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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Oct 03. 2023

적당한 온도가 된 너와 나, 우리 부부

바람의 나라 프랑스

#1. 더 이상 너에게 설레지는 않지만...


벌써 그와 나의 결혼생활이 이십 년이 되어 간다. '이제'가 아닌 '벌써'라는 표현… 정말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한국을 떠나왔던 나. 정말 그동안 그와 함께 했던 결혼생활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프랑스와 아프리카를 돌며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서 그런지 그와의 결혼생활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이제 이십 년'이 아닌 '벌써 이십 년'이 되어 버린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 대한 나의 열렬한 마음이 평생 갈 줄 알았다. 결혼 선배들이 '너도 살아봐라'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나보다 먼저 살고 경험한 세상의 인생 '선생'님들의 말씀은 하나도 틀리는 법이 없는 것 같다. 나도 그에게 씌워진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간이 온 것 같기 때문이다. 하긴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되어 가는데도 배우자에게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계속 설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닌 것 같다. :D


그의 얼굴만 봐도 좋았고, 내가 해주는 맛없는 반찬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그때 그 순간들과 달리 지금은 얼굴을 마주 보면 아이들 이야기와 일 이야기를 하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고, 맛없는 반찬은 이제 손도 대지 않는 그에게서 나도 더 이상 설레지는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처음처럼 설레지 않는다는 것이지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도 그래 보인다. 요즘은 직장을 옮겨 그런지 새로운 일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나만 바라봐 달라고 떼쓰고 싶지도 않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그를 좀 편하게 놔두고 싶다. 열정적인 사랑은 이제 남아 있지 않은 우리 부부지만 그래도 불안하지는 않다.


사랑의 감정에는 나이와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중년이 되어 보니 절대적인 제한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사랑과 관계에 대한 관점이 성숙해지지만, 감정의 온도에는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 느낄 수 있는 열정과 사랑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그 감정의 온도를 경험하며 지나와 보니, 부부사이에 필요한 장기적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안정적인 적당한 온도의 사랑과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조용히 그렇게 더 깊게 흐르고 있다.





#2. 바람의 나라 프랑스


그렇잖아도 바람을 잘 피운다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이성친구를 구할 수 있는 앱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이유로 외도를 하는 커플들이 더 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결혼한 부부나 동거 커플들이 헤어지거나 이혼을 많이 하는 때가 아이가 없는 결혼초나 5년, 10년, 20년 살았을 때나 황혼이혼도 꽤 많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내 주위에 있는 프랑스인 커플들은 잘 살고 있어서 이런 통계가 과연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다녀간 친구가 내게 물었다. (참고로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잠시 별거 중으로 머리를 식힐 겸 프랑스에 여행 온 친구다)

배우자를 두고 바람피우는 게 흔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불안하지 않냐고...(한국은 안 그런가???)


아마도 내 남편이 프랑스 여자와 바람을 폈을지, 안 폈을지에 대해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은데,, 그래서 대답해 주었다.


이제 중년이 된 동양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프랑스 여자가 있겠냐고 :D


물론 농담이지만, 이제껏 프랑스에서 직장 다니면서 한두 번 유혹이 없었겠는가?

나도 그렇고 아마 그도 그랬을 거다.

그래도 이제까지 흔들리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이런 점에서는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다.

바람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살아 내려면 서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중요한 것 같다. 그 믿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 못하지만 그 흔들림의 시작이 내가 아니기 위해 난 노력할 것이다. 아마 그도 그러리라...


처음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이제 중년이 된 우리 부부는 적당한 온도로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이어나가고 있다.





#3. 미지근해도 나쁘지 않아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대부분 일요일 아침은 건너 띄고 점심은 남편이 준비한다. 그런데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점심을 준비하던 남편이 그날은 계속 자고 있는 것이었다.


잠자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어느새 희끗희끗 새치가 올라와 앉아 있는 헝클어진 앞머리, 이제는 제법 짙어진 눈가 주름이며 탱탱하던 볼살은 어디 갔는지 푹 꺼져 있는 얼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처럼 잘생겨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자꾸 쿡쿡 찌르듯이 아파왔다. 가장으로서의 그의 '수고'가 느껴졌다.


자고 있던 그가 살며시 눈을 떴다. 나와 마주친 그의 눈이 웃고 있었다.

그의 따뜻한 눈빛을 받으며 나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와 눈이 마주쳐도 이제 설레지는 않지만 이런 안정감이 너무 좋다.


그가 낮은 저음으로 내 귀에 속삭였다

잘 잤어?

그 말이 ‘사랑해’로 들렸다.


응 자기는? 되물었다.

그가 대답대신 두 팔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여전히 사랑이다.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들은 이제 추억으로 간직하고 나는 계속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하게, 적당한 온도로 남고 싶다.


미지근해도 나쁘지 않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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