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하려고 세 명의 남자를 만났다.
새로운 향수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향을 하려고 세 명의 남자를 만났다.
첫 번째 남자는 온라인 상으로 알고 지낸 지 5년 정도 되었다. 그 사이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느닷없을 정도로 갑자기 만남이 성사된 것은 담백한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약속을 잡을 당시 설 연휴에 본가에서 도망쳐 나온 나는 호텔에서 머물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호텔 레스토랑의 석식 마감 시간이 30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혼자 밥 먹기 싫은 날이네’라고 쓴 한 마디에 혼자 호텔에서 머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몇 명의 남자에게서 플러팅 메시지를 받았다. 그 남자만이 ‘같이 저녁을 먹고, 편히 쉬실 수 있게 적당한 시간에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남자는 내 SNS 계정을 모두 팔로잉하고 있었다. 내가 쓴 글이나 출연한 프로그램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쓰는 글의 성격 탓에, 아니 나의 타고난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남자들이 팬심을 자처하며 관심을 보이면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기는커녕 경계심부터 발동했다. 남자가 나를 팔로잉한 초반에 내 글과 나에 대해 정성스러운 감탄을 보냈을 때도 진의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적당한 거리에서 필요한 관심을 적절해 보내준 시점에서는 모험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호텔 바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있던 남자가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남자의 얼굴도 모르는 채 만났다. 어떤 태도들은 증명사진보다 명확하게 얼굴의 매력을 담아낸다. 그간 봐온 남자의 태도에서 못생김을 읽어낼 수 없었기에, 못생긴 건 견딜 수 없어하는 내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선뜻 만났다. 촉이 들어맞았을 때의 짜릿함을 숨긴 채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남자의 사회생활 경력이나 나이로 봤을 때 술의 취향이 없을 리 만무했을 테지만 나의 음주생활을 기록한 에세이도 즐겁게 읽어주었던 남자는 내게 술을 고르게 했고 고른 것과 같은 것을 마셨다. 술과 적당한 안주로 배를 채우려던 계획은 안타깝게도 레스토랑이 마감한 뒤에는 과일이나 치즈 밖에 주문이 안 된다는 안내로 무너지고 말았다. 허기짐은 다른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배가 부른 상태보단 공복일 때 섹스는 조금 더 적극적이게 된다. 섹스의 실행 여부는 취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결심을 알리 없는 남자는 세 잔의 술을 함께 마시고 수면 부족으로 연거푸 하품을 하는 나를 보고 그만 재워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면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선다는 태도로 룸으로 올라갈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내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기 전까지.
둘만의 공간에 들어섰을 때도 남자는 이 만남을 일회성으로 만드는 실수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래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남자는 거리를 좁혀 다가오고 싶은 마음을 꽤나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눈을 마주친 채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당신을 불러들였다면 그 후의 일은 어떤 결론이 나든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 정도의 신호를 읽어낼 줄 알았던 남자는 내 목에 키스를 했다. 그렇게 가까워진 몸의 열기에서 피어오르는 서로의 향에 둘 다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뿌린 향수는 내가 SNS 상에서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이었고, 그날 내가 뿌린 향수이기도 했다. 딥디크의 탐다오. 내가 링크를 올렸던 음악,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마시는 술의 의미까지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런 사실과 합쳐져 제법 크리피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남자는 스토커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 불쾌한 끈적임 따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실하게 나를 잘 읽어나간 사람이란 생각에 조금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럼 이런 상황에서 그런 감정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사랑?” 남자는 재치 있는 답변을 했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망상에 빠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듣기 좋은 농담이 될 거란 계산이었을 것이다. 둘 사이의 경계나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둘 다 굳이 서둘러 해치우듯 섹스를 할 필요가 없어진 듯했다.
남자는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끌어안은 채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다른 한쪽 침대에도 남자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곤히 잠든 걸 보고 먼저 나간다는, 타인의 존재로 번거롭지 않은 아침에 되길 바란다는 메모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 시향은 실패했지만, 패배감은 느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