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끝까지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CONTENTS]
Prologue
PHASE I 조용히 들여다보기
4/22 월 내과의원 외래진료 & 대한의료영상의학과의원 촬영 (X-ray, CT)
PHASE II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2.5주
4/23 화 신촌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외래진료 & 입원
4/24 수 ~ 5/7 화 신촌세브란스병원 검사 & 응급처치(수술/시술, 정맥주사제, 경구약)
5/8 수 ~ 5/15 수 신촌세브란스병원 확진 & 경구용 표적치료제 개발, 항암 시작
PHASE III 긍정적 마인드와 집중 5.5주
5/16 목 ~ 6/16 일 동국대학교일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입원 & 항암 계속
5/22 수 ~ 6/11 화 동국대학교일산병원 방사능 항암(뇌) 진행 (총 14일간, 방사능종양학과 협진)
암 일상 Tips: Money 알아야 혜택도 받는다
암 일상 Tips: Morphine 통증을 두려워하지 말라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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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만 50세에 느닷없이 찾아 든 암
젊은 만큼 전이도 빠르다
담담한 일상의 8주 보내기
4월은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오트 Tomas Sterns Eliot’는 ‘황무지 The Waste Land’ (1948)에서 이렇게 노래했고, 내게 2019년 4월은 그러했다. 세상 모두가 새로운 시작에 들떠 있을 때 잔인하게도 저물어가는, 게다가 전이까지 예견되는 암4기 선고를 받았다. 만 50세. 젊다면 젊은 나이에 받은 선고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함’이었다. ‘왜 내게’, ‘왜 나만’이란 억울함 대신 당연한 일상사 중 하나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의외의 대범함에 나 자신도 놀랐고 주변 모두가 믿기지 않아 했다. 1년 전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 전의 나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평생 동안 밖에서 찾아 헤매던 원인을 뒤늦게 알게 한 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준비시킨 거였구나’. 어디 누구에게도 자부할 만큼 열심히 살았다. 1남4녀의 맏이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살아남는데 최선을 다하며 치열하게 나 자신을 몰아쳤다. 그러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 컨설팅에 종사하면서 프로페셔널에 엘리트를 자부했지만 언제나 의문은 있었다. 끝내는 이기는 게임을 하는데 왜 항상 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가장 영광스럽고 바라는 대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만큼의 공허함이 밀려왔다. 깊이를 모르는 나락으로 내려앉는 듯한 허무함. 그 원인을 언제나 밖에서 찾았고, 난 언제나 옳았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런 나의 앞길을 막는 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었다. 혹독함의 연속이었고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깨달음. ‘모든 원인은 나였구나’.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태어나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를 지탱해오던 가치관, 옳다고 믿었던 나는 죽었다. 그 혼란 속 진짜 ‘내’가 나에게 하는 말, 원인도 결과도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간 살아온 인생을 처음으로 돌아보게 됐고 눈물과 참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행동하는 일. 일로 개인적으로 만나오던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사죄했고, 뒤늦게 알게 된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그것만이 내가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었으므로. 이어지는 감사의 벅참이 봉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양간 봉사를 시작으로 뒤늦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법과 감사의 의미를 알게 해 준데 대한 뜻을 새기며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반복했다.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이신 자우스님과의 인연도 그렇게 이어졌다. 공부하고 싶어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복지 향상을 원력으로, 불교 미디어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고, 곧장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서 선원에서 운영중인 ‘갤러리까페 까루나’에서 일요봉사를 자원했다. 평소 문화콘텐츠, 특히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걸 계기로 다른 전시회에서 발견한 젊은 작가와 주지스님을 연결해 젊은 세대를 위한 불교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하고, 선원에 계신 헝가리인 비구니 스님과 ‘Language Exchange’를 진행하면서 국제포교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해주십시오’가 아닌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진정한 발원이란 걸 알게 되고 불교를 내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인 종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100기 기본교육을 받고 재적신도로서 ‘성수행 性修行’ (내 안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 행하라는 뜻)이란 법명도 받았다. 동시에 예전부터 관심있던 ‘참선’, 특히 ‘간화선’ 기본 교육을 조계사 선림원 남전스님의 지도로 익히게 되면서 화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건 정말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지난 겨울 조계종이 지향하는 소의경전인 ‘금강경’까지 듣게 되면서 고통으로 점철됐던 그 모든 일련의 힘든 과정들이 1년 후 오늘 이런 결과를 다른 누구 탓도 하지 않고 담담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 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팩트는 팩트로 받아들이고, 일어난 일은 명백히 일어난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것만이 자신을 위해서나 모두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첫 단계이며, 그 시작을 1년 전 불교가 알게 해줬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팩트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J. 