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옷에 피 칠갑을 하고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다리를 휘청거렸다.
“니... 니 무슨 일이고? 누구한테 맞았나? 싸웠나? 이기 뭔 일이고!” 엄마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리며 내 등짝을 내리쳤다.
“공부하라고 학교 보냈지! 누가 쌈박질 하라고 보냈드나! 당장 옷부터 벗어라!”
“옷 안 벗을끼다.”
“뭐라꼬?”
“그냥 이래 입고 있을끼다.”
“야가 미친나! 니 진짜 와이라노! 당장 벗고 일단 씻어라. 씻고 나서 엄마랑 얘기 좀 하자.”
“싫다! 그냥 이래 입고 있을끼다! 다들 내보고 빨갱이라 칸다 아이가! 빨갱이니까 이래 시뻘거이 입고 댕기면 얼마나 잘 어울리겠노! 나는 인자 맨날 이래 입고 댕길끼다!”
“이기 진짜 미친나! 빨갱이는 니가 와 빨갱이고! 누가 어떤 자슥들이 그 딴말 하드노! 니가 와 빨갱이고!” 엄마는 피 묻은 내 옷들을 강제로 벗기며 소리쳤고, 나는 4학년 때 그가 떠오르며 배가 아팠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엄마에게 갔다.
“엄마... 내 학교 안댕기면 진짜 빨갱이 되겠나?”
“석아... 니가 왜 빨갱이고. 니 진짜 와그라노. 엄마는 니 말하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사람들이랑 다르게 살면 다 빨갱이라칸다 아이가. 아들 다 학교 댕기는데, 내만 안 댕기면 빨갱이 되는 거 아인가 싶어가...”
“학교는 와 안가고 싶은데?”
“그냥 싫다.”
“누가 니 괴롭히드나?”
“괴롭히고 말고 그냥 싫다.”
“말을 해야 엄마가 알지.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끼니까 엄마한테만 말해봐라. 무슨 일이고.” 나의 뽀빠이 엄마가 떠올랐다. 나를 지켜주기 위해 1990년 그에게 홀로 간 엄마가 떠올랐고, 그에게 다녀온 후,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이 함께 떠올랐다.
“아이다 엄마야. 나는 인자 학교 그만 댕길란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학교 교무회의에서 나의 퇴학이 결정되었다. 주전자로 맞은 3학년 주장은 광대와 코뼈가 골절되어, 한참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엄마와 아버지는 주장의 부모에게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한 끝에, 나의 소년원행 대신 퇴학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엄마 우리 이사 가면 안 되나?”
“이사는 와? 학교 못 가고 빈둥거리고 있으니 이제사 부끄러운지는 알긋나? 그래도 버티라. 니가 싼 똥 이마이 치워주면 됐지. 엄마랑 아빠는 더 이상은 안된다. 가게도 인자 자리 잡을라 카는데 이사를 우째가노! 기왕지사 이래 된 거 내일부터 가게 나와가 엄마 아빠나 도와라.”
중학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은 시장에 생선가게를 열었다. 매일 새벽마다 아버지가 직접 포항에 있는 죽도시장까지 가서 싱싱한 생선을 공수해 와 가게는 빠르게 손님을 끌어모았다.
“내가 거서 할 일이 뭐있노...”
“집에서 빈둥거리미 시간만 죽이지 말고 파리라도 쫓아라!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방바닥구신맨치로 빈둥~빈둥~ 검정고시 준비라도 하든가! 초등학교 졸업으로 끝낼끼가!”
“공부할끼다...”
“말로만 카지말고 행동으로 보이든가! 엄마 아빠 등골 빼물라고 작정한기가! 두말 할거 없이 내일부터 가게로 나온나! 와가 공부를 하던 파리를 잡던 니 할 일은 내가 다 만들어줄끼니까네. 문디자슥! 니가 뭐 죄짓나! 와 방구석에 숨어가 빌빌거리고 있노! 나는 니 이래 안키웠데이. 니가 잘못한거는 학교 관두는걸로 끝난기고, 인자 앞으로 살 길을 생각해야제. 하루종일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다고 뭐가 나오나! 나는 니 하나도 안부끄럽다. 나는 우리 아들이...” 나의 뽀빠이가 결국 눈물을 보였고, 나는 가게에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