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에게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는 ‘관심 밖’의 디자이너였다. 베트멍에서 시작해 발렌시아가로 이어진 그의 궤적은 내 취향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가 주도한 거대한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스트릿의 럭셔리화는 반갑지 않은 침공이었고, 이케아 백을 수백만 원짜리 가죽 가방으로 치환하는 그의 위트 섞인 도발은 그저 '지켜볼 만한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어차피 나의 옷장에 들어올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최근 그가 구찌(Gucci)라는 거대한 유산을 다루는 태도를 지켜보며, 나는 그에 대한 오랜 편견을 거두기로 했다. 놀랍게도 뎀나는 구찌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강력한 페르소나였던 '파괴적 스트릿'을 과감히 지워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정교한 테일러링과 날 선 섹시함이었다.
이는 과거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걸어온 행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에디는 디올 옴므에서 생로랑, 그리고 셀린느에 이르기까지 모든 브랜드를 '에디화' 시키며 하우스 고유의 색깔을 자신의 취향 아래 종속시켰다. 물론 에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보적인 장르이자 문화가 되었지만, 디렉터로서 브랜드의 본질을 겸허히 수용하는 태도 면에서는 뎀나의 이번 변신이 훨씬 더 경이롭게 다가온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축했던 구찌의 세계는 키치하고 현란한 환상곡이었다. 그 현란함은 매혹적이었으나, 동시에 한 시즌만 지나도 피로도가 쌓이는 명확한 유통기한을 지니고 있었다. 뎀나는 그 과잉된 디테일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톰 포드 시절이 증명했던 구찌의 황금기—테일러링과 소재가 주는 본질적인 힘—를 다시금 부활시켰다.
무엇보다 나를 전율하게 한 것은 "구찌는 이제 형용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급진적인 선언이다. 특정 아이템을 지칭하는 명사를 넘어, 동시대의 태도와 감각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겠다는 포부. 이는 구찌를 단순한 브랜드가 아닌, 보편적 미학의 척도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설계다.
뎀나는 이제 '르네상스'를 말한다. 이탈리아의 과거 유산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욕망의 원형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료되어 브랜드의 미래를 그리는 디자이너. 자신의 시그니처를 기꺼이 바꾸고 하우스의 유산을 영리하게 복원해 내는 그의 유연함, 그리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하는 컬렉션을 보며, 나는 이제 그를 단순한 트렌드세터가 아닌 '진정한 마스터'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