토인비의 ‘불교의 ‘화엄사상’은 인간의 사고가 미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말이나, 물리학자인 프리초프 카프라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른 서양 문명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화엄’에서 찾는 행위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불교는 21세기 경쟁이 끝나가는 이 시대 범우주적인 모든 생명의 조화와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이다. 스스로 온전하고 독립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본질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 無相’은 허무주의와는 별개로, 모든 ‘상 相’은 연기법, 즉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는 진리에 의한 유기적인 관계의 총체이자 생명의 통일성과 존엄성을 나타내는 우주 만물의 본질이다. 깨닫음을 얻은 뒤 부처의 첫 설법인 ‘화엄경’은 ‘사람이 곧 부처’라는 ‘인불 人佛’사상을 핵심으로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갑을 관계와 상관없이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중시함으로써 오늘 날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주요이슈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과학과 의술이 발달할수록 이런 불교철학의 가치는 더 빛날 수밖에 없고 그런 진리를 뒤늦게나마 알게 하고 입문하게 해 준 세상에 깊이 감사하며, 그 마음을 되돌려주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단 한 사람이라도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진실함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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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E I 조용히 들여다보기
4/22 월 내과의원 외래진료 & 대한의료영상의학과의원 촬영 (X-ray, CT)
‘어느 날 갑자기’라는 말은 특히 심신의 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내 몸과 마음의 수많은 신호들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알람을 했을텐데 다만 내가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 전 여름 날 길가다 갑자기 어지러웠던 일부터 시작해 편두통, 담 결림 등 증상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무시했던 게 예견된 시작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가장 뒷전으로 내몰린 몸과 마음이 보내는 경고음을 알아들었을 때는 오른쪽 갈비뼈의 통증을 시작으로 담 결린 것처럼 온 몸을 앞뒤로 돌아가며 통증에 시달리다 점점 숨이 차서 걸어다니기 어려워지고 난 후였다. 3월 초에는 결국 지난 1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공양간 봉사까지 그만두게 됐고 그 이후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병원가기 1주일 전부터 등 통증이 극심하고 일어서자마자 숨이 차서 주저앉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개인 내과의원을 찾은 것이 4월22일 월요일.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청진기를 대보시던 선생님께서 오른쪽 폐에서 소리가 나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겨 X-RAY 촬영을 지시하셨고, 담당전문의가 CT 추가 촬영까지 한 결과 ‘암 의심’소견으로 보인다며 가장 빠른 신촌 세브란스 외래진료를 대신 예약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과의원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첫 은인이었다. 그 이후부터 일어난 일들은 내 평생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외래 예약이 검사를 위한 입원 수순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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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E II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2.5주
4/23 화 신촌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외래진료 & 입원
급히 보호자로 도움을 요청한 비로자나국제선원 사무장님 덕분에 무사히 차로 외래 진료 등록을 마치고 사복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내 경우를 Case Study용으로 사용하고자 본인의 동의를 묻는 뜻밖의 상황을 만났다. 건강한 장기를 활용하는게 아닌 이렇게 망가진 장기도 세상에 유용하게 쓸데가 있구나 감사한 마음에 너무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다. 검사를 진행한 다음, 상태 확진 소견 후 유전자 검사까지 포함해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 개발까지가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수순이었다. 물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연명치료 동의서는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었고, 내 주변 누구도 나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힘들어지지 않기를 가장 먼저 바랬으므로 기꺼이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제일 급했던 것은 숨쉬기.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만큼 숨이 찬 건 폐에 찬 물만 빼도 어느 정도는 호전될 것이라는 말에 첫 번째 시술은 흉곽천자(부분마취 후 폐에 찬 물을 초음파로 보면서 등에 바늘을 꽂아 물을 빼내는 시술)가 됐고, 15분 정도 내에 500ml정도 뽑혔다. 그리고, 결과는 시술만 하면 금방 앉은뱅이 걷듯 아프기 전의 나로 돌아가리라는 드라마틱한 기대와는 한참 멀다는 것을, 앞으로의 모든 수술이나 시술, 처치들이 그러리라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순간부터 아프기 전의 나는 이미 없었다. 매 순간 낯선 상황들이 이어지고, 내게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마치 비현실적인 꿈처럼 받아들여졌다. 검사를 위해 병실에 입원하려면 무조건 응급실에서 병실로 올라가야 수월하며 2인실을 거쳐야 5인실이 가능하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밤 사이 마치 정해진 것처럼 곧바로 2인실이 났다는 통보가 왔고, 그렇게 주치의의 ‘암 4기 & 전이 의심’ 소견과 함께 확진을 위한 숨가쁜 ‘금식 & 검사 & 응급수술/시술’의 2주 일정의 날이 밝았다.
