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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31. 2022

고티에 카퓌송과 함께

첫 만남부터 오늘이 있기까지...

작년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날 밤, 곧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에 나는 TV로 불꽃 축제를 보고 있었다. 매년 7월 14일 대혁명 기념일에는 에펠탑에서 음악회 및 불꽃 축제를 하는데, TV로 실시간 방송을 해준다. 베란다 밖에서는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이곳 뇌이쉬르센까지 들려왔다. 저 멀리 에펠탑에는 불꽃이 끊임없이 터졌다. 파리시는 건축법에 따라 누구나 어디서든 에펠탑을 볼 수 있도록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우리집은 파리 근교이지만 운이 좋게도 방향과 높이 등이 여러모로 맞아서 에펠탑이 저 멀리 보인다. 아무리 에펠탑과 가까워도 방향 및 높이 등이 맞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전에는 에펠탑과 비교적 가까운 파리 16구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방향 및 높이 등이 맞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다.


불꽃 축제가 거의 끝날 무렵,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의 사랑의 찬가(L'hymne à l'amour)였다.  한 남자가 눈을 지그시 감고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으며, 이에 맞춰 4명의 무용수가 두 명씩 남녀 짝을 맞춰 발레를 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사이사이 에펠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파리시 전경이 펼쳐졌다. 그때 시각은 밤이었다. 주변은 깜깜하고, 오로지 첼로 연주하는 남성과 무용수들에게만 빛이 비치고 있었다. 첼로 연주하는 남성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눈을 떴다를 반복하며 연주에 완전히 몰입된 상태였다. 사람의 눈동자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눈동자가 마치 반짝이는 동그란 수정 같았다. 다이아몬드 보다도 더 반짝이는... 그 후 그에 대해 알아봤다. 세계적인 프랑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Gautier Capuçon)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작년 10월 즈음에 루이뷔통 재단에 올라온 어떤 프로그램 하나를 발견했다. 루이뷔통 재단에서 한창 열리고 있는 모로조프 전시회로 자주 들어가 봤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 작년 파리 콘서트에서 마지막에 사랑의 찬가를 연주했던 그 멋진 훈남 첼리스트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마스터 클래스를 루이뷔통 재단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총 5회에 걸쳐하는 고티에 카퓌송의 마스터 클래스는 작년 12월, 올해 1월, 3월, 5월, 6월에 있으며 매달 이틀 동안 마스터 클래스를 하며 둘째 날에는 학생 6명의 연주회도 있다. 나는 작년 12월에 있었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했었다. 저녁에 하는 연주회에도 갔다. 루이뷔통 입장권만 사면 공개 마스터 클래스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연주회는 연주회 티켓을 사야 입장 가능하다.  


12월 마스터 클래스 참가 후, 나는 그에게 더욱 빠져들었다. 평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즐겨 들었지, 첼로는 잘 듣지 않던 나였는데 고티에 카퓌송을 알게 된 후로 첼로의 매력에 빠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의 매력에 빠졌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의 활동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혼은 했을까 안 했을까? 했다면 누구랑 했을까... 등등 궁금했는데, 같이 첼로를 하는 부인이 있으며, 슬하에 두 딸이 있었다. 멋지던데 아빠였구나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또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잉? 왜 아쉬움과 안도감이 들지?).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이 더욱 매력있게 보였다.


 그 후, 유튜브에서 그의 연주 동영상을 일일이 찾아서 들었다. 특히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에펠탑에서 연주한 영상은 조금 과장해서 50번 넘게 보고 들었던 것 같다. 얼마나 봤으면, 어느 날 아들이 사랑의 찬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가사를 모르면 허밍으로 멜로디를 읊조렸다.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기를 하면서, 자기 전에... 아이는 사랑의 찬가를 흥얼거리며 엄마와 함께 노래에, 첼로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왜 사랑의 찬가를 부르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아이도 좋아하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1월 29일과 30일, 양일에 걸쳐 매일 2시간 동안 공개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29일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1시간씩 2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았다. 내게 회원 카드가 있으니, 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인 Y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매우 고마워했지만, 토요일 11시 30분까지 세명 아이들을 아침 먹이고, 옷 입히고 챙겨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예약할 필요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토요일 오전 11시까지 준비가 됐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결국 그녀는 연락이 없었다. 주말 아침부터 3명 여자 아이를 챙기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혼자 루이뷔통 재단으로 향했다.


