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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ug 19. 2021

칭찬 일기

*커버 이미지: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오후 3시. 오늘의 힘듦이 벌써 몸을 일으켜 발을 땅에 디딘다.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오늘의 힘듦은 고개를 쳐들고 목에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비릿한 비웃음을 내게 던질 것이다. 견디자, 견디자, 견뎌보자. 이미 효력을 잃은 희망 주문은 희망 고문이 된 지 오래다. 오늘의 힘듦은 내일도 어김없이 내 곁에 올 것이다. 덕분에 지금의 내 삶들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어렵다. 여기서 주저 앉아 이탈하는 것은 용기가 없음이다. 그렇게 독려해 왔다. 신기한 점은, ‘매일 어디서 그런 버팀 힘이 날까?’ 이다. 매일 먹는 밥일까? 몇 시간 안 되지만, 잠시 등을 붙인 잠일까? 혹시 최근 시작한 다이어트 식 샐러드의 비타민과 미네랄 덕분인가? 비타민과 미네랄을 칭찬하기엔 실체를 만지기 어렵지만.


하루 종일, 7일X24시간 불행만 보고 살 수는 없다. 세상에 착한 사람이 더 많고 행복이 더 많다. 눈앞에 알짱거리는 불행, 사고, 힘듦 만을 보고 산다면, 삶은 살아가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일 것이다. 그럼 세상에 더 많이 존재한다는 착한 사람과 행복을 찾아보자. 그 착한 사람이 내 친구가 될 수 없고 그 행복이 내 것이 될 수 없어도 확인이라도 해보자. 그럼, 나도 착한 사람과, 행복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7일X24시간 착하지 않은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시간만 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를 알아야 피할 방법도, 나아갈 길도 알게 되지 않을까? 이미 그런 것들에 무릎 꿇고 ‘없다’고 주저앉은 것은 아닌가?


일은 원활히 진행되는 것이 올바른 결과다. 일은 농업혁명 이후 우리의 생명과 생활을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수렵 채집의 시대는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다. 즉, 교환의 시대가 아니었다. 농업 혁명은 정착지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했지만, 농사는 겨울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할 일이다. 만일 쌀, 채소, 육류, 가죽, 나무, 쇠를 한 가구가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각 가구에서 필요한 것을 공작한다면, 1년을 여러 가지 일로 나누어 생활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지기 땅에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기 위해서는 반나절 정도를 소비해야 한다. 나머지 시간에 밭(채소), 목초지(육류), 수목(나무), 채광 및 가공을 처리한다면 잠 잘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정은 가정 자체가 오류다. 모든 개인이 동일한 수준, 사용할 만한 물건 산출 역량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에도 대장과 구성원이 역량에 따라 구분된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결국, 세상은 ‘잘 하는 사람에게 일 시키기’ 체계로 전환되고, 교환이 필요했다. 교환은 물물 교환으로 시작됐지만, 수송의 불편, 가치 교환 기준 등의 문제로 화폐를 낳았다. 자신이 생산한 물건(일의 결과)를 화폐로 바꾸고(1차 교환), 화폐를 필요 물품과 교환(2차 교환)한다. 21세기, 세상의 일은 더 세분화됐다. 3D 프린터 등 개인 직접 생산 환경이 일부 실현되긴 했고, 부족한 역량을 컴퓨터가 메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컴퓨터를 돌릴 전기는 아직 돈을 내고 콘센트를 통해 받는다. 이런 위상의 일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덜컥거리거나 일시 정지되면 삶은 힘들다. 


Photo by sporlab on Unsplash


혹은, 웬 놈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거나 작심하고 방해한다. 이는 이익 때문이다. 아니, 욕망 때문이다. 욕망은 필요 이상을 바라는 마음이다. 결핍은 필요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다. 욕망과 결핍 상황은 당사자의 불안을 야기하고 신경을 날카롭게 하여 스트레스 수준을 높인다. 가는 길이 겹쳤을 때, 웬 놈의 등장 혹은 가로막음이 발생한다. 내가 피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점점 더 분업화되는 세상에서 타인과의 협업 진행은 필수다. 그러하니, 누군가 멈추면 내 일도 중단된다. 누군가 이견을 내면 내 일이 멈춘다. 착한 사람이 보이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시간의 문이 열린다.


중국 동진 시대부터 송 시대에 살았던 도연명은 이런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이런 세상을 자신의 삶에서 분리해 냈다. 그의 귀거래사는 자유로운 삶 선언서로 평가받는데 그 일부를 살펴보자.


지난 날은 바로잡지 못하더라도 앞날은 제대로 갈 수 있음을 알겠노라. 길을 잘못 들어 멀리 가기 전에, 오늘이 옳고 어제가 그르다는 것을 깨달았네 ... 좋은 날이면 홀로 거닐면서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하고,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맑은 물가에서 시를 짓기도 한다.