4/24 수 ~ 5/7 화 신촌세브란스병원 검사 & 응급처치(수술/시술, 정맥주사제, 경구약)
협진이 시작은 초기 검사 진행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 수술로 이어졌다. 뇌MRI 촬영 후 판독을 의뢰한 호흡기내과 쪽으로 신경외과에서 직접 응급수술 의뢰가 왔다는 소식과 함께, 소뇌쪽 4cm이상 커진 종양은 어쩔 수 없이 외과적 수술로 들어내야 하는 상황이고 옵션은 없었다. 내 첫번째 선택은 ‘No’였다. 내가 입원한 이유는 (1)암인지 여부, (2)암이면 몇 기인지, (3)치료방법은 있는지 3가지 외에는 관심 밖이었고 마지막까지 주변 사람들 힘들이지 않고 깨끗하게 있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단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연명치료는 당연히 거부한 상태였고, 이어지는 응급처치 역시 원치 않았다. 수술하려면 보호자 이전에 본인의 동의가 우선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응급 사안이었으므로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계속해서 3차에 걸친 의료진의 설득 작업이 이어졌다. 내가 수술하겠다고 서명한 건 신경외과 주치의가 병실까지 방문해서 한 말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깔끔하게 마지막을 맞지 못할 수도 있다. 당장 뇌 수술을 안하면 마비가 올 거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추한 모습을 다 보여주다 죽는지도 모르게 갈 수 있다’는 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어느 누구도 나로 인해 힘들어지기를 원치 않는 이상 수술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외과 주치의의 일정 외 응급수술로 당일 급하게 진행해야 할 만큼 다급한 사안이었고, 전신마취로 4~5시간 예상하던 수술은 8시간을 넘겨 새벽에야 끝이 났다. 긴 시간 수술을 견뎌내야 했던 당사자보다 기다린 보호자들이 더 두렵고 힘든 순간이었다. 머리 뒷 부분이 휑했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자리가 아물 때까지 호흡기내과에서 신경외과로 한시적으로 이전했다 옮긴 후 다시 응급이란 명분 하에 금식 & 검사가 계속됐고,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일정에 내가 조금씩 지쳐갈 때쯤, 전이된 기관지 확인 차 목부분 조직검사 시술이 진행됐다. 그 와중에 처음 응급실에서 바늘로 급히 시술했던 폐에 다시 물이 차는 것이 확인됐고, 매번 바늘로 물을 빼는 것보다 아예 물이 그만 차는 게 보일 때까지 관을 삽입하는 게 낫겠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그리고, 주치의 조차 생각 못했던 반전은 마지막 심장 관 시술이었는데, 갑자기 혈압이 200이 넘어가면서 심장이 눌려 물이 찼고, 다른 장기를 피해 굵은 바늘로 찔러 물을 빼는 관을 삽입하는 고난이도 전문 시술이 30여분 넘게 이어졌다. 이미 쇠약할 만큼 약해진 몸이 견딜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병원에서 주는 삼시세끼 밥과 약들, 운동, 그리고 그 모두의 바탕이 되는 환자의 의지 뿐이었다. 목표는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똑바로 걷기였다. 체력이 우선이어서 금식이 끝나자마자 죽 대신 일반식인 밥으로 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했는데 토하기를 3~4번 반복하다 몸이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결국 혼자 힘으로 화장실 가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산책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고 일하면서 사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푸느라 시간 날 때 마다 헬스장 같은 데서 운동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수술]
뇌종양 수술(신경외과)
[시술]
기관지 조직검사
폐(흉곽천자) (바늘 1회(4/23화), 관 1회)(호흡기내과)
심장(관 1회)(심장외과)
5/8 수 ~ 5/15 수 신촌세브란스병원 확진 & 경구용 표적치료제 개발, 항암 시작
