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출혈이 생길 수 있다는 것과 내일 죽는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주식 시장에는 예측이 넘쳐납니다. "올해 코스피 3,500 간다", "하반기 대폭락 온다", "이 종목 연말까지 두 배 간다". 전문가도, 유튜버도, 커뮤니티도 저마다 확신에 찬 예측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예측들은 정말 예측입니까, 아니면 그럴듯하게 포장된 추측입니까?
체중이 많이 나가고 혈압도 높고 당뇨 수치도 높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사람의 건강 상태는 분명히 위험합니다. 의사는 여러 가지 나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뇌출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심근경색 위험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경고는 의학적으로 충분히 근거 있는 예측입니다.
그런데 만약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 "당신은 내일 오전 11시에 뇌출혈로 쓰러질 겁니다."
이것은 예측이 아닙니다. 사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아무리 정밀한 검사도 그 시점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위험한 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문제가 터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 방향은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점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주식 시장에서도 의사와 같은 수준의 판단은 가능합니다.
이 기업은 부채가 너무 많고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은 과도하게 고평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섹터는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분석은 근거 있는 판단입니다. 건강한 기업과 부실한 기업을 구분하는 것, 시장의 과열과 침체를 진단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 "이 종목은 올해 12월까지 두 배 오릅니다."
▶ "코스피는 올 하반기에 반드시 폭락합니다."
▶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이 기회는 영원히 없습니다."
이것은 분석이 아닙니다. 시점을 특정하는 순간 그것은 근거 없는 추측이 됩니다.
방향은 어느 정도 분석이 가능한데 시점은 왜 예측이 불가능할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시장은 수억 명의 판단이 동시에 충돌하는 곳입니다
주가는 단 한 명의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전 세계 수억 명의 투자자들이 동시에 매수와 매도 결정을 내리는 복잡계입니다. 이 복잡계에서 특정 시점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내일 서울 어느 골목에서 교통사고가 날지를 예측하는 것만큼 불가능합니다.
▶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항상 존재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어떤 분석가도 이 사건들의 발생 시점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시장의 방향과 시점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앞서 다룬 "모든 예측은 가설이다"와 연결됩니다. 아무리 정교한 가설도 블랙스완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 시장은 예측 자체에 반응합니다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예측을 믿으면 그 예측이 시장에 반영되어버립니다. "하반기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퍼지면 사람들이 미리 매수하면서 상반기에 이미 오릅니다. 예측이 시장을 바꾸고, 바뀐 시장이 예측을 무효로 만드는 구조입니다. 앞서 다룬 케인스의 미인대회 이론과 연결됩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듯이, 투자자도 분명히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 기업의 건강 상태는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의 추세, 부채 수준, 경쟁 우위, 사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것은 시점 예측이 아니라 체질 분석입니다.
● 시장의 전반적인 과열과 침체 수준은 가늠할 수 있습니다. PER, PBR 같은 밸류에이션 지표가 역사적 평균과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것은 "지금 비싼가 싼가"에 대한 판단이지 "언제 오르내릴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아닙니다.
● 장기적인 방향성은 논할 수 있습니다. 10년, 20년의 시간을 놓고 보면 경제는 성장하고 우량 기업은 가치를 키워왔습니다. 이 장기 방향성에 대한 신뢰는 근거 있는 판단입니다.
★ 예측 가능한 것은 방향과 체질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것은 시점과 폭입니다.
앞서 다룬 더닝 크루거 효과를 기억하시나요? 확신이 강할수록 오히려 우매함의 봉우리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점 예측에서 이것이 특히 강하게 작동합니다.
"올해 반드시 폭락한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시장이 오르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직 폭락 전 마지막 상승이다"로 해석합니다. 시장이 내리면? "내가 맞았다"고 확신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자신의 예측이 맞다고 해석하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앞서 다룬 확증 편향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앞서 다룬 불안할수록 강한 어조에 끌린다는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시점을 특정하는 강한 예측은 불안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곧 폭락한다"는 공포나 "지금 안 사면 늦는다"는 긴박감은 모두 시점 예측을 이용한 심리 자극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내일 죽는다"고 말하는 대신 "지금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하듯이, 투자자도 시점 예측 대신 체질 분석에 집중해야 합니다.
▶ 이 기업이 5년 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언제 주가가 오를 것인가를 묻지 않습니다.
▶ 지금 시장이 과열인지 침체인지를 판단합니다. 언제 반등하거나 하락할 것인지를 예측하려 하지 않습니다.
▶ 내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어떤 시나리오가 언제 펼쳐질지를 예측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확신에 찬 시점 예측을 제시할 때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 "그렇다면 당신은 그 예측에 근거해서 실제로 어떤 포지션을 취했습니까?"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은 예측은 예측이 아닙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확신은 사기에 가깝습니다.
체중, 혈압, 혈당 수치가 높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내일 죽는다고 특정할 수는 없듯이, 주식 시장에서도 방향과 체질은 분석할 수 있지만 시점과 폭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업의 건강 상태와 시장의 전반적인 밸류에이션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언제 주가가 오르내릴지를 특정하는 것은 근거 없는 추측입니다. 확신에 찬 시점 예측은 분석이 아니라 심리 자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점 예측 능력이 아니라 기업의 체질을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불확실한 시점을 견디는 심리적 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