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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삼성장학회 송년회 인사말

2025년 삼성장학회 졸업생 송년회 인사말

by 김용년

2025년 삼성장학회 졸업생 송년회 인사말


겨울의 한복판, 서울 강남 라까사호텔에서 열린 2025년 삼성장학회 졸업생 송년모임에 다녀왔습니다.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졸업생들의 얼굴을 보니 참으로 든든했습니다. 각자의 치열한 현장에서 부딪히고, 견디고, 마침내 성장해 온 흔적이 그들의 단단한 표정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그 건강한 얼굴들을 마주하는 순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습니다.


"올해도 모두 정말 잘 살아냈구나."


바쁜 연말 일정 속에서도 귀한 시간을 내어 달려와 준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맙게 다가왔습니다. 오랫동안 장학사업을 총괄해 왔던 사람으로서, 올 한 해 졸업생들이 보여준 도전을 지켜보는 것은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누군가는 거친 현장을 누비고, 또 누군가는 창업이라는 거친 바다로 뛰어들어 한국 사회의 내일을 조용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성장이 곧 이 나라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낍니다.


나이 드는 것, 마음의 문이 넓어지는 과정


저 역시 어느덧 예순을 넘기며,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자주 실감합니다. 젊은 날 무심히 넘기던 몸의 작은 신호들이 이제는 조금 더 느껴지고, 마음은 오히려 더 연약해져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곤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단순히 체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깊어지고 감정이 더 섬세해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엔 한국의 시니어들이 느끼는 외로움, 역할 상실감, 존재의 흔들림을 머리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제 몸에 세월이 새겨지니, 그 감정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아, 미래의 나도 저 마음을 겪겠구나' 하는 깊은 공감이 스며들었고, 비로소 어르신들의 하루와 시선이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문득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먼저 떠난 형님이 떠오릅니다. 당시엔 너무나 큰 슬픔 앞에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아, 그런 제 모습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었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이가 드니, 이제는 길가에 핀 꽃 하나, 스치는 바람 한 점에도 눈물이 흐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변화를 찬찬히 돌아보니, 나이 든다는 건 단지 약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이 더 넓어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인의 슬픔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작은 기쁨을 더 조용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과정 말입니다.


기술의 시대, 결국 사람이 해야 할 일


요즘 우리는 AI와 로봇이 세상을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는 이미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고, 사람의 손길이 닿던 많은 영역이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강해질수록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진실이 있습니다. 기술은 압도적인 편리를 제공하지만, 사람의 시린 마음을 지켜주고 어루만지는 일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고유의 감정, 서로의 취약함을 보듬고 마음을 살피는 일은 그 어떤 첨단 기계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입니다. OECD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뼈아픈 현실 속에서, 매년 약 5천 명의 어르신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일자리와 역할의 상실, 깊어지는 고립감, 그리고 건강 문제까지. 지금 우리 시대의 시니어들이 마주한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것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머지않아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피할 수 없는 미래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기회, 따뜻한 기술을 기다리며


그런 절박함으로 올해 저는 직접 어르신 대상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습니다. 영상을 만들며 만난 수많은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는 깊은 외로움과 한숨,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마음의 상처가 깊게 패어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눈을 맞추며 확신했습니다. 시니어 문제 해결은 다음 세대로 미룰 과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는 것을요.


그렇기에 저는 우리 졸업생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가장 큰 기회와 혁신 중 하나는 바로 '시니어 산업'에 있다고요. 복지, 교육, 주거, 건강관리뿐만 아니라 AI와 최첨단 기술 영역까지, 모든 분야에서 시니어를 위한 따뜻한 혁신이 필요합니다.


지금껏 기술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정작 그 기술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어르신들의 삶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의 빛나는 도전이 한국 사회의 노년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구원하는 새로운 가치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맺음말


나이 들어 보니, 건강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자동차도 제때 닦고 조이고 기름 치지 않으면 금방 고장이 나듯, 우리 몸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상에 쫓기더라도 건강만큼은 꼭 챙기시길,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잊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


라까사호텔에서 함께했던 그날 저녁의 온기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격려하고, 치열했던 한 해를 돌아보고, 다시 희망찬 내일을 준비하던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도 그날의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용년 작가

(前 삼성이건희장학재단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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