드디어 항암 치료 시작! 입원하지 2주 만이었다. 감히 상상조차 못할 속도와 기간으로 주변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 와중에 검사 & 유전자 해독까지 끝나고, 폐암 4기 중에서도 선암(가장 흔한 암 종류) & 뇌, 기관지, 심장 전이’로 확진되며, 그 중 1차 유전자 정보로 표적항암제를 개발 (5/8수)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경구약을 투여하고도 한, 두 달 지나야 조금씩 나타나고, 만약의 경우 경구약이 내게 안 맞을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먹어봐야 안다는 것. 결국 확률 게임이며, 이제부터 모든 것은 환자 본인의 선택의 문제로 그 결과 또한 본인이 직접 책임져야 하고, 원치 않으면 항암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택의 문제. 인생은 어차피 선택의 연속이며, 받을 것은 받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결과가 두려워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은 불교를 알기 전의 내 모습이란 것을 이젠 안다. 의료진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검사 & 확진 & 치료법, 그게 전부이며 그게 맞고 안 맞고는 내 선택의 문제다.외래 치료를 권하는 병원 측에서 마련한 배려는 통증 관리와 경구약 대체였다. 진통을 다스리는 건 암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건 통증 관리라는 느낌이 들 만큼 중요한데,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 패치’가 대표적이다. 3일 간격으로 24시간 목 아래 부분에 모르핀 패치를 붙이고 있으면서 추가 경구진통제(삼시세끼 각1알)로 조절하는데 과용은 내성을 유발하므로 피하는게 좋다. 통증은 2-7-4-9 이런 형태로 진폭이 점점 커지면서 오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진통이 오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게 중요하며, 병이 유발하는 통증일 뿐 항암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므로 가능하면 환자가 관리할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피하는게 최선이다. 단,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므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고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좋다.
일상으로 암이 찾아오고 난 후부터 통증으로 인한 구토, 어지러움, 호흡억제, 가려움증 등 육체적 부작용 외에 찾아오는 또 한 가지는 정서적 변화이다. 병 앞에 스스로 작아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무기력함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 상태와 우울증은 물론 오감 또한 바늘 끝처럼 곤두서고 민감해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근’에 철저히 충실한, 그런 ‘나’를 자신이라고 믿는 상태로 집착하며 통제력을 잃게 된다. 평생 걸려도 만나기 어려운 최고의 수행 경지에 놓여진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감사히 받아들이며 소중히 견디는 불교의 겸손함과 집중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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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E III 긍정적 마인드와 집중 5.5주
5/16 목 ~ 6/16 일 동국대학교일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입원 & 항암 계속
본격적인 항암을 위한 두 번째 입원은 일산 동국대학교 의료원으로, 이 또한 입원 전 비로자나국제선원 자우스님과 입원 후 일산 동국대병원 법사스님의 도움이 컸다. 소속 병실은 혈액종양학과 김도연 교수님을 주치의로, 신촌 세브란스에서의 주치의 항암 소견서, 검사 및 처방(항암제를 포함한 경구약 & 통증관리)를 그대로 가져오고, 더불어 세브란스에서 제외되었던 방사능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일산 동국대병원의 경우 특히 최신 방사능 기계와 의료진를 들여옴으로써 신촌 세브란스에서도 인정할 만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5/22 수 ~ 6/11 화 동국대학교일산병원 방사능 항암(뇌) 진행 (총 14일간, 방사능종양학과 협진)
두번째 입원 후 첫 주말인 5월18일(토) 마치 처음 담으로 여겨 한방파스로 넘어갈 때처럼,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 통증이 느껴졌는데 폐에 다시 물이 차는게 보인다는 소견을 보였고, 5월20일(월) 뇌MRI & X-RAY 촬영때까지도 옆구리 통증은 계속됐다. 한편, 포기했던 방사능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5월20일(월) 방사능종양학과에 협진을 요청했고, 5월21일(화) 방사능종양학과 담당교수님과 사전면담을 진행했다. 