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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빈 Oct 14. 2018

침묵을 받아들인다는 것


나는 한 때 침묵의 순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와 나의 감정적 거리에 상관없이 어쨌든 찾아오는 침묵의 순간이 불편했다. 침묵이 올 것 같은 순간에 나의 뇌는 빠르게 움직였다. 새로운 대화 주제를 생각했고 침묵이 오기 전에 말로 내뱉었다. 


시끌벅적했고 많이 웃었다. 


그 무렵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 피로감의 원인을 명확히 알지는 못했다. 

타향에서 보낸 1년간 나는 진심으로 마음이 여유롭고 풍요로운 사람들과 섞여 지내며 많은 책을 읽었다.

스스로를 몰아붙일 이유도 목적도 없는 낯선 곳, 낯선 이들과 대화 속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침묵은 자연스러운 대화의 한 부분이었다.  

침묵은 다른 대화 주제로 전환하는 순간일 수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이 될 수 도 있다. 그 자연스러움을 회피하기 위해 나는 때때로 스스로를 희화하여 소비하기도 했고 불필요한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침묵을 거부한 시간 동안
나는 자연스럽지 못했고
자신에게 너무했었다. 


즐거운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상대가 지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 

나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부여한 역할 속에 나를 가뒀다. 

내가 이상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말을 하는 동안 상대가 진심으로 즐거웠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불필요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침묵을 받아들인 후로는 나와 상대에게 집중했다.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졌고 다음을 기약하는 헤어짐의 순간 피로감 대신 알 수 없는 충만함이 마음을 데웠다. 


문득 궁금해진다. 


억지로 침묵을 쫓아내던 그날, 

쏟아낸 말의 홍수 속에서 몇 개의 단어가 우리 가슴에 남았을까.

정제되지 못한 채 뒤섞인 단어들이 나와 당신의 생각을 흔들어놓진 않았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 속에 우리는 어떤 감정을 나눴을까. 


오늘,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당신의 발걸음이 무겁지 않기를 바래본다. 

수많은 단어들 속에 당신과 상대를 흘려보내지 않았기를.

침묵이 찾아왔을 때, 순간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았기를. 





보빈

Designer · Illustrator


Email : mia.bak03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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