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어린이집을 들어가던 해.
네 살배기 손녀는 이것저것을 만들어 왔다. 종이를 접고,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고, 반짝이를 달고......
어느 날은 금빛의 종이 왕관을 쓰고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나오며, 자랑스러운 듯 보여줬다. "와! 예쁘다." 맞장구에 의기양양 웃어 보이는 손녀가 참 예뻤다.
집에 돌아온 나는 손녀에게 더 신기한 것들을 보여주겠다며 마음껏 내 재주를 뽐냈다. 이때 나는 손녀에게 대단한 존재였다
여섯 살.
손녀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했다. 영어를 시작했다. "Grandma......" 나는 받아쳤다. 'Yes" "No, No, No, "
수영을 배운단다. 유치원에서 올려 주는 원생활 사진 속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에 물에 뜨는 무언가를 달고는 물속에서 잘 놀고 있었다.
중국어를 한단다. "니하오" 이 정도쯤이야. 나도 받아쳤다.
여덟 살.
얼마 전 손녀는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3월 말 1주일 동안 방학이라 하여 손녀를 봐주러 올라갔다.
플루트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노래를 하는데 저 혼자 '솔' '라' '시' 연습을 한단다. 그래서 약속했다. 나와 있는 일주일 동안 노래 하나 해 보자고. 기를 살려주려 했다.
플루트 교본 속의 음표와 계명과 손가락 표시는 대충 읽을 수 있어서 열심히 알려줬고 손녀는 잘 따라왔다. 드디어 '자전거' 노래 첫 줄 연주가 시작됐다. '미 솔솔, 미 솔솔 라......'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은 가르칠 수 없다. 다행히 1주일 동안의 짧은 방학이 끝나 나는 손녀와 이별했다.
다음에 만날 때면 더 이상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거기까지. 거기까지. 지금까지 모든 것은 '딱 거기까지만'인 것들뿐이었다.
나와 손녀가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시간들을 돌이켜 봤다. 벌써 4년이 흘렀다.
4년 전 그때는 말도 띄엄띄엄 서툴고, 잘 뛰지도 못했던 정말 아기였었다.
내려오는 길.
화사한 봄날이라 SRT 대신 버스를 탔다. 바깥은 흩날리는 벚꽃들로 아름답기도, 아련하기도 했다. 초점 잃은 눈은 그 아름다운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흘려보내는 것이 그것뿐만 아니네.
퇴직한 지 벌써 7년.
가위질을 못하던 그 손녀는 이제 영어가 일상어가 됐고, 수영은 접영까지 해내고, 한글을 떼고, 플루트는 '자전거'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난 무얼 한 것일까?
오래 살아 이제는 세상에 신기할 게 없다는 나의 생각은 틀린듯하다.
난 영어도, 수영도, 플루트도, 중국어도 못한다. 그런데도 세상을 다 알기에 이제는 신기할 게 없다고? 그게 아니라 경험 못한 신기한 게 너무 많음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여덟 살 손녀의 고군분투 4년과 나의 그냥 지나버린 4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의 삶은 원래 그런 거야'라기엔 그 죽을 날이 너무 많이 남아있을 수도. 엄마가 구순을 바라본다. 지금 이대로 엄마가 산 세월을 살아낸다면 30년 뒤 나는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시작해야겠다. 그 끝이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손녀의 4년과 나의 4년 그리고 엄마의 4년.
손녀는 오늘도 새로운 세상들에 부딪히며 내달리고 있다.
"그래! 나에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너무 많아. 나도 신비하고 흥미로운 새 세상으로 들어가 볼 거야. 당장 오늘부터."
탁상용 캘린더를 집어 들었다. 5월 9일.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한 달 뒤 어떤 세상을 보았는지 헤아려볼 것이다.
일단 시작은 플루트 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