총 14회로 15분넘게 진행되며, 뇌에 집중적으로 방사능 치료를 진행할 계획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 얼굴에 직접 표시하는 대신, 얼굴 피부에 최대한 밀착되도록 마스크를 세팅한 후 위치를 고정시키고 그 위에만 방사능을 쬘 예정이며, 뇌를 풀 스캔하는 대신 인지, 기억, 판단 등 주요한 기능을 하는 뇌 부위를 피해가며 암세포만 추적해 쪼일 계획이므로 환자에 맞는 Simulation이 필요하고,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치료 시간이 좀 더 길어지더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5월22일(수) 1일차에서 너무 당황하고 놀란 나머지 중단하기를 요청할 정도로 답답하고 힘들었다. 다들 막연하나마 항암 방사능 치료는 힘들다더라하는 말만 전해듣다가 그게 이런 거구나 싶을만큼 첫 경험은 혹독했다. 1일차 중단 후 심각하게 방사능 치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건 맑은 정신이고, 그걸 관장하는 건 뇌인데 내게 맞든 안 맞든 받아봐야 아는 일이고, 일단 어떤 식으로든 방사능 치료는 받아야 했다. 전신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환자가 제어할 수 있는 건 ‘정신’과 ‘호흡’뿐이다. 호흡은 집중인데..그때 문득 떠오른 건 작년 조계사 선림원 남전스님을 통해 배웠던 참선이 떠올랐다. 결국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또한 호흡을 통해 집중하고, 오랜 시간동안에도 내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 알고 있었고, 5월23일(목) 2일차에서 방사능 치료 내내 처음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참선 방식을 적용해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단전에 힘을 주고 와선하듯 짧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고를 반복하자 갑자기 편안해지면서 어제의 답답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머리 속으로는 화두 들 듯이 ‘코로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고 있다’, ‘ 내 뇌에 흩어져 있는 나쁜 벌레들을 빛이 죽이고 있다’고 반복해서 되뇌이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옆에서 시술하는 의료진들이 참선을 한 번 이라도 경험해 봤다면, 사전면담 때 이런 사항을 미리 환자에게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내게는 효과가 컸고, 그 덕분에 6월11일(화) 14회까지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 마르고 닳도록 내가 강조했던 말이지만 이 경우만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흔치 않다. 인간에게 호흡은 그렇게 중요하고, 맑은 정신은 그 호흡의 집중에서 나온다는 지혜 또한 불교를 통해 내가 얻은 사실이다.
협진/시술: 뇌종양 자체치료 (5/22(수)~6/11(화), 14회) (방사능종양학과)
시술: 폐(흉곽천자) 시술 (바늘 2회 (5/22수, 5/31금), 관 1회(6/13목)
경구약: 신촌세브란스 처방 (경구항암제 1알/식전daily)
동국대학교일산병원 통증관리
(신촌세브란스 처방)
몰핀 패치 15ml/3일, 24hs
경구진통제 각3알, 식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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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일상 Tips: 알아야 혜택도 받는다
환자는 마지막까지 명쾌한 멘탈을 유지해야 한다. 병원이나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인정해야 할 일은 절대 아프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그걸 목표로 해서도 안된다는 것. 약은 현 상황의 유지 내지는 아주 운이 좋다면 기적적으로 호전된다는 확률게임 정도이며, 결국은 환자의 의지와 마인드, 마지막까지 남는 건 정신력 뿐이다.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문제 해결도 빠르다. 암은 전이까지 5년을 싸워야 하는 기나긴 돈과의 싸움이다. 경제적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아보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 받아야 한다.
I 사전예방조치
‘정기건강검진’은 백 번 말해도 아깝지 않다.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이다. 특히 ‘뇌’와 ‘폐’는 가장 나중에 증상이 나타나므로 정기검진을 통한 사전예방이 유일한 해법이다. 별도 검진비가 추가되더라도 건강에는 돈을 아끼지 말 것.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개인 암 보험’을 들어라. 갱신 여부, 지급조건 및 한도, 비보험 적용여부 등을 확인하되, 평소 보험금의 부담을 최소로 줄일 것.
