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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an 21. 2021

썸머워즈 속 '어른'

Gabriel's Playlist

Photo by eberhard grossgasteiger on Unsplash


애니메이션 ‘썸머워즈’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로 떴다. 그래서 네 번째 관람을 했다.



‘썸머워즈’로 트위터 검색을 해 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타난다. 호평, 혹평이 다양한 표현으로 뒤섞여 있다. 감독이 누구고 그의 작품이 무엇이 있으며 이야기가 좋네 나쁘네 등등.


필자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다양한 언급(신작 출시, 주목되는 작품, 이런 주제의 작품들 등등)을 읽고 끌리는 작품을 보는 편이다. 감독이 누구고 그 감독이 어떤 사람이며, 성우가 누구고 무슨 작품으로 유명한지는 대단치 않다. 


당시엔 썸머워즈에 등장한 통합 플랫폼의 명칭이 국내 대기업의 포털 브랜드와 동일해서 뭔가 싶었던 것이 계기였다. 스폰서를 했을 거라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마음을 끌진 못했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극의 통합 플랫폼은 전 세계 정부기관, 통신부터 교통신호와 상하수도 관리까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통합 플랫폼 로그인이 안 되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지 못한다. ‘향후 정보화 사회는 이런 모습이겠네‘라고 생각했다. 위성 제어 계정까지 있으니 이런 상상을 뛰어넘었다.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는 것은 주식 투자 외에도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있을 경우 말이다. 극중에서도 해킹 인공지능의 침입(미 국방성의 무기 도입 전 테스트로 시작된 사건)이 있었으니 말이다. 유비무환은 이제 옛 책에 기술된 경구일 뿐일까. 현실도 ‘예상 외 사건’으로 정부기관 및 관련 부처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답을 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더 실감이 났던 듯 싶다.


극에서는 실험용 해킹 인공지능을 테스트하다가 그 사단이 벌어지는 것으로 서사된다. 고춧가루도 사용자에 따라서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학습의 욕망이 있는 인공지능을 무기화 하려는 생각 역시 어찌 보면 자연히 귀결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이탈적 상황이 세계 최고의 보안 체계라는 통합 플랫폼의 방어벽을 허물어 버린다. 물론 소인수 분해를 통해 암호를 풀어낸 남자 주인공의 역할도 있긴 했지만.


이런 시각으로 앞의 3번 관람을 했다. 보면 볼수록 ‘이런 것 현실에도 나오겠군’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런 생각이 영화를 3번이나 관람하게 한 방아쇠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작품이 왜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을까?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이것 때문인가 싶다. 극장 애니메이션 ‘썸머워즈’와 콜라보레이션한 온라인 탈출 게임 이벤트가 2021년에 개최될 예정이라 한다. 사전 이벤트의 영향인가 싶다. http://alonestar.egloos.com/7509361


이번 관람에서 눈여겨 본 부분은 통합 플랫폼이 아니라 진노우치 가의 16대 당주 사카에 할머니다. 우선 그녀의 유언장을 인용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일단은 진정하거라.
어느 때고 마음이 흔들려선 안 된다.
장례식은 가족끼리 간소히 치르고 다들 평소 때처럼 지내도록 해라.
재산은 남기지 않지만 예부터 알고 지내온 분들이 너희에게 힘이 되어줄 거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며 살거라.

그리고... 혹시 와비스케가 돌아오면 10년 전 나간 후 언제 올지 모르지만
혹시 돌아온다면 분명 배가 고픈 상태일 테니 밭의 채소와 포도와 배를 마음껏 먹게 하거라.

그 애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나는구나.
귀가 할아버지와 똑같아서 깜짝 놀랐단다.
밭길을 걸어가면서 이제부터 우리 집안 아들이 된다고 말했더니
그 앤 대답은 안했지만 손만은 꼭 잡고 있었어.
그 아이를 우리집안 아들로 맞는 내 기쁜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았어.

가족끼리는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 져서도 안 된다.
힘들도 괴로운 때가 와도 변함없이 가족 모두 모여서 밥을 먹거라.
가장 나쁜 것은 배가 고픈 것과 혼자 있는 거란다.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단다.


