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나의 도전기
나의 모든 시작은 첫 인도 배낭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 배낭여행 전에도 방학이 오면, 줄곧 여행을 다녔지만,
오로지 혼자서 아무 계획 없이 비행기 티켓만 끊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생의 큰 부분을 처음 결정하게 된 여행다운 여행.
3개월이란 긴 시간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된 것도 처음.
아직도 미숙한 게 많은 나지만, 오롯이 혼자 무언가를 감당해내야 했던 것도 처음.
롤러코스터를 타 듯, 다이내믹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 것 역시 처음.
슬픈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을 정도로 무뚝뚝한 내가 여행 중엔 툭하면 터져 나오는 눈물이 참 많이도 싫었는데, 격한 날것의 감정에 무뎌진 지금의 나이에는 그때의 내가 참 그리워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행의 기억이 생생하다.
인도 여행 전에 나는 내가 평생 옷을 만지는 일을 하며 살 줄 알았고, 대학교 전공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패션 전공 쪽으로만 지원을 했었다. 취업도 마찬가지. 여성복 브랜드로 들어가 여성복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의상을 전공하며 그림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도시마다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여행 그림을 그렸었다. 처음 며칠은 마음만큼 그려지지 않으니 굳은 손 끝에 몰리는 짜증이 감당이 되지 않아 몇 번이나 펜을 들었다 놨다 했었는데, 매일매일, 여행 내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인도의 뜨거운 햇빛이 내 등에 고스란히 내리쬐는지도 모르고 등에 화상을 입을 때까지 그림을 그린적도 있었다. 그렇게 스케치북 한 권을 빼곡히 채워 그린 여행 그림을 블로그에 올려 나는 디자이너에서 일러스트레이터란 직업으로 직업을 바꾸었다.
많이 느리고 많이 어설프지만 여행 에세이를 처음 쓰게 된 것도 모두 시작은 내 첫 인도 여행 일기를 담은 <오래된 여행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초등학교 시절 독후감 숙제는 진절머리 나게 싫어했을 정도로 글쓰기를 싫어했던 나인지라 글을 끄적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게 단순히 혼자 블로그에 쓰는 여행 일기일지라도.
벌써 브런치를 통해 몇 년을 혼자 느리게 써 내려가고 있지만, 아직 내 여행의 반도 옮겨놓지 못할 만큼 내 글은 너무 서툴러서 속에 있는 수많은 감정을 토해내기가 어렵다.
모든 시작은 인도 여행이었지만,
나의 재시작은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고 있는 요즘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보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글을 쓰는 두려움으로 그 발걸음이 더 더디어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세상에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를 책에 대한 무게감이 내 발목을 붙잡고 한없이 깊고 어두운 곳으로 끌어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나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을텐데, 제안을 받은 그 시기에 나는 별거 아닌 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게 너무 힘들어 한동안 브런치에 여행기를 올리는 일을 그만두어버렸다.
내 글을 보면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내 부끄러운 글솜씨를 누가 보는 게 싫어서 그만 그렇게 놓아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빌 브라이슨처럼 위트 있는 여행기를 써내 보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내 글들은 점점 더 작아져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타인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누가 내 그림을, 내 글을 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고작 40편을 쓰는 동안 몇 년의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버렸다.
그러다 최근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만 남의 시선에 급급해오며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못쓰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혹은 누가 내 글을 봐서 내 속내가 드러난다 해도 우선 쓰기로 했다.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들 때까지 쓰고 다듬으면 돼.
그렇게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을 즈음, <나도 작가다>란 공모전을 보고 이렇게 글을 써본다.
다시 시작을 하기 전의 나는 생각지도 않았을 공모전.
우선 그냥 해보기로 했다.
빠져나갈 구멍만 찾으며 미루고 숨겨뒀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그냥 해보는 것.
20대의 내가 첫 인도 여행을 할 때 그랬던 마음으로
그냥 해보는 것.
참 오래도 잊고 살았던, 그때는 참으로 쉬웠고
지금은 한 발자국이 너무도 어려운 그냥 해보는 것.
그게 무엇이든 나는 아직 늦지 않았고
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