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해결해야 할 문제(Pain Point)가 무엇인가
기술은 언제나 사람보다 빠르다. 그리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언제나 인간 쪽이다. AI의 시대, 혁신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먼저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경쟁한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따뜻하지 않다.
“대단하긴 한데, 꼭 필요하진 않아.”
이 짧은 한마디가 수많은 신기술 프로젝트의 종말을 예고한다. 문제는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기술이 등장한 맥락의 빈자리다.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왜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내 일상 어디에 닿는지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건 여전히 혁신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혁신을 멈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정리해 보자.
최근 LG유플러스가 선보인 AI 통화 앱 ‘익시오(ixio)’ 광고는 기술보다 ‘맥락’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영상의 시작은 어떤 러닝족이 숨이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있다. 이어폰을 낀 채, 오롯이 리듬과 호흡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매니저의 이름이 화면에 뜨고, 그는 자연스럽게 통화를 연결한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집중의 흐름이 깨지기 시작한다.
“행사는 화요일에서 목요일로 바뀌었고, 시간은 7시야. 까먹으면 안 돼, 믿는다.”
전화 너머의 매니저는 빠른 속도로 스케줄 변경 사항을 전달한다. 배우는 “알았어”라고 대답하지만, 러닝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손에 들린 메모장도, 입력할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정보를 놓치면 곤란해질 것이라는 것을. 운동이라는 몰입의 순간과 일이라는 현실의 순간이 충돌하면서, ‘기억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불안하게 맴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AI 통화 앱 ‘익시오’(ixio)다.
그는 숨을 고르며 짧게 말한다. “익시오, 매니저 형이 얘기한 스케줄 정리해 줘.” AI는 즉시 통화 내용을 분석해 중요한 정보를 텍스트로 정리하고, 화면에는 “목요일 7시 행사”라는 깔끔한 일정이 남는다.
광고는 그 과정을 보여주며 마지막에 말한다. “AI 통화, 익시오. 당신의 기억을 대신하는 통화 비서.”
이 영상은 인공지능 기술의 성능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불편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달리고 있는 사람, 즉시 기록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정보.
익시오는 이 간극을 메운다.
AI가 인간의 필요를 예측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개입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맥락 설계(context design)’의 본질이다.
맥락 설계란 기술이 등장해야 할 ‘상황’을 먼저 정의하는 일이다. AI 비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순간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AI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인간의 서사 안에 기술을 위치시킨 것이다.
즉, 기술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맥락 속에 조연으로 배치했다. 이 방식은 사용자로 하여금 ‘AI가 내 삶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AI가 내 곁에서 함께 움직이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점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AI 서비스가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맥락의 결핍이다.
서비스가 등장하는 타이밍, 사용자의 상황, 그리고 그 기술이 어떤 불편을 덜어주는가에 대한 설계가 빠지면,
아무리 완벽한 알고리즘이라도 ‘불필요한 혁신’으로 받아들여진다.
고객은 기능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이 ‘왜 지금 내 앞에 있어야 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서비스 기획자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AI가 언제, 누구의 어떤 순간에 필요한가”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기술은 낯선 혁신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유용성으로 전환된다.
기술의 세부 기능을 한 줄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아, 저런 순간이라면 나도 저 기능이 필요하겠다”는 공감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맥락이 만든 혁신’이다.
혁신이란 세상에 없던 기술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미 존재하던 불편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익시오의 사례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일깨워준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맥락을 이해할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뀐다.
최근 서비스디자인과 행동경제학, 그리고 AI 경험(AX) 연구들은 ‘맥락이 없는 기술은 인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들은 AI가 인간의 심리적·물리적 리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설계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AI의 개입 지점을 명확히 하라.
AI는 서비스 전 과정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어디서 개입해야 하는가’를 좁히는 일이 더 중요하다.
연구자 마르코스와 마케도는 인간과 AI가 함께 작동하는 순간을 “Hybrid Service Encounter”라고 정의하며, 사용자가 “AI가 왜 여기서 나왔는가”를 즉시 이해할 수 있을 때 긍정적인 경험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익시오 광고 사례를 보면 사용자가 손을 쓸 수 없는 찰나의 순간, 기억과 행동이 분리되는 장면에서 AI가 자연스럽게 개입했다. AI의 개입 시점이 명확했기에, 기술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안도감을 줬다.
둘째, 경험을 ‘예상–실현–반영’의 세 단계로 설계하라.
AI 서비스 경험은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예상(anticipation) → 실현(realization) → 반영(reflection)’의 세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상 단계’다.
사용자는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부터 이미 기대를 만든다. 따라서 개발자는 기능이 아니라 기대의 맥락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광고, 인터페이스, 소개 문구가 “이 기술은 왜 당신에게 필요한가”를 명확히 전달하면 고객의 심리적 저항은 크게 줄어든다.
익시오 광고가 기술을 설명하지 않고 인간의 상황을 보여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대의 맥락’을 먼저 설계했기 때문에, 고객은 AI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셋째, 문제보다 맥락을 먼저 관찰하라.
서비스디자인 연구자들은 AI 응용 서비스를 만들 때 ‘문제 → 맥락 → 사용자 여정’의 순서를 거꾸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하면, 결국 기술 중심의 기능 설계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맥락에서 출발하면, 아직 정의되지 않은 불편과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익시오의 사례처럼, 고객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순간적 불편을 포착하는 것이 진짜 혁신의 시작이다.
즉, 맥락은 문제를 드러내는 거울이자, 기술이 들어설 자리를 알려주는 지도다. 기술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AI는 더 똑똑해지고, 더 인간의 언어를 닮아갈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기술이 인간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얻는가를 설계하는 일이다.
AI는 계산의 영역에서 완성될 수 있지만, 혁신은 언제나 맥락의 영역에서 완성된다.
좋은 기술이란 기능적으로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리듬을 이해한 기술이다. 결국 기업이 설계해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기술이 사람의 삶 속에서 머무를 맥락이다.
기술이 머무는 순간의 온도, 타이밍, 감정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기술은 인간에게 받아들여진다.
익시오가 보여준 장면은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킨다. 좋은 기술은 스스로를 빛내지 않는다. 그 기술이 머무는 맥락이 빛날 때, 혁신은 비로소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
3편에서는 ‘레거시 기업의 피봇’을 주제로, 기술 변화에 뒤처졌던 대기업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핵심 역량을 재해석하며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었는지를 살펴본다. Fujifilm, 현대자동차, LG전자의 전환 사례를 통해
‘기술보다 빠른 것은 시장, 그러나 시장보다 느린 것은 조직’이라는 역설을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