‘어느 때고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며 살거라’, ‘와비스케가 돌아오면 10년 전 나간 후 언제 올지 모르지만 혹시 돌아온다면 분명 배가 고픈 상태일 테니 밭의 채소와 포도와 배를 마음껏 먹게 하거라’, ‘힘들도 괴로운 때가 와도 변함없이 가족 모두 모여서 밥을 먹거라. 가장 나쁜 것은 배가 고픈 것과 혼자 있는 거란다’.


이런 어른이 있었으면 했다.


행동하는 지성 Photo by Europeana on Unsplash


극중 사카에 할머니는 ‘행동하는 지성’이다. 그녀는 차분히 중심을 잡고 앉아 집안 대소사를 관장한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무위자연의 ‘무위’는 왕이 없는 듯 하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질서는 구성원이 지킬 규칙 혹은 법이 잘 서 있어서 굳이 왕이 나서지 않아도 원활히 돌아가는 상태로 이해한다.


감독도 일본 전통의 배경을 구성하려 했다고 한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익히어 새것을 앎; 옛 것을 배우고 익히며 새로운 것을 깨달음으로 이해하고 있다(필자 주))이라는 말도 있다. 


집안과 사회에 ‘어른’이 있다면 더 나은 삶과 사회가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훌륭한 어른의 행보를 보고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훌륭한 어른은 나대지 않는다. 하지만 적시에 짧게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행동하는 지성이 보이는 행동으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모두가 배우게 되는 현상이다.


지성(知性)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 넓은 뜻으로는 지각이나 직관(直觀), 오성(悟性) 따위의 지적 능력을 통틀어 이른다.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


‘지성이 있다’는 것이 학력이 높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아마도 사카에 할머니의 행동은 (치도를 들고 할아버지 첩의 아들을 베려고 한 것은 제외하고 싶다)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에 맞는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런 행동하는 지성이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 사회는 격(格; 인격, 인품; 똑바로 자란 높은 나무라는 형성문자)을 갖추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폭설에 모르는 사람의 차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빙판이 미끄러지는 차를 미는 모습을 뉴스에서 봤다. 격이 있는 사회의 한 모습이라 생각했다. 


격(格)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하지만 10대 여러 명이 동급생을 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가하고 차를 훔쳐 운전하며 패를 지어 싸우거나 몰려다닌다. 부모의 재산과 지위가 자신이 이룬 성과인 양 행동한다. 직업이 경비원일 뿐인데 욕설을 하고 린치를 가한다. 국민을 우민이라 칭해 공무원이 해고를 당한다.


이 외에도 격을 잃은 모양새가 연일 뉴스에 보도된다. 비단 정치권의 행태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힌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원천은 사람이다.


논어에는 이런 말도 있다. 직장 생활을 떠올리게 한 문단이다.


미리 가르치지 않고 살육하는 것을 학(虐)이라 하고, 미리 알리지 않고 성공을 요구하는 것을 폭(暴)이라 하며, 감독하지 않고 갑자기 기한을 정하는 것을 적(賊)이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도 인색하게 구는 것을 유사(有司), ‘속이 좁다’라고 한다.


예전 팀장이 떠올랐다.


격이 없는 사회는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높인다.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면 스트레스가 상승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연쇄반응으로 확대될 때도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만일 엄하고 따스한 ‘어른’을 통해 행동하는 지성의 모범을 본다면 우리는 극중 진노우치 가처럼 어려울 때 서로 단결하고 하나가 되는 일이 일상이지 않을까? 보고 따를 ‘어른’이 더 많아진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고 성장하지 않을까? 감독이 전통적 집안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이런 점에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온고이지신, 옛 것에서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일말이다.


