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편의 vs. 사유재산권: 화장실 무료 개방 논쟁
9년 전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공공장소에서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했던 내게, 몇 유로를 지불해야만 문이 열리는 시스템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많은 상가 화장실이 자물쇠로 잠겨 있거나 비밀번호를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관리 비용과 이용 질서를 이유로 점점 닫혀가는 화장실의 문을 보며,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화장실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공적인 시설이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이용 방식과 개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스타벅스가 미국에서 화장실 개방 정책을 철회하며, 다시 한번 공공성과 사유재산 보호 사이의 갈등이 부각되었다. 화장실이라는 작은 공간을 둘러싸고 우리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스타벅스는 2018년 인종차별 논란 이후 모든 고객에게 화장실을 개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최근 매출 부진과 관리 부담 등을 이유로 다시 구매 고객에게만 개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매출 회복을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편에서는 "공공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사유재산을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 맞선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 개방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주유소 화장실은 법적으로 개방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주유업계는 "사유재산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시민들은 "기본적인 편의시설 제공"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화장실 문을 여느냐 닫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유지·관리 비용과 책임까지 포함된 복합적인 문제다.
화장실 문제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인권과 존엄성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3%가 적절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엔이 ‘세계 화장실의 날’(11월 19일)을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위생시설 부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다. 인도에서는 여성들이 안전한 화장실이 없어 하루 종일 용변을 참아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기본적인 인권 침해 요소로 작용한다.
젠더 문제 또한 화장실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의 대상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2016년 ‘화장실법’을 제정해 출생증명서상의 성별에 따라 공공장소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을 중심으로 성중립 화장실인 ‘모두의 화장실’이 도입되고 있지만, 여전히 반대 의견이 많다. 서울 서초동 공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력 사건 이후, 공용 화장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도 현실이다.
정치적 갈등 또한 화장실을 중심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된 날, 여의도의 한 호텔은 집회 참석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화장실 이용 불가’ 안내문을 내걸었다. 공중화장실법에 따르면 공공 화장실과 개방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개방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호텔 측에 항의하며 온라인에서 ‘별점 테러’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화장실 개방 문제는 ‘공공의 이익’과 ‘사유재산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의 충돌로 귀결된다.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화장실 개방을 확대하자는 주장과, 사유재산권 보호 및 관리 부담을 이유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현재 서울의 개방 화장실 중 민간이 운영하는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공공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민간 사업자가 개방을 꺼리는 이유는 유지·관리의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화장실을 폐쇄하면 시민 불편과 불만이 커지고, 개방하면 관리와 위생 문제가 뒤따르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산 부족으로 화장실이 폐쇄되어 직원들이 불편을 겪는 상황은 공공시설 운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이나 단체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오히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더 많은 개방 화장실을 운영하고, 민간 사업자들에게는 일정 부분 지원책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공공성과 경제성, 인권과 안전이 얽힌 복잡한 사회적 과제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화장실이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공간이라는 점이다.
어느 사회든 ‘뒷간 인심’이 넉넉한 곳이 더 살기 좋은 곳일 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개방 여부가 아니라, 모두가 존중받으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화장실 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공공성과 개인 권리의 균형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