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96%에 이르는 높은 요격률을 기록하며 세계 방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국산 지대공미사일 ‘천궁-2’. 이 무기체계의 성공 뒤에는 예상 밖의 역사적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K-방산을 떠받치는 기술적 토대는 역설적이게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그리고 차관을 무기로 돌려받은 이른바 ‘불곰사업’에서 비롯됐다.
1991년 노태우 정부는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추진하며 소련에 3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흔히 이를 두고 “당시 국가 예산의 4분의 1”이라고 말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1990년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130억 달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등 냉전 해체기의 외교적 기회를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상당한 전략적 판단이 담긴 결정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소련이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극심한 경제난에 빠진 러시아는 차관을 현금으로 상환할 수 없었고, 결국 탱크와 장갑차, 지대공미사일 등 자국이 보유한 무기체계로 채무를 대신 갚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불곰사업’이다.
당시만 해도 이 사업은 다소 궁여지책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 방위산업의 기술적 도약을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무기를 수출할 때 핵심 기술을 철저히 봉인하는 ‘블랙박스 정책’을 유지한다. 반면 러시아는 체제 전환의 혼란 속에서 경제가 사실상 붕괴 직전까지 내몰려 있었고, 기술 이전을 세밀하게 통제할 여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 틈에서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무기체계를 비교적 폭넓게 분석하고 분해하며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었다. 특히 오늘날 K-방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궁-2’는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한 러시아 S-300 계열 지대공미사일 기술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중요한 밑거름으로 삼아 발전한 체계로 평가된다.
물론 한국은 단순한 모방에 머물지 않았다. 러시아 무기체계에서 확보한 기술적 통찰에, 그동안 축적해온 미국식 무기체계 운용 경험과 체계통합 역량을 결합했다. 말하자면 냉전기의 두 축이었던 미국과 러시아의 장점을 한국식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그 결과 과거 차관 회수 과정에서 들어온 러시아 군사기술은 오늘날 K-방산의 구조적 DNA를 형성하는 자산으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냉전 해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과 30억 달러 차관이라는 대담한 선택은 당시에는 불확실성과 부담을 안긴 결정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선택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천궁-2’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한때는 위기 수습의 산물로 여겨졌던 불곰사업이 오늘의 한국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역사는 실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