼려 한다. 조카들은 너무 빨리 앞서 가고, 엄마의 발걸음은 자꾸 뒤처진다. 그러는 와중에 엄마는 틈틈이 조카, 그러니까 엄마의 손주들에게 이걸 먹어라, 저걸 해라 참견을 하니... 아이들이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속상해서 나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다. 엄마, 그냥 좀 놔둬.

 그러고는 금세 돌아서서 내 입을 틀어막고 싶어졌다. 못된 년.


해가 질 무렵, 바람 부는 송악산 둘레길 1 전망대에서.

 엄마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풍경이 나타나면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우리를 부른다.

 우와~ 이쁘다! 이리 서봐!

 제주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마시는 달달한 카러멜마끼아또를 좋아한다. 바람이 부는 바닷가 절벽 위를 솔방 솔방 걷기 좋아한다.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맛이 깔끔한 호박국수를 좋아한다.



 엄마의 발걸음은 앞으로 더 느려질 테고, 어쩌면 앞으로 3대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더 어려워질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이상하다.

 조금 느리면 느린 대로 엄마의 발걸음에 맞춰, 온전히 엄마를 위한 여행을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열을 가하면 국수처럼 쭉쭉 늘어나는 호박이란다. 한경면 '쓰쓰카페'에 가면 호박국수를 먹을 수 있다. 비빔/물 두 종류가 있다. 식감이 아삭하고 맛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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