우리 집 아이는 가기 싫다고 했다. 아이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같이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작년 12월 마스터 클래스 첫날에 아이와 같이 간 적이 있다. 아이는 30분이 지나자 지겨워하며 나가고 싶다고 했다. 마침 2층 좌석에 앉았기 때문에 쉽게 나올 수 있었다. 만 5살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분야에 움직이지도 말고, 소리 내지도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것은 고역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도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하시는 엄마 따라 이곳저곳 음악회를 많이 다녔는데, 피아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되는 연주회장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하면 역효과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싫다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때 재미없다는 것을 경험했는지, 이번에 첼로 보러 같이 가자고 하니 단칼에 싫다고 답했다. 혹시 엄마 따라가고 싶어 할지 몰라서 그 후 두세 번 더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가기 싫다고 했다. 아빠랑 만들기 하며 집에 있겠다고 하는 아들을 두고, 혼자 마스터 클래스 현장으로 갔다.


작년과 비슷한 숫자의 청중이 앉아있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꽤 많았다. 한국이었다면 예중, 예고 학생들, 엄마 손을 잡고 온 첼로 꿈나무 초등학생들(유치원생도 있을 것 같다), 첼로 전공 대학생들 등 학생들이 많았을 텐데 이곳은 달랐다. 엄마 손 잡고 온 아이는 없었다. 간혹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5명 정도 보였고, 그 외는 50대, 60대, 70대가 대다수였다. 총인원은 약 50명 정도.


첫 시간 수업받는 학생은 한국인이었다. 이름은 유지인, 나이 19세, 13세부터 파리 고등음악원(Conservatoire Natioanal Supérieur de Musique de Paris)에 다니면서, 현재 프랑스 첼리스트 Michel Strauss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파리 고등음악원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프로필을 보니, 만 5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했고, 7살에 한예종 예비학교(Seoul National University of Arts Preschool)에서 첼리스트 정명화 교수님의 사사를 받았다. 그 후, 여러 콩쿠르에서 상도 받고, 크고 굵직한 연주회도 많이 했다. 2016년에 파리에 와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으로 많은 교육을 받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고 멋지지만, 더욱 멋지고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되기를 같은 한국인으로서 간절히 바랬다. 프랑스어를 하는 그녀에게 프랑스어로 수업이 진행됐다.


(좌) 한국인 첼리스트 유지인씨가 수업 받는 모습 (중) 카퓌송의 수업을 집중하며 듣는 아이

 

두 번째 시간에는 Jan Sekaci라는 루마니아 학생이었다. 나이는 20세, 10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했다. 각종 콩쿠르에서 상도 받고,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나이에 첼로를 시작했지만, 첼로에 재능이 있었는지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폭풍 성장을 했다. 고티에는 루마니아 학생에게 열의를 조금 보이는 듯 보였다. 물론 6명의 모든 학생들 모두가 그의 애제자이며, 수업 시간 내내 열의를 다했지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루마니아 학생에게 조금 더 애틋함을 가지는 듯 보였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루마니아 학생은 프랑스어를 못해서 영어로 수업을 받았다. 카퓌송은 영어도 매우 유창했다.


Jan Sekaci 수업이 끝났음에도 둘은 무대에 남아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업 내내 학생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학생의 생각과 느낌, 해석을 듣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학생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르쳐주려는 듯 보였고, 학생들에게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루마니아 학생이 첼로 때문에 마이크를 잘 달지 못하고 있자, 다가와서 마이크를 달아주는 것을 도와주는 스위트함도 잊지 않았다. 잘하면 활짝 웃음으로 학생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어떤 부분에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고뇌하기도 하며, 학생에게 '너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어떤 기분이 드니, 어떤 감정이니, 어떻게 해석하니...'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생각할 시간도 충분히 주면서, 일방적인 레슨이 아닌, 학생과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수업 시간이었다. 루마니아 학생이 카퓌송의 말에 계속 긍정하자, 카퓌송은 '정답은 없어,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으니, 너의 생각을 말해보렴.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내가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를 가르친 친정 엄마를 비롯하며, 마스터 클래스 참가했을 때 유명한 교수님들, 그 외 여러 교수님들께 원데이 레슨 받았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에게 '너는 이 부분에서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떻게 해석하니'라는 질문을 거의 받은 적이 없다. 물론 나는 그 당시 어린 초등학생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시키는대로, 하라는대로, 악보대로, 박자대로 피아노 치는 것이 잘 치는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원곡과 가장 흡사하게, 악보와 가장 일치해서, 메트로놈 박자에 잘 맞춰서... (물론, 지금은 음악 교육 환경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또한, 대학생들과는 서로 의견을 나눌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곳 프랑스에서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자유로움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시키는 대로 그림 그리고, 피아노 치고, 정확하게 그림 그리고 피아노 치고, 피나는 연습을 해야 잘하는 것이었다면, 이곳은 내 생각 내 느낌대로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자유롭게 그림을 감상하며, 음악을 감상하고, 내 해석이 중요해 보였다. 물론 기본기를 무시하고 자유로운 느낌만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림이든 피아노든 첼로든 기본기는 탄탄해야 한다. 기본기와 기술적인 테크닉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자유로운 느낌과 표현 및 나만의 해석이 가능하다.