잔소리에 진저리를 치는 우리들. 나이 많은 분들은 말로 가르치려 한다. 이유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짐승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때려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은 보고 배우는 동물이라 생각한다. 보고 생각하고 묻고 익히는 동물이라 생각한다. 아랫사람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자신은 당연하다는 듯 옳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결국 전달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


10살도 되기 전인 자녀에게 가정사의 의견을 묻고, 외식을 할 때 아이 몫의, 아이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는 행동은 ‘어리더라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존중의 태도다. 나이가 어리면 생각을 전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의 그 나이 때를 되새겨 보자. 뇌 없는 시절이었나?


표현이 격한 점은 사과를 드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나? 


인간은 자연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부모 슬하에 있는 동물이다.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는 것이 평균 생후 1년 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오랜 기간 동안 복잡한 사회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배울까? 자녀를 적게 두는 요즘 사회에서는 반 왕자 반 공주로 크게 된다. 그러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행동으로 본을 보이지 않는다. 


교육 Photo by Jose M. on Unsplash


‘같이 있을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빈번하게 들었다. ‘일 때문에...’라고 하는 말도 빈번하게 듣는다. 그렇다면 격이 있는 자녀 교육을 하고, 올바른 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분들은 유동 자산 10억에 부동 자산 20억 쯤 가진 자산가뿐인가? ‘우리 아이는 게임만 해.’ 아이에게 노출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나?


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는 앞 세대의 이런 어리광속에서 성장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이 많은 정치가들,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기업가들의 어리광을 받아주다가 이런 사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지도 모른다. 분명히 잘잘못을 가릴 시점에 용서를 하진 않나?


우리에겐 보고 배울 ‘어른’이 더 많아져야 한다. 나부터 어른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좀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상술된 내용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격이 없는 사회가 낳은 결과의 이야기다.


썸머워즈의 사건은 주인공들의 뛰어난 소인수분해 암산 능력이나 게임 파이팅 능력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계정을 빌려준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의 기여로 해결책을 찾았다. IMF 시대에는 어떤가? 우리가 권력을 준 대리인들이 사고를 치고 해결을 못해 장롱 속에 묻어둔 금을 또 내놓았다. 그 금이 직접적 해결책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경제 속에서 아끼며 살아남으려고 한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이 돌파구를 만들었다.


어쩌면 ‘지도자’와 ‘대표’를 혼동하는지 모르겠다. ‘지도자’는 행동하는 지성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고, ‘대표’는 무리의 얼굴이다. 


우리는 우리가 권력을 부여한 이들을 누구라 생각하나? 우리는 직업이 선생님인 사람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생명을 좌우하는 의사를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 추위 속을 뚫고 사람을 구하러 나가는 소방관들의 생활은 나아졌나? 갈수록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농어촌과 축산 임업 종사자들은 소출이 많아져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나? 확진자가 많아 병실과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 관계부처의 엘리트들은 어떤 대응을 하고 있나?


우리는 소위 ‘엘리트’ 선호에 빠져 그들이 벌인 실수를 뒷감당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90% 이상의 소출을 세금으로 뜯기면서도 다음 해 봄 다시 논으로 나가는 옛 농부들처럼. 민주주의는 어디에 갔나? 물론 촛불집회 등 구성원의 힘으로 바로잡은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우리는 어리광 가득한 나이 많은 사람들, 안하무인의 배우지 못한 엘리트들의 실수로 결코 안락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살만 하다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입에 밥술이 들어온다고 냉장고에서 기한이 지난 식재료가 상해가는 것을 모르고 있지 않나? 우리 아이들은 어떤 문화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것을 선별할 방법이나 기준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 듣고 있는지, 친구를 어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나?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손이 오그라들고 있다. 결코 행동하는 지성이라 부를 수 없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때로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2045년이 되어야 해방 100주년일 것이다. 그래서 아직 자유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 건전한 사회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옛 것과 현대 것이 뒤섞여 누구나 각자 옳은 것을 알고 있는 혼란의 원인이 그것이라고. 아직 모두가 바라볼 나침반을 손에 쥐지 못해서라고. 몇 십 년을 산 필자도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럽다. 다만 비록 픽션속 인물이긴 하지만, 이런 기회에 각성을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모르는 것은 죄이다.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진정한 잘못은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무언가 저지르고 사는 삶이다. 


우리에게는 어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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