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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pr 22. 2021

궁금 읽기, 다양성

*커버 이미지: Photo by 2y.kang on Unsplash


다양성은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이다. 

문화 다양성은 '언어나 의상, 전통, 사회를 형성하는 방법, 도덕과 종교에 대한 관념, 주변과의 상호작용 등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포괄'한다. 인류는 등장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서로 다른 상황과 지역적,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많은 사회들은 서로 달라졌고, 이들 중 다수는 현재까지도 지속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유되는 도덕관념,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유네스코는 문화의 개념을 "사회나 어떤 사회집단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정서적 특징들의 집합, 그리고 예술과 문학 이외에도 생활양식들, 함께 사는 방식들, 가치 체계, 전통, 신념 등을 포괄한다."고 밝히고 있다. 

생물 다양성은 '지구 각지의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의 다양성'을 말한다. 환경에 대한 관심과 생물자원의 자본화에 따라 최근에 선진국과 생물다양성부국과의 첨예한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기업 인사 측면에서의 다양성은 '성, 나이,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 출신 지역, 군 복무 여부, 정신적 또는 신체적 조건 등 사람들마다 다른 특성이 특정될 수 있도록 드러나는 조건들'이다. 다양성 관리는 유연한 조직 운영을 위해 기업이 반드시 관리해야 할 요소이다. 다양성 관리는 다름에 대한 존중, 가치 인정과 그것을 활용하는 조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시스템화되고 구조화된 집단에서의 개인은 정제되고 리스크를 회피하며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역할이 중심이 되면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이며 속도감 있는 행동이 가능해진다고 일컬어진다. 


위 인용 문단을 살펴보면, 최근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에 있어서 다양성은 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취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은 어떨까? '남녀평등이라면, 성별의 구별에 따르지 않고 능력에 따라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지속되는 '당직'은 어떨까? 당직은 '근무하는 곳에서 숙직이나 일직 따위의 당번이 됨'이다. 남녀 모두 동일하게 수행되고 있나? 신체적 특성에 따른 처우는 어떨까?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분명한 신체적 차이가 존재한다. 조직 입장에서 이런 차이를 적절하게 운용함으로써, 소속 인재의 역량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남성은 결혼식부터 신혼여행까지의 기간을 제외하면 결혼 전과 거의 동일하게 근무할 수 있고, 여성은 가사, 출산, 육아 등으로 결혼 전과 동일하게 근무할 수 없다'는 인식을 생각해 보자. 이상적인 말이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가사, 육아의 동등한 처리는 남성이 결혼 전보다 적게 일 하고, 여성은 인식보다 많이 일한다는 결과를 만들까? 최근 남성의 육아 휴직, 가사의 공동 분담 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지속해 온 문화 역시 지속되고 있다. 결혼 후 부부간의 상의에 의해 최근 동향이 반영되기 쉽겠지만, 양가 어른들의 말씀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유지하게 한다. 부부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결혼은 남녀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집안의 결합이기도 하다. 요즘은 여성이 '시집을 간다'가 아니라 '결혼을 한다'라고 말한다. 결혼이 종속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해방된 지 100 년은 안 됐지만, 부부가 서로 동등하다는 개념은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길 바란다.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발언권이 있으며, 가장이 아니라 부부라는 협력체가 가정을 이끈다. 물론, 남성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지속되고 있다. 충돌은 예상된 바일 것이다.


Photo by Asso Myron on Unsplash


사회는 변한다. 보수층이 아무리 두텁고 힘이 강해도 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체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보다 나은 결과'는 보수든 진보든 모두 추구하는 바이다. 일상과 일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는 정체되지 못한다. 이런 의지와 행동들이 사회를 지금에 맞게 변화시킨다. 물론 과거의 해법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 보수고, 새로운 방법으로 지금의 문제를 풀려 하는 것이 진보라고 하지만, 두 집단 모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원한다. 모두를 위해서 인지, 특정 집단 혹은 개인을 위해서 인지는 지금 논하지 않겠다. 변화의 베스트 프렌드는 과도기다. 과도기 중 과거로 회귀하거나 미래로 더 빠른 전진을 하기도 한다. 이는 변화 시도의 결과 때문이다. 결과가 좋은 것은 지속되고 확산되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전 회귀나 다른 변화 방법이 모색된다. 캐즘이라는 정체기에 빠지기도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변화의 또 다른 베스트 프렌드다. 


