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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깨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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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Sep 05. 2021

가을

내 마른 낙엽 같은 영성은 젖어버린 거야

유일히 남은 불붙음-가능성, 간단히 재로 될

방법은 이제 없어진 거고


모조리 다 썩어버리지는 못해

시간과 공간 잡아먹으며 정히 분해되길

기대해 아무에게나 기대지 못하고


나무는 따라가기 벅차 잊었던 거야

드러내 보이기야 했지 추스르는 법 따윌

성심껏 일러줄 이유 그저 차갑기만 했고


둥근 모서릴 찾아, 틈으로 온몸 쑤시어도

비끼어 다가가질 못하고 그렇다고

미안해 사과는 우습게 되어버렸으니


공허히 샘솟는 게 아니야


귀와 입, 입과 항문, 비켜난 별같은 존재와

이래저래 신과 같은 존재, 나무같은 잎사귀와

그저 아무것도 아닌 땅으로 되길 바라는 곰팡이


산성토양에 선순환이 어디 있어 악화일로를 걷는 거야


나무는 낙엽을 내뿜지만, 낙엽이 나무에게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거니까. 그냥 닳아가는 거야. 닳아빠져 먼지가 되는 거야. 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물리쳐지는 거야. 고리로부터, 고리라 부를 수 있었던 어떤 약속으로부터. 살아만 간다면, 이걸 삶이라 할 수 있겠냐고 묻는 삶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이 질문으로부터. 이제 문제로 된 축복인 이 삶으로부터. 하지 않아도 될 변명만 주절주절 주절. 난 날 위로하였을 뿐. 내 잘못을 용서하지 않았을 뿐. 나의 잘못은 오직 잘못되었을 뿐. 그뿐. 그뿐. 그분에게는 그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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