이유진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중국의 역사'


우리도 분리를 선택해 보자. 그렇다고 현실 이탈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하루 중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보자. 일기를 쓰는 시간은 현실과 나를 분리해, 마치 제3자가 된 듯 TV를 시청하듯 내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이런 시간에 하루의 반성만 한다면 괴로운 순간을 복습할 뿐이지 않을까? 그럼 하루를 분석해 보자. 그럼 고통을 복습하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 하나 더, 세상을 향한 긍정적 시각이란 안경을 착용하자. 내가 한 행동 중 옳았던 것, 어제를 개선해 더 나은 삶으로 한걸음 나아간 가치 있던 행동을 찾아보자. 그리고 “잘 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자. 


칭찬 일기는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옳은 행동, 더 나아질 기회를 만든 가치 있는 행동을 찾아내고, 그런 행동을 한 나를 칭찬하는 자기애 활동이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도 제대로 사랑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타인을 욕하고 험담할 시간에 자신을 칭찬하자는 의도다. 칭찬은 오랫동안 그렇게 사용되어서 인지 타인을 향한 행동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칭찬은 자신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삶의 긍정적 태도다. 원리는 이러하다.


Photo by Richard Bos on Unsplash


“그렇게 하면 안 돼”, “그쪽으로 가면 안 돼”, “그건 안 돼”라는 생각은 내 주위에 담을 잔뜩 쌓는다. 아이나 후배에게 그렇게 해 온 사람은 아이나 후배가 스트레스에 휘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짜증을 제대로 받는다. 이렇게 사방을 막는 판단은 결코 대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는다. ‘그럼 뭐가 옳은데?’라는, 길을 묻는 질문을 야기한다. 웃기는 것은, 안 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옳은 길을 모를 때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지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맞고 자란 아이는 커서 체벌을 가하고, 잔소리를 듣고 성장한 아이는 커서 잔소리를 한다는 말을 알고 있나? 체벌이 올바르지 않고 잔소리가 올바르지 않다고 깨달은 이는 자신은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 그 굴레는 끊긴다. 하지만, “안 돼”도 맞는 정보이기 때문에 이에 수긍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막상 후배를 맞아 보니…” “안 돼”라는 말이 더 옳게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방법은 ‘칭찬’이다.


“잘 했어. 그렇게 하면 돼”, “그쪽이 맞아. 쭉 걸어가” 이런 말이 단순히 칭찬 만은 아니다. 옳은 정보를 알려준다. 이런 속성으로 인해 ‘칭찬’은 고급 기술이다. 무엇이 옳은 지 모르는 사람을 구사할 수 없다. 함부로 구사하면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학의 지혜를 내놓았다가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행동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먼저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을 실험 대상, 테스트 샘플로 사용한다. 좋지 않나?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칭찬 일기는 자기애의 시작이다.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애에 익숙하다. 이 말은 길게 하지 않겠다.


이제 나와 대화를 시작하자. 그동안 너무 버려 두었다. 살피고 돌보고 쓰다듬고 응원한다. 작은 일이라도 잘 한 일을 찾아내고 기록하고 습관화 한다. 어제 쓴 내용을 오늘 다시 읽어보고, 1주일 동안 기록한 내용을 찬찬히 읽어본다.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면 바뀐 생각을 옆에 메모하자.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일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칭찬일기도 감사일기처럼 긍정적 시각을 갖고 가치 있는 것을 찾아 되새기는 활동이다. 


무엇을 칭찬할 것인가?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데 기여한 일이라면 가치 있는 행동이다. 


매번 도서관 마감일까지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면, 2주 동안 읽을 분량을 나누어 할당하고 이 계획을 지킨 나를 칭찬한다.


블로그 트래픽이 오르면, 원인을 분석해 다음에 적용할 생각을 하기 전에 나를 칭찬한다.


검색 상위에 오르기 위해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나 각 검색엔진의 검색 결과 출력 기준의 은총을 바라지 말고, 공감할 수 있는 글,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하는 글을 쓰는데 집중한다. 내 글의 진가는 읽는 대중이 평가하고 판단한다. 검색 상위에 위치해도 클릭을 받지 못하면 글은 죽는다. 독자들의 조회수보다 공유 횟수에 더 주목하는 나를 칭찬한다.


이 모든 장황한 이야기의 최고 전제는 ‘진정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세상을 바로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진실 찾기에 시간을 할애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비추어 판단한다. 알아야 칭찬할 수 있으므로.



오늘 거실 닦는 걸레를 빨았다. 3장 정도 빨래통에 있었다. 예전 같으면 좀 더 쌓일 때까지 놓아두었겠지만, 오늘은 언제나처럼 샤워하면서 3장을 빨았다. 오늘 폭염 주의보가 발령됐다. 3장 정도는 금방 세탁한다. 작은 솔로 꼼꼼히 먼지와 머리카락을 걷어낸다. 샤워를 틀어 빠는 걸레에 명중시키면서.




평소처럼 7~8장 쌓인 후 시작했다면, 샤워 시간이 길어져 다른 식구들이 내가 나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팔도 아팠을 것이다. 손으로 비벼 빠는 방식보다 솔로 빠는 것이 먼지 제거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7~8장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팔이 아픈 것도 당연하다. 시간 절약과 팔 보호(?). 앞으로 한 장이든 두 장이든 눈에 보이면 바로 세탁할까? 한 장이야 순식간이다.




#칭찬일기 #진실 #사실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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