다양성은 왜 인정해야 할까? 그보다 먼저 선입관은 얼마나 강할까? 지금까지 자신의 선입관으로 문제를 풀어온 사람은 자신의 선입관에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 두리번거릴 수 있다. 선입관이 없다면, 피부색이 다르거나 문화가 다르거나 성별이 다른 이를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여길까? 동일한 인간임을 인정하기 전에 망설이진 않을까? 선입관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이다. 강렬할 경우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선입관은 형성될 것이다. 무서운 것은 반복 발생되는 현상이다. 반복 현상으로 형성된 선입관을 깨거나 이기기란 무척 어렵다. 언제나 맞았고 옳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인정이란, 선입관의 배제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 다양성 인정의 목소리는 '하루아침에 당신이 가진 선입관을 제거하라'는 주문과 유사하게 들린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아 초래되는 결과가 너무 아프기 때문에 하루 빨리 이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바느질을 하려는 현상'과 다를 바 없다. 선입관은 변할 수 있을까? 선입관과 다른 현상,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 이 두 가지 요건이 갖춰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입관을 바꿀 현상과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단시간에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다. 식물을 빠르게 성숙하게 하는 비료가 있다고 해서, 어제 비료를 주고 오늘 열매를 기다릴 수 없다. 더구나 세월의 결이 두터운 선입관을 단시간에 해소할 수 없다.


Photo by Ratapan Anantawat on Unsplash


변화를 이루어내는 사람은 기다림의 고수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부분은 단시간에 해소할 수 있고 어떤 부분은 보기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히 손을 대는 사람들이 변화를 성공시키는 사람일 것이다. 만일 역사학이나 고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 세계 각지로 퍼졌다'는 가정이 명확한 근거에 기반해 사실로 증명된다면, 백인우월주의자나 인종차별자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할지 모른다. 자신과 흑인의 조상이 같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치열하게 생각할 것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근거 앞에 그들은 과연 변할까? 유전적으로 학술적으로 이를 증명해 낸다고 해도 '내가 태도를 바꿀 이유는 되지 않아'라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차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와 반대 방향의 현상에 괴로워하는 남자들도 있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고, 잔뜩 엉켜있어서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흑인 중심의 사회에서 백인은 차별받고 있나? 2013년 8월 28일자 한국경제 기사 ' "흰둥이가 뭘 알아?" ... 백인이 FIFA에 인종차별 제소'라는 기사가 있다. AP통신을 따르면 말라위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끄는 톰 사인트피트 감독이 나이지리아의 스티븐 케시 감동의 인종차별 발언을 문제 삼아 FIFA에 진정한 사건이다. 사인트피트 감독은 벨기에 출신의 백인으로 아프리카 축구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케시 감독이 "그 양반은 백인이라서 아프리카 사정을 모른다"며 "경기장 변경건을 FIFA와 상의하려거든 벨기에로 돌아가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차별은 강한 힘과 약한 힘 간의 경쟁 결과인가? 힘이 있는 측이 자신들 위주로 집단을 주도하면서 불거져 나온 결과인가? 이런 인식으로, 기업 내 여성 임원의 수, 국회 내 여성 의원의 수가 언급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 차별 받는 측이 힘을 가지게 되면 평등해지나? 힘이 균일할 때 충돌과 갈등은 가속화되고 치열해지지 않던가? 손에든 힘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모두 힘을 내놓자는 말은 개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리고 아마도, 어떤 주제에서의 차별이나 불평등은 '힘의 편중'이 원인일 수 있겠다. 힘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기 사람'을 중요한 곳에 배치하고, '비 자기 사람'을 미끼로 위험 부담책으로 사용한다. 이런 이야기를 쭉 하고 있는 화자는 불평등을 주장하던 측이었고, 불평등 주장을 듣는 측이었다. 세상에서 '주력', '주도 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불평등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것 같다. 모두 같은 층에 있을 때, 노력해도 같은 층이라 의욕이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 차별은 없을까? 그 와중에도 이런 저런 꼬투리로 차별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마치 피 속에 조상 대대로 노비로 핍박 받은 아픔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때, 남보다 쉽게 주먹을 뻗을 수 있을 때 피 속 아쉬움을 채우려 하는 것과 같이.


Photo by Lobacheva Ina on Unsplash


당신은 '안 된다'는 주위 말에 부화뇌동(附和雷同) 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움직이려면 상황을 잘 가늠하고, 때를 고르며, 각오를 다져야 한다. 자신의 생각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부화뇌동하는 시간보다 가치 있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정 좋은 것은 모두 좋다고 한다'라는 말을 기억해 보자. 무시 받고 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소의 꼬리가 될지, 닭의 머리가 될지' 생각해 보자. 지내고나면 부질없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역시 내 발등의 불이 가장 뜨겁다.


https://youtu.be/hxSfYMvBU9E


*참고

https://ko.dict.naver.com/#/entry/koko/fa76e188628d4db6b4b83da637cb3509

https://ko.wikipedia.org/wiki/%EB%AC%B8%ED%99%94_%EB%8B%A4%EC%96%91%EC%84%B1

https://ko.wikipedia.org/wiki/%EC%83%9D%EB%AC%BC_%EB%8B%A4%EC%96%91%EC%84%B1

https://www.imhr.work/brand/diversity-management/

https://ko.dict.naver.com/#/search?query=%EB%8B%B9%EC%A7%81

https://ko.dict.naver.com/#/search?query=%EC%84%A0%EC%9E%85%EA%B4%80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3082848378



#다양성 #기회의균등 #불평등 #세력 #힘 #주도세력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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