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명과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기다리며 살아간다.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고,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먼 길 떠난 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우는 마음의 방식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위하여 내딛는 보이지 않는 걸음이며, 스스로를 붙드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기다림이 길게만 느껴졌다. 소풍을 앞둔 밤, 손꼽아 세어보던 달력의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초조한 설렘 속에서 하루는 몇 배로 늘어나 있었고, 원하는 순간은 끝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기다림의 끝에 다다르면, 그 긴 시간이 단숨에 보상받듯 사라졌다. 기다림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음을 알 수 없었다.
사람을 기다릴 때 마음은 더욱 예민해진다.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기다림 속에서 상대는 점점 선명해지고, 그리움은 깊어진다. 설령 오래도록 오지 않아 지치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시간은 분명 마음의 증거가 된다. 기다린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백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언제나 달콤하지 않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려본 사람은 그 쓰라림을 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지쳐가고, 희망은 점차 무겁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기다리는 동안만큼은 여전히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단순히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계절을 기다리는 일 또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의 기척은 더욱 간절해지고, 봄이 찾아오면 여름의 푸르름이 기다려진다. 이렇듯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은 현재를 견디게 하는 희망의 형식이다. 씨앗이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듯, 인간도 기다림 속에서 삶을 키워간다.
기다림은 또 다른 이름의 기도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소식을 기다릴 때,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바람이 흘러간다. 무사히 도착하기를, 건강히 지내기를, 다시 웃으며 만나기를. 말로 하지 않아도 기다림의 시간은 곧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가 된다. 그 기도는 나를 단단히 묶어주고, 동시에 상대를 향한 보이지 않는 다리가 되어 준다.
기다림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시간을 견디는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빠름을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 기다림은 종종 무능이나 게으름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기다림은 인내의 다른 이름이며,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품을 수 있는 여유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언젠가 다가올 것을 믿는 마음은 곧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기다림에는 반드시 끝이 온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오래 기다리던 이를 마침내 만나게 될 때, 그 순간의 환희는 기다림의 길이가 만들어낸 선물이다. 반대로 끝내 오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사람은 이별을 배운다. 기다림이 허망하게 끝날 때조차 그 시간은 헛되지 않다. 견디고 버텨낸 그 기다림이야말로 삶의 강을 건너게 하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을 기다리며, 때로는 스스로의 성장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쌓여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나를 이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기다림이었음을 알게 된다. 조급히 뛰어가려 할 때마다 기다림은 걸음을 붙잡고, 충분히 머물러야만 비로소 보이는 풍경을 보여준다.
기다림은 결국 사랑과 닮아 있다. 사랑은 즉각적인 충족보다, 묵묵히 곁을 지키는 데서 더 깊어진다. 기다림이 없다면 사랑도 쉽게 사라질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두는 일, 그 부재 속에서도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고요한 형태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린다는 것은, 곧 자신을 믿는 일이다. 언젠가 찾아올 순간을 위해 지금의 나를 다잡고, 그때를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사람은 성숙하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비록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기다린 시간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삶을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힘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결코 공허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다짐이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씨앗을 돌보는 일이다. 기다림의 끝에서 무엇을 만나든, 그 길을 지나온 사람은 이미 변해 있다. 기다림은 우리를 더 깊이 있게 만들고, 삶을 더 단단히 지탱한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위하여 오늘도 마음은 조용히 문을 연다. 언젠가 닿을 그 순간을 향해, 지금 이 시간의 기다림을 기꺼이 견디며 살아간다. 기다림이 허무하지 않은 이유는 그 끝에 반드시 ‘나의 삶’이라는 증거가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은 언젠가 또 다른 기다림을 품으며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