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Dia

by mercioon




바라나시에 오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번가트라 불리는 마니까르니까 가트를 보러 오거나 시타나 북 같은 인도 전통 악기를 배우러 오는 여행자들이 많다. 번(burn)가트는 별칭 그대로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화장터로

번가트로 가는 골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번 바라나시를 방문한 나지만 사실 나는 번가트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미라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시체를 구경거리로 삼는 것의 불편함... 많은 여행자들이 번가트를 마주하고 경건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여행자에겐 타국의 장례 문화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그 가벼운 마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아니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시체 운구 모습에 어느새 여행자들이 익숙해진 걸 지도. 아무튼 인도인들에게는 바라나시에서 자신의 끝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이기에 그들의 마지막 죽음이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라나시의 숙소가 몰려있는 뱅갈리 토라는 각종 악기를 가르쳐 주며 악기를 판매하는 악기상들이 몰려 있다. 현악기인 시타는 워낙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많이 배우지 않는데 비해, 타악기인 젬베는 다들 한 번씩 배우는 편인데 그마저도 며칠 배우다 대부분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델리에서 만나 내 일행이 된 9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이 자식이 쓸데없이 젬베에 근성을 들여 심심하면 젬베를 두드려댔다. 소음에 별로 민감하지 않은 나였지만, 몇 날 며칠 버스에서건 길에서건 숙소에서건 젬베를 두드려대는 통에 젬베를 강에 던져버리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이 자식은 젬베에만 근성이 있는 게 아니었다. 디주리두라는 소리라고는 부~~~~~~~~우~~~~~~~~ 한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쓸모없고 크기만 크고 자기 키보다 기다란 거대한 나팔 같은 악기에도 꽂혀서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덩치가 큰 악기가 2개이다 보니, 짐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 좁디좁은 버스에 무슨 귀중한 보물인 것 마냥 젬베는 다리에 끼고 디주리두는 겨드랑이엔 낀 채 잠든 모습을 보면 참 젊은 게 좋다가도 디주리두 소리만큼 쓸데없는 열정이다 싶다.



디아 : Dia

작은 꽃들로 치장된 초가 올라간 접시로 갠지스 강에서 배를 타고 나가 소원을 빌며 띄우는 물건.


그런 배움의 열정은 애초 은공예에 불살라 버린 나에게 바라나시는 그냥 인도를 여행할 때마다 꼭 들러야 하는 뭔가 휴가를 빼곤 특별한 일 없이 억지로 적어야 하는 여남은 방학 일기 같은 느낌이어서,

낮에는 라씨 한잔을 먹으러 편도 삼십 분 거리의 땡볕을 걷는 쓸데없고 수고스러운 일을, 저녁에는 배를 타고 디아를 띄우거나 하릴없이 뜨내기 깡패들처럼 알라딘 바지에 손을 꼽고 숙소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 보나카페로 가서 병맥주를 들이켜는 게 하루 일과의 다였다.

해가 질 무렵이면 동그랗고 귀여운 눈망울을 한 애기들이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하나씩 노란색의 메리골드로 어설프게 치장한 디아를 하나씩 들고 여행객들의 바지를 끌어당긴다. 엄마 등쌀에 못 이겨 장삿속에 저 어린아이들이 나와 천연덕스럽게 10 배는 비싼 값을 부르는 걸 알지만, 어찌 저 검고 큰 눈망울을 한 아이들의 디아를 거절할 수 있으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낮부터 준비하느라 이미 반쯤 시든 메리골드를 보며,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디아 100개를 띄워 프러포즈 한 일화를 기억해냈다. 바라나시의 터줏대감이신 라가 카페의 사장님이 사모님에게 갠지스강에 디아를 100개 띄어 프러포즈를 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깜깜한 갠지스 강 위로 100개의 반짝이는 디아는 얼마나 황홀할까?

라는 상상에 우리도 디아 100개 띄우기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까맣고 동그란 눈을 한 단발머리 여자아이와 그보다 작지만 역시나 크고 동그란 눈을 한 채 수줍게 누나 치마 뒷자락에 숨은 사내아이에게 가격을 흥정해 3명이서 디아 33개 정도씩을 샀다.

수많은 디아를 옮기느라 눈에 뻔히 보이는 사기꾼 뱃놈과 가격 흥정도 제대로 못한 채 배에 올랐다.

배가 가트에서 멀어져서 중간쯤 도달했을 즈음 해가 완벽하게 져, 사방이 캄캄하고 저 멀리 우리가 출발한 가트 주변만 작은 불빛들로 반짝이는 걸 보고서야 우리는 준비해둔 디아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부는 강바람에 붙을 듯 안 붙을 듯 실랑이를 해대는 통에 초 하나에 불을 붙이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겨우 불이 붙은 초에는 어디서 휙 소리와 함께 흡사 표창이 날라들 듯,

나방을 포함한 갖은 이름 모를 벌레들이 초로 자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애물이 된 우리의 등은 미처 초로 달려들지 못한 벌레들이 틈 없을 정도로 자리를 잡아대기 시작했다.

세상에 벌레들의 공격을 그렇게 많이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장애물의 방해로 등에 안착한 벌레들은 다행이 살아남았지만, 불에 뛰어들기를 성공한 벌레들은 각자의 몸뚱이를 불사르며 어렵게 불 붙인 디아를 빠른 속도로 꺼뜨려갔다.

점점 더 몰려드는 벌레떼들에 우리는 각자 5개도 채 불을 붙이지 못하고 항복을 외쳤다.

꽥 꽥 소리를 지르며 각자의 등에 들러붙은 벌레들을 쳐 죽이는지 날려 보내는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등을 털어주기에도 바빴다.

가이드북에 나온 사장님은 어떻게 100개 붙이기에 성공하셨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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