2시간 공개 마스터 클래스가 끝이 났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한 청년이 고티에 카퓌송에게 다가갔다. 둘은 한참을 대화하더니, 마지막에는 같이 사진을 찍었다. 카퓌송은 그 청년에게 '파리에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영어로 말했다. 속으로 관광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카퓌송과 함께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년 12월 수업에 왔을 때 그에게 팬이라고 다가가서 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마음을 쉽게 접었는데, 이번에 청년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용기가 생겼다. 실제 여러 번 보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카퓌송은 매우 호탕한 성격의 연주자였다. 자주 웃고(웃은 모습도 매우 호탕하다. 활짝 웃는다), 관객에게 말도 잘 건네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사진 요청을 해도 흔쾌히 받아줄 것 같았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쳤고, 다음에 용기 내어 사진을 같이 찍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에는 모든 장난감을 다 꺼내어서 아빠와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이: "엄마, 첼로 잘 봤어?"

나: "응, 너무 좋았어. 내일도 가서 선생님과 사진을 찍으려고 해."

아이: "에펠탑 꼭대기에서 사랑의 찬가 첼로 연주한 그 아저씨랑?"

나: "응. 그 아저씨랑"


나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내일의 상황을 리허설했다. 아이는 카퓌송, 나는 나. 그리고 우리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상황을 그려보았다.  


나: "실례합니다. 저는 한국인 예요. 당신의 열렬한 팬이에요. 괜찮으시다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아이: "네, 그럼요"

나: "저는 당신의 연주를 너무 좋아해요. 특히 에펠탑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연주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거의 매일 들어요. 어느 날은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하더라고요. 제가 매일 듣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5번 정도 상황극을 연습했다. 아이는 갑자기 나에게 "엄마, 나도 내일 가고 싶어. 나도 아저씨랑 같이 사진 찍고 싶어."라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잘 앉아 있을지 몰라서 장난감을 몇 개 챙겨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12시 반에 시작하는 두 번째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기 위해 12시 정도에 집을 나섰다. 중간에 5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때 들어가도 괜찮았다. 여전히 루이뷔통 재단은 모로조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우리 모자는 지하 오디토리움으로 향했다. 우리는 4번째 줄 중앙에 앉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는 1시간 내내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조용하게 집중해서 첼로 수업을 잘 듣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신기했다. 기특하고 대견해 보였다. 아이는 엄마랑 유튜브로만 보던 아저씨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 듯 카퓌송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첼로 악기에서 나는 소리가 신기한지 귀담아듣고 있었다.


30일 두 번째 수업은 Lisa Strauss라는 23세의 프랑스 학생이었다. 그녀는 16세에 파리 고등음악원에 입학했으며, Michel Strauss의 사사를 받고 있다. 성이 같은 것으로 보아, 그녀의 아버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음악가 집안 출생이며, 어머니는 피아노, 아버지는 첼로를 전공하셨다고 나왔다. 둘의 관계를 확실하게 나타낸 기사는 아직 찾지 못했다. 아마도 부녀 관계가 맞지 않을까 싶다. Lisa Strauss는 양팔에 커다란 문신을 했다. 전반적으로 색깔이 확실하고, 강한 성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리까지 틀어 올린 포니테일 헤어 스타일, 빨간 립스틱, 눈꼬리가 눈썹까지 닿을 정도로 치켜 세워 올린 검정 아이라인, 타투를 보여주려는 듯 어깨가 다 드러나는 소매 없는 딱 붙는 상의 등... 아이는 그런 강렬한 느낌을 풍기는 누나의 첼로 연주를 유심히 보았다.


