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너와는 상관없던 일
곽아람, 그림이 그녀에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몰락'했다고 느꼈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나였을 뿐 그 누구도 내 인생의 부침浮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모두가 자신의 일에 골몰한 채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나 혼자 다리를 바둥대며 침몰하느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을 뿐이라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사는 게 쉬워졌다. 이듬해 나는 미련 없이 복직했고, 더 이상 안달복달하며 살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우등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이다.
<곽아람, 그림이 그녀에게 中>
사회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마음속에 보상심리가 일렁였다. 어떤 날은 물질적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정서적 채움이기도 했다. 너와 많은 일상을 공유할 즈음, 나는 어느 정도 사회에 정착하고 있었다. 틈틈이 행복과 설렘을 보상처럼 받고 싶었던 건 그것이 채워지면 내 일상과 인생이 더없이 빛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나의 행복을 위해서 너를 이용했던 걸까 한 번씩 고민하게 됐지만 너에게 제대로 된 표현은 못했을지언정 내 마음은 늘 생일날에 터뜨리는 폭죽처럼 터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너를 내 마음에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사에게 쓴소리를 들었을 때, 유독 업무가 힘이 들 때 , 주말을 보내고 난 후의 월요일이 버거울 때, 나는 자연스럽게 너에게 연락을 했었다. 너의 일상도 다람쥐 쳇바퀴처럼 빡빡하게 돌아가고 쉴틈이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은 여유를 주고 싶었다. 길지도 않은 시간, 물 한 잔 마시는 시간처럼 가볍게 흘러간 말이었지만 갈증이 해소된 사람처럼 힘을 얻었던 것이다.
나는 종종 투정을 넘은 분노를 너에게 쏟았던 것 같다. 타격의 이유는 결코 네가 아니었는데도 나에게 총을 겨눠 내 가슴을 관통시킨 사람이 마치 너인 것처럼 전장에서 받은 화를 너에게 쏟았던 것 같다. 너는 나의 일상에 유일한 위로였던 사람인데 나의 초라함이 꼭 너로부터 발생된 것처럼 못된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나는 너에게 말도 안 되는 감정의 희생을 바랐단 걸 알았지만 너 역시 나에게 말하지 못한 많은 비밀이 있겠지 짐작하며 나의 비겁함을 정당화시켰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무너지지 않으려 너를 이용했던 그때의 나를 네가 안다면, 너는 무어라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