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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Apr 24. 2024

기억아, 내게 머물러주라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떠나보자고 남편과 얘기하는 중이었다. 

"우리 거기 갔었잖아!"

말하다 보니.  맞다. 그곳도 갔었고, 또 저곳도 갔었는데... 왜 기억이 없지? 우리가 여행을 많이 다녔던 시기는 물론 코로나 이전이었고 아이가 어릴 때였다. 어떤 때는 유모차도 끌고 또 어떤 때는 손목도 잡아 당기며 길을 재촉하던 시절이었고, 분명 즐거웠다. 한참 커가는 아이와 함께 새 풍경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니 어떻게 안 즐거울 수가 있을까. 그래서인지 사진을 보면 표정들도 다 좋다. 단, 언제 어디였는지 모르겠다. 그 기억이 거울에 물때가 끼인 양 영 흐릿한 것이, 답답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자신했었건만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이런 일은 여행뿐이 아닐 테다. 내가 아직 모를 뿐, 일상의 여러 순간이라고 세월을 버텨냈을 턱이 있나.


기록을 남겨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자세히 쓰면 안 된다. 장문은 시간도 걸리고 육체적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므로 피곤하다. 짧게 쓰되 10년, 20년이 지나도 꼭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긴다. 입을 한번 열면 구구절절 말이 많은 나. 이유와 설명도 많은 내게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래도 해봐야겠지. 그리고 쓰려는 노력은 안 된다. 그러려면 번을 읽어보고 다시 고치려는 작업을 시도할 테니까. 딱 2번만 읽어보기로 한다. 단순 메모 정도로 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일기나 기록노트를 마련하는 게 좋을 텐데 왜 하필 브런치일까. 나는 남들이 내 글을 보는 것도 엄청 쑥스러워하는데... 내 마음대로 글을 쓴다지만 어느 정도 필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것들만 골라쓰자는 것이다. 격한 희노애락보다는 일상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이 담긴 글이랄까. 물론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이 쑥스러워져 다 지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지워버린 글도 참 많다ㅠㅠ 그런 점에서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 분들은 참 대단하다 싶다. 


꾸준한 내 일상의 기록이란 거. 시간을 조금만 들이면서도 기억을 붙들어매놓을 수 있는 작업. 과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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