(좌) Lisa Strauss 의 수업 현장 (중) 30일 저녁 연주회 티켓 (우) 너무 친절하고 멋진 세계적인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과 함께 사진 찍는 모습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카퓌송은 관객을 향해,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두 번째 시간은 조금 무겁고 어두운 곡을 했네요. 이따 저녁에 연주회가 있으니, 오실 수 있는 분은 오세요."라며 첼로를 들고 무대 뒤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 "우진, 아 유 레디?"

아이: "오케이, 렛츠고"

나는 무대 밑에서 기다리며 그를 향해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봤는지, 그는 나를 한참을 보면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나에게 다가오면서 그는 내게 "봉쥬!"라며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순간 너무 떨렸다. 연습한 대로 말해보기로 했다.

 

나:"실례해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는 활짝 웃으면서 내게 귀를 기울인다.

나: "당신의 열렬한 팬이에요."

카퓌송: "고마워요!"


카퓌송은 갑자기 주먹을 쥐면서 아이에게 주먹으로 인사를 청했다.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쭈뼛댔다. 주먹을 내밀더니 둘은 같이 주먹치기 인사를   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다음에  말을 잊어버리고, 바로 "사진   같이 찍을  있을까요?"라고 어색하게 말했다. 카퓌송은 "당연하죠! 이리로 오세요" 하며 무대 위에서 내려와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안내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친히 자신을 마스크를 박력있게 벗어제끼는 또한번의 스윗함이란!


나는 떨려서 사랑의 찬가 얘기도 잊어버리고, 그냥 사진기를 옆에 있던 직원에게 들이밀며,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사이  할머니가 카퓌송에게 다가와서 선물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둘은 아는 사이인지 꽤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 아이는 곁에 서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둘의 대화가 끝났고, 카퓌송은 "이쪽으로 오세요!" 하며 사진을 함께 찍었다. 나와 아이와 셋이서 한번, 아이와 카퓌송과  둘이서  .


나는 '고맙습니다'라고만 연신 말하고 그도 고맙다고 말하면서 헤어졌다. 준비한 멘트를 말하고 싶어도 내 뒤에 또 다른 팬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냥 황급히 자리를 떴다. 왠지 더 오래 있으면 카퓌송도 피곤할 것 같아서. 2시간 연속으로 수업을 이어나갔고, 오늘 저녁에는 연주회도 있으니, 그의 컨디션을 위해 말을 많이 시키면 안 될 것 같았다. 애써 이렇게 합리화를 하며 연주회장을 빠져나갔다.


계속 생각이 났다. 왜 그 말을 못 했을까.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 연주가 너무 좋다고, 매일 본다고, 사랑의 찬가 연주가 너무 좋다고... 그러는 동시에 자기 합리화를 또 했다. 코로나 19가 심각한데, 일반인과 말을 섞는 것은 그도 불편할 수 있어. 아무리 마스크를 썼어도 감염될까 봐 걱정될 거야. 말을 길게 안 하길 잘했어라며... 하지만 그 후로도 말을 조금 더 섞어볼걸하는 아쉬움이 계속 들었다.


30일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 7까지, 6명의 학생들의 연주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나는 연주회에 가기 위해 티켓까지 받은 상태였다. 회원은 공짜 티켓이 나온다. 원래는 혼자 가려고 했는데, 첼로 수업을 본 아이는 갑자기 나와 함께 연주회에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가기로 했는데, 오후에 잠깐 파리 시내를 다녀오느라 5시 즈음에 이미 둘 다 몸이 피곤해져서 결국 가지 못했다.


(좌) 팜플렛을 봤다가 수업 현장을 봤다 하며 첼로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 (중) 30일 프로그램 일정 (우) 30일 연주회 티켓, 그 뒤로 루이비통 재단이 보인다


작년 7월, 우연히 티브이를 통해 그의 연주 모습을 본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 그를 가까에서 보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간절히 열망하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날 밤 아이와 나는 침대에 누워서 함께 찍은 사진을 봤다.


나: "우진아, 오늘 첼로 보러 가서 좋았어?"

아이: "응, 좋았어."

나: "엄마는 너무 놀랬잖아. 네가 1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첼로를 유심히 듣는 모습을 보고 놀랬어"

아이: "엄마, 다음에 또 가자. 그때는 맨 앞줄 가운데 앉자. 그리고 엄마가 오늘 못했던 말 그때 해."

나: "아... 그럴까?"



https://youtu.be/x257qGy6mH8

내가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작년 프랑스 대혁명일 기념 파리 콘서트 연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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