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쓰기는 어려워

묘하게 다정한 날들이 온다

by 희서

고양이 에세이를 집필하며, 편집자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받았다. 각 장의 끝마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평소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긴 하루를 보낼까 유심히 관찰하던 나에겐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쓴 글은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네 컷 만화로 생되었다.


이 작업이 재밌어진 나는, 이참에 고양이 동화를 써보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여러 마음을 쓰게 되었다.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의 마음을, 말문이 닫 아이의 마음을, 상실을 경험한 아이의 마음을. 나는 속에서 만난 아이들 함께 아파하고, 성장해 나갔다.

내가 왜 이토록 동화가 쓰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동화의 결이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과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고 약한 것이 거대한 세계를 가로지르고, 보잘것없는 것이 강한 세력을 뚫 나가는 세계관은 여전히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이것은 단연코 동화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동화 쓰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으며, 글쓰기 교사로 수년 째 아이들을 지켜봐 왔으며, 아이들과 교감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이 될 수 없었다.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동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간될 고양이 에세이를 교정하며, 틈틈이 써오던 동화를 난생처음 신춘문예 공모전에 내보냈다. 뭘 믿고 나는 행운의 여신이 내게 웃음 지어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당연한 결과인데도 실망스러워 며칠 입맛 좀 없었다. 그 후에는 왕성한 식욕으로 소화기관을 힘들게 했으나.


아무튼간에 동화는 어렵다. 어려워서 하루는 덮었다가, 다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또 끄적이고, 끄적이다가 다시 덮는다. 러다가 가만가만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본다. 내 아이의 마음을, 나와 함께 글을 쓰는 아이의 마음을, 책에서 만난 아이의 마음을. 그러고는 또 무작정 써 내려간다. 이것이 요즘 내가 하는 글쓰기의 전부다.


혹시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 동화 쓰는 분이 계시다면 합평을 함께하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혼자 좁은 시야에 머무르기보다, 여러 시선으로 작품을 보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분명 동화관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고양이 에세이 책 제목은 '묘하게 다정한 날들'로 확정될 듯합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이 제목을 무척 흡족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출간 날짜는 2월 초로 결정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써봤네요. 답답한 것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출간 소식을 알리려 쓴 글은 아니었는데, 결론은 출간 홍보가 되었군요.

마지막으로 이의 시선으로 쓴 글입니다. 편집자의 요청으로 최대한 덜어내고 압축한 원고가 네 컷 만화로 탄생합니다. 만화는 출간 후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띵동.”
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잽싸게 안방 책상 밑으로 뛰어들었다. 무심코 현관 앞에 있다가는 낯선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내 등을 만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것이다.
저번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기사 아저씨가 집에 왔을 때, 낯선 남자의 냄새가 겁을 확 불러왔다. 다시 생각해도 무섭다.
며칠 전에는 파리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나는 그놈을 피해 살금살금 도망 다녔다. 이 집 아들은 고양이가 파리 하나 못 잡냐며 놀려댔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서 사냥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고양이라면 다 잘 잡아야 하는 걸까.
지난여름, 엄마가 오랜 시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존재인데, 엄마가 보이지 않자 입맛도 사라졌다. 나는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내 몸을 핥기 시작했다. 그루밍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됐다. 그래서 같은 자리를 핥고 또 핥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그루밍을 하지 않게 됐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몸을 핥을 이유가 없어진 거다. 그렇게 내 몸의 상처는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나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