II 사후질병관리
‘정부보조금’을 알아본다. 최근 국민복지차원의 정부 보조금 제도가 의외로 잘 되어 있으므로 환자의 의지에 따라 이 또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산정특례 @건강보험공단: 보험혜택 한정 5년간 암 확진 치료비의 95% 지원
>암환자의료비청구 @보건소: 확진 1년 내 청구시 200만원 한도 지원
>근로장려금 @세무서: 년 1회
‘항암치료’부터는 철저히 환자 본인 선택의 문제이며, 효과 또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의료법 제3의 3조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3년 단위로 병상 수, 진료과목, 의료진, 시설 등을 평가 후 재지정하는 상급종합병원인 ‘3차의료기관’으로 갈수록 항암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커지므로, 항암 단계부터는 굳이 무리해가면서까지 ‘큰 병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검사 & 치료를 위한 입원의 경우, 외래는 1달 이상 소요되지만 1주일 내로 우선순위가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 또한 경제적 부담이 따르므로 다인실이 부담이 적다. 단, 상대적으로 수만원대의 저렴한 비용과 거의 모든 보험에서 보장해 준다는 잇점으로 인해 처음부터 다인실 입원은 불가능하고 상급병실에 있다가 옮기는 식으로 운영하거나 병원에 따라서는 없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참고로 알아둘 것.
>상급종합병원 (보험.비보험 검사/확진/치료법 개발/연명치료-환자본인동의필수)
>종합병원 (항암치료–수술.시술/경구약/방사능, 불교 재단인 동국대학교일산병원의 경우 재적신도 대상 비보험 10% 할인)
>요양시설 (항암치료중단-환자본인동의필수, 호스피스)
참고로, 입원 결정시 본인부담 주요 비용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입원비
(1) 진찰료
(2) 응급관리료 (중환자실)
(3) 입원료 (일반병실)
(4) 식대
(5) *간병인비(환자본인부담, 병원마다 연계된 알선업체가 있고, 부담은 100% 환자본인의 몫이므로 신중하게 결정한다)
2 검사 & 처치비
(1) 진단료 (검사장비)
(2) 처치료 (수술/시술)
3 치료비
(1) 경구약
(2) 주사제
(3) 패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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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일상 Tips: 통증을 두려워하지 말라
확진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어쩌면 통증과 평생 함께 할 운명인 병이 암이다. 그만큼 암에 있어서 통증관리는 환자에게 가장 기본이자 배우자 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다. 현장에서의 대부분의 환자들은 통증 자체를 두려워하며 매달리다 자신의 생을 무의미하게 끝낸다고 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혹자들은 소위 마지막을 앞둔 환자를 위한 배려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의료진과 보호자 측의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호스피스 병동을 마치 마지막 죽으러 가는 것처럼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당사자인 암 환자로서 난 단호히 이런 입장에 반대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환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알고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얀 거짓말은 결코 환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며, 환자로부터 선택할 권리를 뺏지 말아야 한다.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변화 역시 환자가 떠안아야 할 현실이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철저히 환자 자신의 몫이다. 의료진과 보호자의 역할은 환자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고 마지막까지 치료 과정을 어떻게 보낼지 상의하고 차분히 정서적 안정을 찾고 마지막 생을 현명하게 잘 보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 뿐이다. 얼마전 개소식을 마치고 문을 연 동국대학교일산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병동의 경우, 항암을 마치거나 완화가 필요한 환자 자신의 통증관리는 물론 음악, 미술 치유 프로그램 등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돕고 마지막 남은 보호자의 추모의식까지 함께 한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합리주의 철학의 길을 열었던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 존재의 이유를 생각할 줄 아는 능력으로 보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Je pence, donc je suis.’는 제1명제를 남겼고, 오래 전 인상 깊게 본 영화 ‘I want to live.’ 역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살아 숨쉰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다. 환자 입장에서 모두에게 최선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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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2019년 6월, 계절이 바뀌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바뀌고, 사람도 변한다. 일상의 일부일 뿐 그 어떤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들 듯 병 또한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가지 예측 못할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조용히 들여다보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긍정적 마인드와 집중하기,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그게 인생이요, 일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때를 만났을 때 내가 불교를 받아들이듯, 지금의 내 인생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해답 또한 나 자신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시절인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불교언어다. 인간의 할 일은 그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때가 왔을 때 그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얻은 건 결국 내려놓기와 바라보기 그게 전부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우리 누구도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이가 없다는 것. 죽음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도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죽음 또한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제 시작일 뿐이고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듯 정해진 게 없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