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폭력과 맞닿아 있는 삶.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삶은 계속 그렇게 흘러갔다. 훈련소 곳곳에 붙어있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말을 생각하며 나도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삶에서 폭력을 끊어낼 수 없다면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계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제대 후 2년간 고시원에 처박혀 준비해서 겨우 경찰이 될 수 있었다.
“성함이 뭡니까?”
“내가 와 여기서 이름을 말해야 되는데!”
“성함이 뭡니까?”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아까도 말했잖아. 저 새끼가 우리 집 담벼락에서 담배를 빡빡 피길래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했다고!”
“그게 뭔데요?”
“뭐?”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이 뭐냐고요.”
“그걸 몰라서 묻는기가! 하참! 뭐 이런 경찰이 다있노! 아가 잘못했으면 당연히 뭐라카는기 어른 아이가!”
“저 아이가 뭐를 잘못했죠?”
“보소! 지금 내랑 말장난 하는기가? 자가 우리 집 담벼락에서 담배를 폈다고!”
“그러니까요. 담배를 폈는데 그게 어르신한테 무슨 피해를 입혔습니까?”
“와~ 여봐라~ 보소! 여 다른 갱찰관 좀 오이소. 내 여랑 말이 안 통한다. 아고 답답아래이. 뭐어? 무슨 피해를 줬냐고? 저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담배를 피는기 잘했단 말이가 지금?”
“담배를 핀 행동을 잘했다는 게 아니고요. 저 아이가 담배를 폈는데 그게 어르신께 무슨 피해를 줬냐고요. 담배를 핀게 맞을만한 행동인가요?”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그래야 정신 단디 차리고 담부터 그런 행동을 안 하지! 봐라! 내가 여서 초등학교 선생질을 40년 넘게 했어! 그동안 내가 갈킨 아들이 국회의원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어! 그래 내가 다 갈킸어!”
“그래서 그 국회의원 되고, 변호사 된 제자들이 어르신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던가요?”
“뭐!? 선생은 그런 걸 바라고 하는기 아이야! 근데 경찰양반은 아까부터 왜 그렇게 삐딱하이 말하는기고? 어!”
“됐고 어르신 성함이 뭡니까?”
“이!이!이! 여도 빨갱이 같은 새끼가 또 있네. 뭐어? 내 이름이 뭐냐고! 이름? 하 참내. 내 이름은 정태식이다! 와! 여 높은 사람 없는교. 좀 나와보소! 이래이래 직원교육이 안 돼 가 내 피 같은 세금으로 월급 받아가면서 이래 일한단 말이가! 좀 나와바라 언능!”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그의 목소리를 그 이름을 직접 들으니 다시 복통이 밀려왔다.
“어르신 일단 진정하시고, 김경사 여기 차 식었다. 따뜻한 차 한 잔 새로 드리고 어르신 자극하지 말고 차근하이 이야기 해봐라. 여 어르신도 억울한 면이 있다아이가.” 소장이 그를 달래며 이야기했다.
“뭐가 억울한데요??”
“뭐?” 그와 소장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뭐가 억울하냐고요. 지금 저 학생 때린 가해자로 지구대 오신 거 아닙니까. 폭행 피해자에 의한 신고로 오셨고, 폭행한거 인정하셨는데 뭐가 억울하냐고요.”
“뭐! 내가 도대체 몇 번 이야기하노! 저 빨갱이 같은 새끼가!”
“그 빨갱이가 대체 뭐냐고! 당신이 말하는 그 빨갱이가 뭐냐고 도대체! 이제 한 번 말해보소! 씨발 그 빨갱이라는게 도대체 뭔지. 말해보라고!”
“김경사님 왜 이러십니까”
“김경사 왜 이러노.” 소장과 동료들이 달려와 내 주위를 에워쌌다.
“저!저!저! 저거는 와 저라노! 세상 말세다 말세. 오래 살다보이 별 희한한 꼴을 다 보네. 쯧쯧쯧쯧쯧. 빨갱이가 뭐냐고? 저 아새끼나 니처럼 나라 망하게 하는 인간들이 다 빨갱이다! 우리가 힘들게 고생해가 겨우 묵고 살만하게 만든 이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드는 너거같은 인간말종이 다 빨갱이다 이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